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힘 들다.
더위와 싸우기도 힘들고 사람들과 싸우기도 힘들다.
내가 싸워야 할 대상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더욱 힘들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위로가 되는 것은 사순절,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생각하면서
현재 나에게 처해 있는 힘든 상황을 이겨낸다.
더위야 내가 알고 온 것이니 말 할 것도 없다.그나마 남인도에 있을 때보다 나은 환경이니까.
첸나이에 머물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 거린다. 겨울도 없이 12달 모두 무더위라고 생각해 보라.
그나마 여기 인도르엔 겨울이라는 이름이라도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하지만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정말 그들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 몰랐다.
속된 말로 이역만리 낯선 나라에 몸둥아리 하나로 찾아 온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뭐 할 짓이 없어
인도 나환자들 속에 묻혀 지지고 볶고 사는가? 음식과 잠자리부터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에
맞는 게 없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물로 온몸을 적시고 난 뒤에야 다시 잠을 이루는......
그래도 나는 사람 하나 믿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데, 내가 이방인으로 찾아와 이 고생을 하면
그래도 양심이 있다면 눈이라도 끔쩍 해 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짝사랑이었다.
무슨 말이냐고? 에고, 하도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이왕 꺼낸 푸념이니 해야지.
지난 번 말했듯이 알워싸 마을을 염소 시범 마을로 지정하기로 결정하고 그 마을 지도자들과 협상에 들어갔다.
마을의 규모도 적당하고 사람들도 성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마을 지도자는 이미 내가 안 지 3년이 넘었고
제법 나와 장난도 치는 사이다. 그런데 그 지도자가 죽었다. 결핵과 나병 합병증이었다. 그래서 아직 지도자가
공석인데 나는 지난 2워부터 일주일에도 서너 차례 찾아 와 빨리 지도자를 뽑으라 했다.
그래서 어렵사리 50대 여자를 지도자로 선출했다. 이렇게 일이 진척이 되는가 싶었는데 이번에 행정관청에서
제동을 건다. 한 집에 염소 두 마리 이상을 키울 때는 허가을 얻어야 한다는 거다.제기랄, 염소 키우는 것도
허가를 받아야 하다니......하지만 여긴 내 나라가 아니다. 여긴 여기 대로의 법이 있으니 존중할 수 밖에.
그래서 나는 행정관청의 담당자를 만나 별의 별 이야기를 다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설득을 했는데
이번엔 돈을 요구하고 나섰다.
내 나라에서 돈을 갖다가 너희 나라 나환자들 먹여살려준다는 데 그것도 뇌물이 있어야 하느냐?
하며 노발대발 댄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아도 성질 급한 내가 가만히 있었겠는가? 결국 알워싸
마을을 포기하고 처음 예정했던 잠무리 마을로 왔다. 내가 뇌물까지 줘가며 해야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러나 문제는 그 곳은 40여 가구의 나환자들이 산다. 그래서 우선 20가정만 시범으로 실시하자고 제의했다.
염소를 사 주는 것도 문제지만 40여 가정을 모두 월 4만원씩 지급하기에 지금의 내 형편으로는 역부족이다.
20가정 정도는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월 4만원씩 생활비 주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또 현재 지급
되고 있는 가정도 있으므로 더욱 더 용이하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너무 어이 없었다. 40가정 모두 월 4만원씩 생활비를 주고, 한 집에 5마리씩
염소를 주면 하겠다는 거다. 막무가내다. 설득의 여지가 없다. 염소 200마리 사주는 것도 문제지만
월 140만원씩 지출을 해야 하는 것도 지금의 내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다. 지금의 계산으로는 처음
시작을 우선 염소 100마리(싯가 300만원) 그리고 축사 짓는데 필요한 돈 300만원 정도면 5월 쯤엔
가능하리라 본다. 그러나 그들이 요구하는 40가정 매월 4만원씩의 160만원의 지원은 도저히 계산이 안 된다.
그래서 나의 사정을 말해 보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다. 그렇게 안 해주면 한 사람도 염소를 키우지 않겠다는 거다.
참 기가 막히다.
누가 누구에게 큰 소리치는 건지 모르겠다. 가난으로부터 구제해 주겠다고, 자식들을 나병의 감염과
영양실조 그리고 무지로부터 벗어나 주겠다고 하는 데도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 너희 한국은
부자로 잘 사는 나라인데 우리 하나 도와주지 못하겠는가? 하는 식이다.
부자?
누가 부자인가? 아니 부자나라라고 하자. 하긴 인도 보다는 부자나라이니까. 그러나 나라가 부자인지는 몰라도
내가 부자인가? 아니면 부자인 누가 나에게 성금을 듬뿍 보내주고 있는가? 그렇다고 이런 저런 사정까지
모두 그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구차하게 보이기도 싫거니와 굳이 그럴 이유도 없다. 내가 내 돈으로
도와 주겠다는 건데 그것도 마다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더 설명하겠는가?
아니 설령 네게 돈이 넉넉하다 할지라도 이런식으로 도움을 주고 싶진 않다.
자신의 노력도 없이 무조건 받으려고만 하는 것은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자립심이며 자생능력이다. 워낙 없이 사는 불가촉천민의 나환자들이라 해도
이런 원칙하에서 일을 하고 싶다.
할 수 없이 다는 마을을 찾아가겠다고 으름짱을 놓고 일단 대화를 끊었다. 지금 그런 냉전 중이다.
인도,
정말 이상한 나라다.
우리 같으면 도와 주는 것만도 감사하다며 엎드려 절을 하고 동상을 세우고 하는데 이건 그렇게는 못할망정
돈을 요구하는 관리가 없나? 마을 사람들끼리 담합을 하여 일괄 생활비 지급을 요구하지를 않나? 누가 누구에게
큰 소리를 쳐야 하는 지 알 수 없다. 오히려 내가 그들로부터 당하고 있는 셈이다.
어서 한국으로 가고 싶다.
그냥 딱 눈 감고 며칠을 시원한 바람이나 쐬면서 산책을 하고 싶다.
자장면도 먹고 사우나도 하고 감자탕에 들어 있는 돼지 등뼈에 붙어 있는 살뎅이도 발려 먹고 싶다.
사람 하나 믿고 왔는데 그들도 기대할 수 없다니......
갑자기 예수라는 청년이 생각난다.
하느님의 아들로 이 땅에 왔건만 사람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중에는 자기가 병을 고쳐주고
먹을 것을 준 사람도 있었으리라. 병 고침을 받고 허기를 면한 사람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쳤다고 한다. 정말 그럴 수가 있을까 했는데 여기 인도에 와 보니 그것도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예수가 메고 간 십자가 보다야 나으니까.
그가 받았던 고통에 비한다면 여기 지금 내가 겪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수옵소서. 지금 저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저지르고 있는 지 알 지 못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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