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성공적 삶의 자세

지성유인식 2012. 2. 2. 16:23

무엇 하나를 하더라도 이와 같은 정성(열성)으로 한다면

결과의 호불호에 관계 없이 성공적인 인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성스레 커피콩을 볶고 갈아 최고의 환대를 보여준 커피 한잔

나는 가끔 난처한 질문을 받는다. "지금까지 마신 커피 중 가장 맛있던 것은?" 그럴 때면 나는 슬그머니 "기억에 남는 커피는 있다"고 돌려 말하곤 한다. 커피 역사를 찾아 아랍지역을 여행하던 2008년 2월에 잊지 못할 커피를 만났다. 시리아의 팔미라 유적지 인근 사막에 있는 베두인의 텐트에서였다. 사막을 오가는 상인들을 약탈하는 베두인이 떠올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막상 만나 보니 그들은 매우 친절했다. 한밤중에 불쑥 찾아간 낯선 이방인을 오히려 환대해주었다.

바디야(badiyah)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베두인. 그날 나는 하루종일 모래바람에 지친 나머지 한 유목민의 텐트에서 염치 불고하고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더구나 그 텐트는 대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아침이 되자 자명종 같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로 가족들이 차례로 일어났다. 낙타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와 전통 빵으로 아침을 대접받고 곧바로 베두인 커피를 청했다. 난로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았다. 할아버지는 한참을 웅크려 뒤척이더니 푸른빛 천주머니에서 소담스러운 커피 생두를 꺼냈다. 장터에서 양 한 마리를 주고 샀다며 매우 귀하게 다루었다. 할아버지는 자부심에 가득 찬 근엄한 표정이 되었다.

낙타 배설물로 불을 지핀 난로는 저녁에는 난방용으로, 낮에는 조리용으로 변한다. 난로 위에 아랍 전통 문양이 선명한 무쇠 프라이팬을 철커덕 올리고는 긴 무쇠 숟가락으로 생두를 볶는다.(사진) 커피를 만드는 일은 남자들만의 고유 영역이었다. 그것도 가장만이 할 수 있는 절대 영역이었다. 숟가락 휘젓는 솜씨로 보아 아주 잘 볶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할아버지는 진지했다. 커피 볶는 일에 온통 집중했다. 몰두하는 모습에는 어떤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자신들의 집을 찾아준 손님의 안녕을 기원하는,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간절한 모습이었다.

다 볶아진 커피는 큰아들의 전통 절구통으로 옮겨졌다. 절굿공이를 두드리는 소리는 일정한 리듬이 있어 마치 악기 연주 같았다. 난로에서 끓고 있던 물을 작은 전통 주전자에 옮겨 붓고 곱게 간 커피를 쏟아붓는다. 그러고는 다시 난로 위에서 끓인다. 끓인다기보다는 차라리 졸인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할아버지는 자랑스럽다는 듯 주전자를 치켜들더니 곧장 내게로 다가온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 모금을 마셨다. 커피 한 잔을 위해 하룻밤을 온전히 사막 한가운데에서 보내고, 다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마시는 커피니만큼 그 한 모금은 간절했다. 검은 액체 그대로였다. '악마의 음료'라 불릴 만큼 진하고 강했다. 나는 이미 기대감, 기쁨, 감격스러움으로 넋이 나가 있었고 그 순간 내게 베두인 커피는 이미 단순한 음료로서의 커피가 아니었다. 한 잔의 성스러운 생명수였다. 입안에 머물 때의 끈적거림은 목구멍을 통과하자 곧 아늑함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깊은 여운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들에게 커피는 손님을 환대하는 최고의 대접이다. 한 순배를 돌고 난 뒤 다시 내게 커피를 따라주려고 다가오던 그의 투박하고 거친 맨발이 아련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한겨레 인기기사>

[한겨레][매거진 esc] 박종만의 커피로드|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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