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강영우 박사가 미국
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시에 있는 자택거실에서 기뻐하고 긍정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뒤로 강 박사가 32세이던 1976년박사 학위 를 딴 뒤 부인 석은옥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스프링필드=박승희 특파원]한국의 시각장애인으론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땄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장애인 정책 담당 차관보로도 일했다. 큰아들은
워싱턴 포스트가 선정한 2011년 '수퍼 닥터'에 선정됐고, 작은아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임법률고문이 됐다. 그런 그에게 2011년 11월 29일 췌장암에 걸렸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27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시에 있는 강영우(68) 박사의 집을 찾아가면서 1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뒤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분 덕분에 제 삶이 은혜로웠다'며 작별의 e-메일을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으로 답을 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시련은 해일처럼 덮쳤다. 중학교 3학년 때 골키퍼를 하다가 친구가 찬 공에 눈을 맞아 실명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8시간 만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이미 3년 전 돌아가셨다. 졸지에 집안의 가장이 된 누나는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과로로 숨진다. 13세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9세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는 맹인재활센터로 가야 했다.
"제가 살아온 인생은 보통 사람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일 때문에 내 삶엔 더 좋은 일이 생겼다. 저는 나쁜 일이 생기면 미래에 더 좋은 일이 생긴다는 긍정적인 가치관, 생각을 가지고 늘 살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강 박사에겐 긍정의 유전자가 뼛속 깊이 박혀 있었다. 고통과 시련에 직면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그거라고 했다.
"암보다 깊은 병은 포기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게 가장 나쁘다. 긍정과 부정은 컴퓨터 자판의 '스페이스 바' 하나 차이다. 'nowhere(어디에도 돌파구가 없다)'에서 스페이스 바 하나만 치면 'now here(바로 여기)'로 바뀐다. 끝이라고 생각하면 끝이지만, 지금 여기라고 생각하면 기회가 된다."
췌장암은 현대인에게 죽음과 동격이다. 어떤 이는 대체의학 등으로 맞서지만 아직은 거대한 벽이다. 강 박사는 "죽음 너머의 더 좋은 일"이란 말로 췌장암과 화해했다. 췌장암 진단이 내려졌을 당시를 묻자 웃으며 "다른 암이라면 생각을 달리했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한 달여 전
스티브 잡스가 그 병으로 죽는 바람에 걸리면 죽는 병이란 걸 알고 있었다"고 했다.
"삶과 죽음은 하나님이 아시고 결정하는 거다. 죽음은 나쁜 게 아니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확신한다. 제가 68년을 살았다. 65세에 정상적으로 은퇴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65세에 백악관 차관보로 은퇴했다. 그날 같은 시각에 내 작은아들이 아버지보다 한 단계 높은 자리로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강 박사의 둘째 아들 진영씨는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은 2009년 1월 16일 대통령 입법특별보좌관에 임명됐다.)
힘들 때 포기하지 않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강 박사는 긍정적인 가치관만으론 안 되고 "섬김과 나눔의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최고의 명문 사립고인 필립스 아카데미의 230년 전 건학 이념이 'Not for Self(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공부를 하는 목적과 사는 목적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주어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그는 "생(生)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우선순위를 따져 공적인 일부터 정리한다고 했다. 그러곤 '장애를 축복으로 만든 사람들'이란 책이 내년 초에 발간된다며 "나는 사라져도 책은 나올 것"이라고 농 섞인 말로 배웅했다.
스프링필드=박승희 특파원 < pmasterjoongang.co.kr >
◆강영우=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68년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뒤 아내 석은옥씨와 미국으로 유학해 3년8개월 만에 피츠버그대에서 교육 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장애인이 받은 최초의 박사 학위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안재욱·김혜수가 출연한 드라마 '눈먼 새의 노래'로도 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