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언제나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언제나 자고 먹으며 살아가는 고향집도 아늑하고 따뜻함을 느끼지 않을 때가 없건만, 오랫동안 객지에서 노닐다가 돌아온 고향집은 더욱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안락의 거처입니다.
경기도 광주군의 소내(苕川)는 지금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로 호칭되는 곳인데, 바로 그곳이 다산이 태어나서 자라고 학문을 익히며 화목하게 가족들과 생활했던 고향집이 있었던 곳입니다.
15세에 서울의 회현동 홍씨집안으로 장가들어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고,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하는 당대의 신진사류들과 교제하면서 청운의 뜻을 키우던 곳은 서울이었습니다. 하지만 벼슬살이와 귀양살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세월을 보냈던 곳이 바로 고향마을의 ‘여유당’이라는 다산의 집이었습니다.
갑자기 고향 마을에 이르고 보니 忽已到鄕里
문 앞에선 봄물이 흐르고 있네 門前春水流
기쁜 듯 약초밭에 다다라 보니 欣然臨藥塢
예전처럼 고깃배 눈에 보여라 依舊見漁舟
꽃들이 어우러져 산집은 고요하고 花煖林廬靜
솔가지 늘어진 들길은 그윽하다 松垂野徑幽
남녘 땅 수천 리를 노닐었으나 南遊數千里
어디메서 이런 언덕 찾아보리요 何處得玆丘
「환소천거(還苕川居)」, 즉 ‘소내 집에 돌아와서’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방년 18세 소년, 16세에 아버지가 전라도 화순현의 현감으로 부임하여 아내와 함께 형님들을 모시고 임지에 따라가 지내다가, 과거공부를 하라는 아버지 명령으로 18세의 봄에 고향 마을에 도착하여 지은 시입니다.
소년 18세의 다산은 이미 결혼을 했기에 청년이라고 해야겠지요. 사또나리의 자제로, 떵떵거리던 풍산 홍씨 가문의 사위로 세상에 대한 큰 근심이 없던 시절에 지은 시입니다. 아름다운 고향 마을의 풍광을 보고 느낀 대로 그냥 읊어본 시에 다산의 서정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우수·경칩이 지나 춘분절서가 다가오는 바로 요즘의 계절로 여겨지던 다산의 고향, 자신이 ‘수향’(水鄕)으로 불렀듯이 봄 강물이 넘실대고 약초밭이나 고깃배가 예전처럼 그대로 보이던 그 한가한 마을, 얼마나 다정하고 아늑한 고향 집입니까. 남도 천리를 유람하고 돌아 왔지만, 세상의 어느 곳에도 고향마을처럼 좋은 곳은 없더라는 표현이 소박한 다산의 글 솜씨였습니다.
- 다산연구소 박석무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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