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인지의 범죄성

지성유인식 2014. 2. 14. 13:11

1. 한나 아렌트

저번 주와 이번 주에는 한나 아렌트에 대한 책 한 권과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읽은 책은 현재 한나 아렌트 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홍원표 교수가 저술한 "아렌트 - 정치의 존재이유는 자유다"이라는 책이고, 영화는 제목이 "한나 아렌트"라는 독일 영화이다.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계 철학자, 정치이론가이고,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교수 자격 취득이 금지되어 프랑스로 건너가지만,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후 그녀도 수용소에 강제 이송되자, 미국 외교관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망명하여 교수 생활을 하였다.


읽은 책의 내용이 방대하고, 그녀의 평생에 걸친 연구 주제와 업적이 광범위하고 깊이도 있어 아주 깊은 이해를 얻었다기보다, 그녀의 연구주제에 대한 맛보기식 읽기에 머물렀지만, 예루살렘 아이히만을 통해 본 사유의 중요성과 미국과 프랑스 혁명의 차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가장 머리에 남는다. 이 중 영화에서도 드라마틱하게 다룰 수 있었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2.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이히만이라는 독일인은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었고,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예루살렘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그의 유태인 학살이라는 범죄행위에 대해서 재판이 벌어졌다. 이 재판에 아렌트는 참관하여 아이히만의 진술을 듣고, 그녀의 생각과 판단을 "뉴요커" 잡지에 기사로 올렸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이히만을 살인을 저지른 악마 혹은 괴물로 몰아붙였을 때,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단지 사유를 하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었다고 인정하였다. 아렌트는 재판과정을 참관하면서 그가 현실 순응자라는 것을 알았고, 그에게 부과된 극단적인 사회 환경도 여과없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그는 항상 칸트가 말한 "정언명령" 즉 인간이라면 따라야 하는 보편적인 법칙을 따랐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칸트의 정언명령을 잘 못 이해하고 있었다. 정언명령의 입법자는 순수한 도덕적 자아여야 했는데, 아이히만은 히틀러라는 전체주의가 그에게 부여한 법칙을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한 것을, 인류보편의 법칙을 수행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만약에 아버지도 잡아가라고 했으면 그렇게 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아렌트의 아이히만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다. 그는 교육이 짧은 사람이었고, 사유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무지무식함을 감추기 위해서 허풍이 심했지만, 그는 상부에서 하달된 명령을 판단없이 잘 수행해 낼 성실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렌트는 말의 무능력, 사고의 무능력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의 무능력 이 세가지를 아이히만이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아이히만을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살인자라고 몰아갈 때, 아렌트가 그에 대해 내린 "사유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냉정한 평가는 유대인들의 큰 반발을 일으켰다. 아이히만에 대한 평가에 더해서,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유대인 지도자들이 나치에 협조함으로써 보다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로 이끌었다라는 그녀의 진술은 가히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을 경험한 유대인들에게 큰 충격과 반발 심지어는 위협까지 이끌어내었다.


3. 악의 평범성

아이히만이 정말 명령을 수행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나쁜 동기도 없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아렌트가 정확히 지적한 것은 악은 평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시스템에 순응적이다. 어떤 권위적인 시스템이 주어졌을 때 이 시스템의 정당성, 그리고 시스템이 가져올 사회적 영향에 대해 사유하기를 회피하고, 성실하게 그 시스템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Collaborator"라고 부른다.


한국의 근대사에서도 일제 강점기를 거친 후에 "친일파 청산"이라는 문제는 계속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제국이라는 악의 시스템이 주어졌을 때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 시스템에 순응하였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순응한 사람들은 친일파가 되어 독립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고문하였다. 어쩌면 그런 친일파들은 아이히만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군사독재정권 시기에도 공안기관과 경찰조직은 많은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였다. 광주항쟁때 파견된 공수부대 요원들은 상관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민간인들에게 총을 발포하고 무지막지하게 시민과 여자들도 죽였다. 이들 고문 기술자와 공안요원들, 그리고 공수부대원들은 나라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평범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특별히 악마가 아니었고, 평범한 너와 나의 친구, 형님, 동생이었다.


악의 시스템이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악행을 쉽게 도모하기 위해서 쓰는 방법이 피착취자를 대상화하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유태인 수용자들을 비참하게 입히고 먹임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말살했고, 수용자들 자신들도 어느 순간에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된다. 이런 수용소의 환경은 아이히만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학살을 하는데 있어서의 죄의식을 경감해준다. 독재정권은 민주주의 운동을 하는 시민 혹은 학생들을 빨갱이라는 대상으로 규정하여, 탄압하는 자들이 인간을 학대하고 고문한다는 죄의식을 가볍게 해 주었다..


4. 사유없음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참관한 아렌트는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인류사에서 가장 끔찍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사회구조적, 심리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사유를 하지 않음이 바로 평범한 사람도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라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그 사유하지 않고 권위에 협조함은 아이히만을 비롯한 독일인만이 한 짓이 아니라, 수용소의 유태인 지도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용감하게 지적하였다.


철학자 강신주는 아이히만의 사건과 김남주의 "어떤 관료"라는 시를 그의 강의에서 연결시켰다. 이 사건에 참 잘 들어맞는 시이다.

 

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 우리나라를 지배하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 성실하고 근면하게!


이런 관료가 물론 평범하고 악의가 없기에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동정이 들어간 인간적인 이해를 할 수 있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분명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유가 없는 행위 혹은 자기 반성이 없는 행위는 악이라는 축과 평행하게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5. 회의하는 사유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은 어쩌면 운이 없게 그 자리를 맡아서 역사상 최악의 악행을 저지른 것일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회의하는 사유를 회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삶 속에서 우연히 악의 시스템에 놓이게 되면 회의적 사유없는 평범한 사람은 누구라도 아이히만과 같은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아렌트가 지적한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그러기에 바로 나 자신을 세밀하게, 집요하게, 극단적으로까지  회의적 사유로 밀어붙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 물질만능적인 자본주의에서 편안하게 사는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 매일 고기를 먹는 인간을 지탱하기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무자비하게 길러지고 학살되는 현재의 식품시스템에서 우리는 어떤 식생활을 해야 하는가? "


" 억압받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대변하지 않고 도움을 주지 않는 우리는 억압을 주는 사람들에게 동참하는 것은 아닌가? "


이러한 수많은 질문들을 통해서 진실이라는 윤리학을 내 안에서 계속 생성해내고, 다듬어갈 때 자기도 모르게 걷게 될 수 있는 부도덕과 악의 길에서 멀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악의 평범성|작성자 모피어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onrue&logNo=202646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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