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대한민국 사태를지켜보며 이의 탈피를 위해 의식개혁,철학이 필요하다 했는데 역시 이를 입증이나 해 주려는듯 최순실 국정농단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나왔던 이화여대 김혜숙교수님이 교수신문에 이에 대한 소회를 기고하였다.
그 많은 관련자는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여기고 있지만
이 분은 도의적 책임을 지지않는 사회현상, 우리의 도덕이 무너졌음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말씀하실 수 있음은 외람되지만 철학전공의 교수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이를 전재합니다.
<이화여대 사태를 지나며 교수사회를 돌아본다>
2016년, 우리 모두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 같다. 지난 7월 말 발생한 이화여대 사태가 최순실 게이트로 이어지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최경희 전총장이 미래라이프 평생단과대학 계획을 빨리 철회만 했더라도, 130년 역사의 오명 운운하며 총장직을 그렇게 오래 고수하지만 않았어도, 현재 우리가 마주한 상황은 매우 달랐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이화여대 교수 일원으로서 여러 가지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지난 몇 달간의 변화무쌍한 상황전개 속에서 교육현장에 있는 나에게 가장 무겁게 다가온 물음은 ‘앞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였다. 학내 사태와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지나면서 ‘도덕의 힘’에 관한 무력감이 철학 선생인 내게 엄습해왔다. 이미 세상의 어두운 면과 부정의함, 부패를 알만큼은 경험한 나에게 처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진경준 검사였다. 비교적 젊은 나이의 엘리트 검사가 검사로서 직무를, 이득을 챙기는 한갓 거래대상으로 사용한 뉴스를 접하면서, 그것도 자신이 먼저 거래를 제안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내가 외려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옳고 그름의 사회적 잣대로 제도적 힘을 보장받은 검사가 그것을 오히려 남을 겁박해 이득을 편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공적 정의와 질서를 구현하라고 위임받은 힘을 사적 방식으로 사용한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에게 검사란 직업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했다. 내가 부끄러움을 느낀 대상은 그의 행위 속에 드러난 자기 직업에 대한 남루한 자존감이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 안에서도 ‘도의적 책임’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 안에서, 특히 대학 안에서 얼마나 가벼운 것이 됐는가를 경험하면서 또 한 번 충격을 경험했다. 경찰 1천600명을 동원한 것에 대한 ‘도의적 책임’, 이 말이 대학 권력을 담당하고 있는 재단을 포함하는 다양한 주체들에게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 채 공허한 울림으로 학생과 일반교수들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사는 곳이 얼마나 뻔뻔하고 모질어졌는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 고려대 김준엽 전 총장 같은 분은 정권 반대 운동을 벌인 학생들을 제적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사정권으로부터 1985년 강제 사임을 당해 학생들이 퇴진반대 운동을 했었는데, 이런 일은 이제 30년이 지난 한국사회에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됐다. ‘도덕’이 한갓 겉치장으로도 힘을 잃어가는 사회, 사람들이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공직에서 물러나는 일이 희소해지는 사회, 증거를 내밀어도 법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면 부인하는 사회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며, 교수는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특히 인문, 사회 교수들은 가치와 당위의 문제, 삶의 목적과 방법과 방향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당위보다는 방편을 묻고,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묻는 영민한 인간들이 많아지는 사회 안에서 ‘도의적 책임’이라는 말은 그 의미와 활력을 잃고 말았다.
한국의 모든 정권에서 교수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른바 대통령을 하겠다는 포부를 갖는 사람들은 ‘씽크탱크’란 것을 만들고 거기에 많은 교수들이 참여한다. 교수들은 국정 전반에 대한 로드맵을 구상하고 이후에 실제 권력집행에 참여해 다양한 직책을 맡아 수행한다. 관료들의 일이라 여겨졌던 것들도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교수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차관, 청와대 비서관까지 교수들이 맡는 일이 늘어났고 대학총장을 했던 분이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는 경우도 생겨났다. 그런가 하면 순수 관료로 삶의 중요한 시간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대학으로 와 정부에서 지원하는 각종 연구비나 사업비를 수주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도 흔해졌다. 이런 관료들은 교수로서 총장, 부총장 등 대학의 주요 보직을 맡아 일하기도 하고 재단 이사회로 들어가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대학과 정치, 대학과 관료사회는 이렇게 사람을 매개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대학에서 이제 학문의 순수성, 상아탑의 이상, 진리와 올바름의 추구와 같은 말은 우둔하고 촌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빨리 프로젝트를 하고 사업을 수주하고 연구비를 따와야 살 수 있는 곳이 됐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의 부역자가 된 교수들
이번 사태 속에서 놀란 것이 또 하나 있다. 실험과 장비를 필요로 하는 자연대나 공대의 연구비 규모가 큰 줄은 알았지만 체육학과, 의류학과 교수들의 연구비 규모가 그 정도인줄은 처음 알았다. 응용학문이라고 할 분야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교수들이 어떤 유혹을 느낄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돈의 부역자’ ‘권력의 부역자’가 된 교수들을 보면서 피폐해지고 쪼그라진 우리 직업의 모습을 본다. 교수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사람은 자기가 들인 시간만큼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간다. 아무리 계산이 빠르고 권력의 이치에 밝은 교수라 하더라도 교수는 어쩔 수 없이 교수다. 최순실 같은 사람에게 이용당할지언정, 결코 이용해먹을 수가 없는데, 그것은 그 혹은 그녀가 받은 사회적 훈련 때문에 그러하다.
교수들이 상대한 사람들은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학생들이며 그들이 투자한 많은 시간은 도서관,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소비됐고 그 시간이 그들을 만들었다. 그들은 결코 상인이 될 수 없고 정치꾼이 될 수 없고 거간꾼이 될 수 없다. 교수는 학생들을 마주하고 그들에게 인간과 사회에 중요한 것, 바람직한 것, 사실인 것, 진실인 것, 진리인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주 단순한 의미에서 그런 것들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남을 가르친다는 일의 위중함과 무게 때문에 위선자가 될 위험에도 항상 크게 노출돼있는 사람들이다.
김혜숙 이화여대·철학
현재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으로, 한국철학회 회장과,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칸트: 경계의 철학, 철학의 경계』 등이 있다.
김혜숙 이화여대·철학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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