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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법이 최선이다

지성유인식 2013. 12. 4. 20:25

18대 대선 후유증

 

종교계의 ‘대통령 하야’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여권은 ‘종북몰이’ ‘대선불복 프레임’으로 맞서지만 그 위력이 예전같지 않다. 시민사회단체는 아직 ‘퇴진’을 거론하지 않지만 박 대통령이 탈출구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향후 정치적 파장은 예측불허다.

 

18대 대선에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이 개입했다는 것은 이제 명백한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국정원의 불법 댓글부터 121만건의 트위터까지 국가기관이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정황과 증거들은 18대 대선이 끝난 지 1년이 다 되도록 쏟아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선거무효’ ‘대통령 퇴진’이라는 주장은 공식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다.

 

대선이 끝난 직후, 일부에서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야권 일부에서만 호응을 얻었을 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불법 선거개입’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마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에서는 ‘그렇다면 대선불복을 하겠다는 것이냐’며 역공을 퍼부었다. 불법 선거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대선불복으로 몰아 야권의 입을 막아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청와대와 여권의 ‘대선불복’ 방패는 야권의 입을 막는 데 꽤 큰 효과를 발휘했다. <부정선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지은이 황승현 평론가는 ‘부정선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야권에서 피하고 있었던 질문이라고 말했다.

 

대신 청와대 및 여권이 야권을 겁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선불복’이라는 프레임으로 ‘부정선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정선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어느 누구도 선뜻 답하기 힘든 질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선불복’에 정면으로 맞서는 목소리가 종교계에서 처음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11월 22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는 시국미사를 열었다.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였다.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을 둘러싸고 일종의 금기어였던 ‘대통령 퇴진’이 종교계를 시작으로 공식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제단 시국미사에 대한 대응에서도 ‘대선불복’ 프레임을 반복적으로 적용했다. 11월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박창신 신부에게는 ‘종북’ 프레임을, 야권에 대해서는 ‘대선 불복’ 프레임을 들이대며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에 대한 진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차단하고 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박 신부의 시국미사 발언 중 일부에 불과했던 연평도·천안함 발언을 부각시키며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치고 죽음으로 나라를 지킨 장병들의 사기를 꺾고 그 희생을 헛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며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을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 문제를 지적하는 박 신부의 발언을 ‘종북 프레임’에 묶어 ‘대선 부정선거 공세’를 차단해버리겠다는 것이다. 이어서 박 대통령은 야권을 향해서는 “민주사회에서 다양한 의견과 갈등을 피할 수 없지만 대화를 통해 이견을 조정하고 합리적 결론을 내고 그것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다시 한 번 ‘대선불복’의 프레임으로 부정선거에 대한 야권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러나 이미 ‘대통령 퇴진’이라는 금기어가 해제된 지금, 여권의 ‘종북’ ‘대선불복’의 프레임은 이전처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11월 27일에는 천주교에 이어 개신교에서도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기독교 공동대책위원회는 “부정선거 결과에 의해 대통령직에 취임한 현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선택된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여기에 더해 18대 대선에 다양한 국기기관이 광범위하게 개입했음을 확인해주는 수많은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국가가 헌법이 정한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유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종북’ 논란 또한 국민들 사이에서 일종의 ‘면역성’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황승현 평론가는 “‘종북’으로 규정하는 태도가 반복되면서 ‘종북’이라는 말보다 ‘종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말이 희화화되고 있다. 당장은 ‘종북’이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권력의 속셈과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확산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종교계를 중심으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것은 더 이상 ‘종북’ ‘대선불복’이 여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 있는 프레임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이는 청와대와 정부가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사실규명 없이 ‘종북’과 ‘대선불복’의 방패로만 방어를 하는 것이 국민적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금기어였던 ‘퇴진’과 ‘하야’가 공식적으로 거론되고 청와대의 ‘대선불복’ 프레임으로는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의 진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 효과를 더는 내기 어려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선거 후유증이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각적으로 표출되지는 않고 있지만, 잠재돼 있는 사람들의 불만이 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불만은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에 대한 사건의 실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이 사건의 정보에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이 사안이 워낙 사실과 정보에 접근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서 지금은 사람들이 두고 보고 있는 경우인데, 사실상 이게 더 위험한 징후”라고 말했다.

 

서 연구위원은 “사람들이 갖는 권력에 대한 불만이라고 하는 게 그때 그때 표출되어서 끝나야 하는데, 지금은 쌓이고 있는 단계다. 이게 눈덩이처럼 뭉쳐져서 예측하지 못하는 시기에 펑 터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서 걱정스럽다”며 “지금 박근혜 정부가 종교계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정확한 자기 입장을 밝히고,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불만은 ‘대선불복’이라는 프레임으로 야권을 공격하고 있는 여권을 향해 ‘공정선거였음을 입증하라’고 되묻는 암묵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황승현 평론가는 “사제단이 부정선거를 이야기하며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다면, 여권에서는 사제단의 주장을 반박하며 이 선거가 ‘공정선거’였음을 주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박창신 신부를 ‘종북신부’라고만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어떻게 보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청와대나 여당이 근거를 댄다면 ‘공정선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데, 여권 쪽에서는 ‘지난 선거가 공정선거였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며 “현재 청와대와 여당의 태도를 볼 때 여권은 ‘공정선거’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는 이상한 증후군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선불복’ 프레임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특검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등 여권을 향해 18대 대선이 ‘공정선거’였음을 입증하라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이 특검을 거부하면서 ‘뭔가 속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당내에서 ‘특검’을 언급했다 큰 반발을 사면서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 선대위에 조직적인 대선개입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다보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는 지지층들이 나오게 되기 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복경 연구위원은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이 사안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떳떳하면 야권이 하자는 대로 하지 왜 다른 꼼수를 쓰느냐는 의심이다”라며 “유권자들의 합리적 의심은 임계점이 넘으면 흘러넘칠 수밖에 없다. 지금껏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나 윤석열 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특별수사팀장을 물러나게 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사안들이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로 하여금 ‘부정선거가 진짜였나보다’라는 정보를 주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종북’이나 ‘대선불복’ 외에 ‘부정선거 논란’을 해소할 다른 탈출구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11월 22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의 시국미사 이후 진보·보수 간의 갈등과 충돌이 잇따라 이어지고 있다.

 

전주교구 사제들은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에서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을 규탄하면 박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이것이 신호탄이 되어 11월 27일 진보개혁 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집회를 잇따라 열었고, 반대로 보수단체에서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를 규탄하는 집회로 맞불을 놓고 있다.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에서는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발언’을 비판하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반국가단체, 친북 종교인 집단이라는 날선 반응을 보였다.

 

대선 1년이 되는 12월 19일을 앞두고 이러한 갈등은 더욱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대통령 퇴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12월 19일을 기점으로 부정선거 논란과 관련해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에 있다. 박주민 변호사는 “시국회의는 특검,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이 네 가지가 공식적인 입장이다.

 

현재까지 시국회의 아래 모여 있는 여러 단체들과 이야기한 바로는 대통령 퇴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탈출구를 제시하지 않고 이를 풀어갈 정치가 부활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파장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예상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박주민 변호사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나는 데 2년 4개월이 걸렸다. 당시 특검을 하고 언론의 폭로가 이어지는 등 여러 가지 복잡하고 다양한 계기들이 상승되면서 나타난 결과”라며 “만에 하나 이런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 된다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용과 상처가 남을 것이다. 하루빨리 정치가 부활하고 대통령이 결단을 해주어야 하는데, 모든 것을 ‘종북’으로만 몰아가는 방어를 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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