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덕선생은 구한말 국비유학생1호로 미국유학을 마치고, "서유견문록"을 쓰신 구당(휘 길준(吉濬)선생의 손자로, 우리문중의 부운장학회 재정이 없어(당시 부동산은 남양주의 숙민공 묘역 및 토지가 있었으나 대부분 임야로 수입이 없었슴) 당시 문교부로부터 부운장학회의 해산을 앞두고 어떻게 해서든지 장학재단을 살려보려고 노력하시던 당시 문장 일창(諱 致雄)선생 등 운영진에게 현 대종회와 부운장학회가 들어있는 부운빌딩(지하1층 지상5층)을 쾌척하시어 건물의 부동산 및 임대료를 가지고 장학회를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하시는등 문중을 위하여 커다란 업적을 남기셨으며, 서기 2000년6월20일 기계유씨대종회장 재직시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선생의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대종회와 부운장학회에서는 선생의 묘역에 가족들의 유지를 받들어 조그마한 와비(臥碑)를 세우고 추모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추모일이 일요일이라 가족들이 참여할 수없어 금요일인 2010년6월18일 오전11시에 선생의 묘역인 검단산하에서 갖게되며, 참석대상자는 대종회 회장단과 부운장학회 이사님들입니다.
아래에 선생의 약사를 간략하게 소개하여 드립니다.
公의 자(字)는 우아(愚兒), 호(號)는 인재(仁齋)로 부(父) 만겸(萬兼)공의 4남중 장남으로 조부는 구당(휘 길준)이십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셨으며, 국방대학원을 졸업하셨습니다. 관직은 감사원 이사관 제1국장을 역임하셨으며, 홍조근정 훈장(受紅條勤政勳章)을 수여받으셨습니다. 공직퇴임 후에는 천록 건물개발주식회사 대표이사, 기계유씨대종회회장, 재단법인 부운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시고, 2000년 6월20일 별세하셨으며, 슬하에 석재(碩在). 중재(重在). 항재(恒在)의 3형재가 있습니다.<仁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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