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8 호
우리들의 한 시대는 흘러가지 않았다
박 원 재(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마지막 시간에 교사가 물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한 학생이 대답했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교사가 말했다.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유신 체제가 종말을 고하기 한 해 전(1978) 출간된 조세희의 연작 소설집, 독자들에겐 ‘난쏘공’이라는 줄임 제목으로 더 익숙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소설집의 첫 번째 단편인 〈뫼비우스의 띠〉들머리에서 작가는 유태인의 교훈집 탈무드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70년대 한국사회의 문맥 속으로 옮겨와 각색하고, 이를 자기 시대의 화두로 던졌다. 소설을 읽은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염치와 정의감과 자존심
그때 똑같이 굴뚝 청소를 하고도 깨끗한 얼굴로 내려온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것도 모자라 특유의 동물적 후각으로 부동(浮動)하는 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읽어내며 자신을 부단히 세탁함으로써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구별되고자 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40년 전 작가가 던졌던 이 질문으로부터 우리의 현재는 또 얼마나 자유로운가?
탄핵이 결정될 때까지 열렸던 여섯 번의 촛불집회 가운데 네 번을 다녀왔다. 돌이켜 보면, 항상 술자리에서만 진보였고 일상의 대부분은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온 삶이었다. 그런 내가 한 달여를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근 3시간을 차를 몰아 지방에서 광화문으로 출근을 한 것은 분명 이변이었다. 평생을 경계인으로 살면서 같은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냈던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부채의식, 틀도 바꾸어야 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도전 의지와 노력이 아니겠냐는 말에 아빠도 어쩔 수 없는 ‘꼰대’라며 헬조선으로부터의 탈출만을 꿈꾸는 두 아이에 대한 기성세대로서의 책임감, 또는 이런 모든 감정의 밑바닥에 깔린 상실과 허탈과 분노, 굳이 말한다면 아마 이런 것들이 동기였을 것이다.
두 번째로 참가한 3차 집회(11.12)에서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데 익숙한 나 같은 갑남을녀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 탁월한 솜씨가 있는(?) 우리시대의 가객 정태춘이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부르는 걸 들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87년의 열망이 쿠데타 세력 출신 대통령의 재등장으로 왜곡되고 92년 3당 합당으로 또 한 번 좌절되는 모습을 보며 느꼈을 소회를 풀어냈음직한 이 노래는, 사반세기의 시차가 무색하게 그날 세종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던 가객의 25년 전 바람은 불행히도 25년 후를 내다본 예언이 된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틀린 것도 있다. 가객은 당시 장맛비에 젖은 거리 위로 흘러가는 사람들을 보며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고 노래했지만, 그날 세종로의 모습은 노랫말과 달리 우리들의 한 시대는 그때로부터 결코 한 뼘도 흘러가지 못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를 의식한 듯, 가객도 그날 그 자리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며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선이 악을 물리치고 염치가 파렴치를 이길 수 있는 나라여야” 함에도 “그런 믿음은 언제나 조롱당해” 왔다고 고백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민의가 헌법보다 우선하고 시민의 분노가 정치적 계산보다 우선해야” 함에도 “그런 믿음은 언제나 좌절당해” 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가 표출하는 분노는 “염치와 정의감, 자존심”으로부터 나옴을 힘주어 말하면서, “다시는 조롱당하지도, 좌절당하지도 않을 것”임을 다짐했다.
침묵하지 말고 고발해야 할 때
조롱당하지 않고 좌절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40년 전의 작가는 탈무드의 이야기를 한 번 더 이어감으로써 그 답을 대신했다.
“한 번 더 묻겠다.” 교사가 말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똑같은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한 학생이 얼른 일어나 대답했다. “저희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기다렸다. 교사가 말했다. “그 답은 틀렸다.” “왜 그렇습니까?”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청소를 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이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똑같은 굴뚝 청소를 했는데 누구는 얼굴에 그을음이 묻고 누구는 얼굴이 말짱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사회. 이것이 시민의 ‘염치’와 ‘정의감’과 ‘자존심’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현재의 사태는, 이미 여러 사람이 지적했듯이, 편 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이른바 ‘좌/우’나 ‘보/혁’ 갈등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온전히 우리들의 염치와 정의감과 자존심으로부터 발현된 것이다. 난쏘공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은 이렇게 끝난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삼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여전히 목격자라면, 그리고 이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시대를 고발하는 것이다. 목격자의 제일의 미덕이자 책무는 고발이다. 그에게 있어 침묵은 범죄다. 그리하여 훗날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검인정 국사교과서에 올해가 또 한 번의 시민혁명의 기점으로 기록되기를 희망해 본다.
작가는 깨끗한 사람은 요령꾼으로 굴뚝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전제늘 둔 것 같은데 난 그 사람은 과학적으로 청소하여 상대적으로 깨끗한 것이고 그런 사고른 갖은 사람이기 때문에 깨끗 여부에 무관하게 굴뚝청소를 했기 때문에 씻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더러운 사람은 무턱대고 청소한 사람으로 그 사람도 씻겠지만 여기서의 답은 상대적으로 깨끗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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