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소통과 통합에 대하여

지성유인식 2012. 5. 18. 09:39

어제는 익산시 주관  "언론과 정치 그리고 나꼼수"란 기획 특강 2차중 제1차시인  전케이비에스 정연주 사장의 특강이 19시부터 21시까지 계획돼 청강자가 많지 않으리란 생각에 18:55분 공공영상미디어센터에 도착하니 좁은 주차장이 만차이고, 길에도 많이 주차돼 있어 아에 원대병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19:00 3층 대당의실로 가니 이동식 의자 100여개가 채 안될까하는 강의실이 만원이다.

 

강연내용은 나꼼수가 언론으로서의 기능 등등은 다음주 금요일 19시로 계획된 진중권님이 할 것이니 않하시겠다고 하시고, 주로 작금의 언론상태를 중심으로 약 20시 45분까지 강설하시고 질문받는시간으로 진행됐는데 강의 결과 마음에 확 와 닿는 그런 것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통진당의 문제 보다 총리실 불법사찰 문제가 더 전국민적 영향이 많을 것 같은데 작금의 언론에서 불법사찰 보다 통진당 문제가 훨씬 더 언급되는 것도 어쩜 언론기관의 기획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다만, 정부에 불리한 내용을 불가피하게 방송하여야 할 경우 저녁 9시 뉴스의 경우 로컬뉴스로 너머간 이후에 방송되도록 한다는 말씀이 있었다.

 

참고로 조선시대 정조의 소통과 통합에 대한 글이 있어 전재합니다.

 

김 태 희 (다산연구소 기획실장)

  사흘 전, 정조는 화완옹주를 석방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신료들이 강력하게 반대했고, 정조도 굽히지 않았다. 험한 분위기였다. 이때 우의정 심환지가 뛰쳐나가 섬돌 아래에 엎드려 관을 벗었다.

  “임금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였으니, 물러가서 처벌내리기만을 기다리겠습니다.”

  너무 과격한 행동이었다. 정조가 만류하며 즉시 전(殿)에 올라오도록 설득했지만 심환지는 따르지 않았다. 정조는 마침내 심환지를 파직했다.

  심환지는 노론 벽파의 우두머리였다. 정조 대 심환지. 선과 악의 대립구도는 소설에서는 매우 좋은 설정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이 장면은 연출된 것이었고, 그 연출자는 정조였다.

  바로 전날 정조는 심환지에게 비밀어찰을 보냈다. “내일 신하들을 만날 것인데, 반열에서 나와서 강력히 아뢰고 즉시 뜰로 내려가 관을 벗고 견책을 청하라. 그러면 일의 형세를 보아 면직하든지 파직하든지 처분할 것이다. 그 뒤에 다시 임명하는 방법도 생각해 놓았다.”

  정조의 각본대로 심환지는 충실하게 연기했던 것이다. 심환지는 원칙을 지키는 기개 있는 대신으로 신료들에게 위신을 세웠고, 정조는 자신의 강력한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반대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다.  

당파를 초월하여 통합을 지향한 탕평군주  

  대부분 사람들은 당파적 관점에서 정조를 본다. 가령 정조를 남인 정약용의 편에서만 본다. 착각이다. 정조는 남인을 보호했지만 남인만의 군주가 아니었다. 적대적 세력으로 알려진 노론 벽파까지도 품에 안으려 했다. 노론의 손을 들어 줄 때는 다른 한편으로 소론들을 배려했다. 정조는 신분상·지역상 소외된 인재에 대해 적극적인 인사정책을 폈지만, 다른 한편 오래된 가문을 존중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했던 군주였다.

  당파적 관점에서 보면 정조의 진면목을 놓칠 수 있다. 정조는 당파를 초월하여 통합을 지향한 탕평군주였다. 그의 통합을 위한 정치는 역사적 반성의 결과였다. 붕당 간의 급격한 정국 전환 속에 인재들이 희생되고 정치의 반쪽이 떨어져 나갔다. 폭력의 교환 속에 정치는 제 구실을 할 수 없었다.

  폭력적 상황의 종식이야말로 통합의 첫걸음이었다. 정조는 즉위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되레 처벌했다. 살육과 보복의 악순환을 발동시킬 토역론을 억제하고 부득이 처벌할 때는 최소에 그치도록 노력했다. 각 정파의 우두머리가 화해하도록 친히 자리를 주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조가 죽자 바로 폭력적 상황이 벌어졌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기회로 노론 벽파가 조정을 장악했고, 이념을 빌미로 남인을 옭아매어 숙청했다. 정조가 죽자마자 통합의 정치가 깨진 이유가 무엇일까? 조정에 참여했던 신료들 사이에 공존의 가치와 경쟁규칙을 공유하지 못했다는 점을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다. 오로지 탕평군주 정조에 의해서 주재되고 유지되던 참여였고 통합이었던 것이다. 

참여·경쟁의 건강한 관행과 절차적 정당성

  도대체 통합이란 무엇인가? 통합이 구성원들 사이의 완전한 일치를 의미할 수는 없다. 통일이니 단결이니 하는 말이 소수의 권력 독점을 은폐하고 잠재적 반대파를 억압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가짜통합이다. 완전한 통일성의 비전은 다분히 환상이다. 그러한 비전을 강요한다면 이미 반발과 갈등이 예정된 셈이다.

  통합이란 부분적 일치를 바탕으로 부분적 불일치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상태라고 파악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첫째,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존을 인정할 최소한의 공통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둘째, 이를 바탕으로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할 경쟁규칙에 참여자가 동의 또는 수용해야 한다. 이 경쟁규칙은 참여자들의 최대이익을 추구하지만, 서로 이해가 엇갈릴 경우 누가 이득일지 미리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일종의 게임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통합은 참여를 전제로 한다. 다수의 지지를 얻는 자가 승리하는 다수의 법칙 아래에서, 경쟁은 참여를 확대하고 통합에 기여한다. 폭력이 아닌 대화와 설득을 수단으로 하고,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참여를 확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이 활발할수록 통합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다수의 법칙엔 요건과 한계가 있다. 다수를 확인하고 반영하는 절차가 제대로 확보되어야 한다. 소수가 다수로 바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의 근본가치와 공존을 침해하지 않으며, 소수가 보호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통합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야권의 두 당이 모두 통합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런 사정을 반영한다. 그런데 최근 총선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은 새로운 참여를 확대하기는커녕 경쟁을 제한하고 기존 정파들이 나눠먹기를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통합진보당은 절차적 정당성을 의심케 하는 모습을 드러내 충격을 주었다.

  야권통합수준 이상의 더 큰 통합을 위해 진영논리의 실과 허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고, 남북통일을 위해 폭력적 대결구도와 관행에 대해 미래지향적으로 반성할 필요도 있다.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영을 위해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역사적·세계적 통찰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공존·참여·경쟁에 대한 건강한 인식과 관행을 수립하는 것이 절실하다. 여기서 절차적 정당성은 기본이요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