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대에서 1860년대에 이르는 시기를 미국 언론사(言論史)에서는 정파신문시대라고 한다. 그 시절에 신문은 특정 정치세력의 앞잡이에 지나지 않았다. 정당 간의 갈등은 언론계에 여과 없이 반영되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정파를 대변하던 <모닝 크로니클>의 사주 아론 버어와 <이브닝 포스트>의 발행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권총으로 결투를 벌였고, 워싱턴 대통령 시절에 재무장관을 지낸 해밀턴이 목숨을 잃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퓰리처와 허스트가 차례로 미국 언론계에 등장하면서 정파신문은 마치 햇살에 안개 걷히듯이 사라졌다. 산업화와 대중교육을 통해 양산된 월급쟁이 대중이 바로 퓰리처나 허스트의 과녁이었다. 대중은 정치 이야기보다 그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퓰리처와 허스트는 정당이나 의회 대신에 법원이나 경찰서에 더 많은 기자를 보냈다. 기자들은 거기에서 대중의 피부에 와 닿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렇게 하여 대중신문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우리나라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언제나···· |
그러나 이 대중신문시대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퓰리처나 허스트와 경쟁하지 않았다. 대중신문의 소비층은 정치적으로는 중립적이지만 질적으로는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뉴욕 타임스>는 뉴욕의 수준 높은 ‘지적 공중’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 지적인 공중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있긴 하지만 정당 간에 수시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당이 정치를 잘하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다른 당을 찍었다. 그런 응징이 거시적으로는 정당정치를 키우는 것이라고 믿었다. <뉴욕 타임스>는 바로 그런 지적 공중을 대상으로 새로운 저널리즘 철학을 실천해갔다. 객관성·균형성·공정성이라는 세 가지 덕목이 그 철학의 핵심이었다. 이 신문의 실험은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쯤 언론이 정당이나 정파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시대가 막을 내릴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미국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치에 매몰된 독자가 정파언론의 존재기반이 되고, 정치적 관심이 낮은 대중이 대중언론의 소비층이 되었으며, 그 후 질적으로 수준 높은 뉴욕의 지적 공중이 <뉴욕 타임스> 육성의 주체가 된 역사적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언론이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언론활동을 펴는 시대가 되려면 정치적으로 초연한 지적 공중의 층이 두터워지기를 기다려야할 지 모른다. |
정치적으로 성숙한 국민의 변화욕구를 귀담아 들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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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정치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정치라는 게 그야말로 3류다. 지역정당체제는 해체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에서 협상은 사라지고 투쟁을 통해서만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강화한다. 좌우의 외곽단체는 시민사회를 참칭하면서 토론다운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천봉쇄한다. 지식인 사회마저 정치세력의 외연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이런 사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그런 와중에 서울대 안철수 교수가 일으킨 평지풍파는 결코 적지 않은 의미를 함축한다. 안철수라는 잠룡의 존재를 확인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잠룡의 미세한 움직임을 괄목(刮目)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정파를 초월한 광범한 대중의 환호는 결코 예사로이 넘길 일이 아니다.
안철수에 환호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우리나라에도 이미 정치적으로 성숙한 ‘지적 공중’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적신문이 등장할 여건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쁜 일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는 언론이 내일을 얻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