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 속의 강함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그 동안 강함이 없는 약함이지 않았는가?
남을 배려한다는 명분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최우선에 둔 나의 사고!
그 결과는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이익이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이해관계가 얽힌 인간사에서 이는 용납될 수가 없었던 것을
나만이 고집스럽게 고수해 왔던 것 같다.
그 결과는 나에게 결국 비굴함으로 발전된 것 같다!
이 번일을 계기로 업무를 변경해 주길 요구해 관철시켰다.
좋은하루 되세요.
안녕. 나는새..
유유상종..
너무 비슷한 느낌..
그러나 믿음은 버리지 않습니다.
언젠가 능력이나 재주가 안되어서
상대를 추어준것이 아닌
진정한 배려요.. 양보임을 알게 되지 않을까..
전..
그렇게 생각할래요.
내 앞서는 것으로
더구나 상대를 밀쳐냈다는 자괴감에
적어도 빠지지는 않을테니깐요.
까짓 주죠.. 뭐.
눈 앞에 보여지지 않아도
나 자신에게 떳떳하니깐요.
빌어봅니다.
그 같은 마음을..
寓話 의 江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이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이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강자의 이익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한국일보에서)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와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소크라테스는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주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나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편들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더 옹호해주는 것 같아 보이니, 이것은 나의 비관론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일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마침내 타결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센 반대와 저항을 하였지만 별 소용이 없다. 그들은 앞으로 비준 반대 운동과 정권 퇴진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한다. 아마 별 소용 없을 것이다.
● FTA 체결은 강자의 지배 때문
세상을 강자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의 강자는 누구일까? 나는 대기업이라고 본다.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세상을 살찌우는 길이다. 기업 이익의 극대화가 세상의 문화와 정치와 사회의 목적이다. 이에 저항하는 사람은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거나 반대밖에 모르는 얼간이다.
노무현 후보가 서민 대중과 젊은 층을 대변하겠다고 선풍을 일으키며 집권한 것은 일종의 사기행각임이 판명되었다. 그는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노선을 채택하여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를 앞장서서 받아들이고 자유무역협정을 선도하였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에게 좌파라고 공격 받은 것은 그가 정치적으로 서툴렀기 때문이었다. 사회경제 정책으로 보면 그는 오히려 강자의 이익을 추종하는 우파이다. 다만 명시적으로는 늦게 합류했을 뿐이다.
한국이 미국과 자유무역을 하여 얼마나 경제적 이익을 볼지, 아니면 손해를 볼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그것이 한국의 강자에게 이익이고 약자에게 손해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숫자로 따질 수 없는 정신과 문화의 영역에서는 한국 전체가 손해일 것이다.
미국 문화가 지금보다 더 물밀듯이 들어오면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이 지금보다 더 희미해질 것은 당연하다. 이런 중대한 결과에 대해 사람들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쌀이나 소 뼈 조각과는 달리 직접 이해당사자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무역협정이 가져올 정신적 변화에 대해 그만큼 무관심한 것은 우리의 문화 수준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자의 이익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강자는 미국의 강자와 되도록 비슷해지는 것이 이익이다. 돈을 놓고는 서로 경쟁하지만 심리적, 문화적으로 그들은 하나다. 그래서 그들은 이름을 점점 더 영어로 짓고 심지어 한국어를 없애고 영어만 쓰기를 원하기도 한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세계화 시대의 주변인으로, 먹물 약자의 표상이다.
● 한국 강자는 미국 비슷하면 이익
한미 협상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노력한 협상단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미국을 '정신적으로' 극복하면서까지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주기를 그들에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노 대통령이 자유무역협정을 선도한 것이나 그들이 미국 협상단과 협상한 것이나, 세계의 패자 미국의 힘에 편입되거나 편승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었으니, 애당초 미국을 심리적으로 극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에게는 농민의 피눈물이나 나처럼 한가로운 사람의 정신 문화 운운은 거쳐 지나가야 할 통과의례일 뿐이고, "참 안 되었지만 국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네요!" 한 마디로 사라져야 할 약자들의 불평이고 소란일 뿐이다.
한국 역사에서 강자는 언제나 바깥의 강자와 연합하여 약자인 민중의 저항을 억눌렀다. 이번 일도 그 역사의 연장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약자여, 언젠가 한 번은 다른 길도 걸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약자도 대우 받는 시대는 정녕 오지 않을 것인가?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한국일보에서)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와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소크라테스는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주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나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편들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더 옹호해주는 것 같아 보이니, 이것은 나의 비관론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일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마침내 타결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센 반대와 저항을 하였지만 별 소용이 없다. 그들은 앞으로 비준 반대 운동과 정권 퇴진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한다. 아마 별 소용 없을 것이다.
● FTA 체결은 강자의 지배 때문
세상을 강자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의 강자는 누구일까? 나는 대기업이라고 본다.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세상을 살찌우는 길이다. 기업 이익의 극대화가 세상의 문화와 정치와 사회의 목적이다. 이에 저항하는 사람은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거나 반대밖에 모르는 얼간이다.
노무현 후보가 서민 대중과 젊은 층을 대변하겠다고 선풍을 일으키며 집권한 것은 일종의 사기행각임이 판명되었다. 그는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노선을 채택하여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를 앞장서서 받아들이고 자유무역협정을 선도하였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에게 좌파라고 공격 받은 것은 그가 정치적으로 서툴렀기 때문이었다. 사회경제 정책으로 보면 그는 오히려 강자의 이익을 추종하는 우파이다. 다만 명시적으로는 늦게 합류했을 뿐이다.
한국이 미국과 자유무역을 하여 얼마나 경제적 이익을 볼지, 아니면 손해를 볼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그것이 한국의 강자에게 이익이고 약자에게 손해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숫자로 따질 수 없는 정신과 문화의 영역에서는 한국 전체가 손해일 것이다.
미국 문화가 지금보다 더 물밀듯이 들어오면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이 지금보다 더 희미해질 것은 당연하다. 이런 중대한 결과에 대해 사람들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쌀이나 소 뼈 조각과는 달리 직접 이해당사자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무역협정이 가져올 정신적 변화에 대해 그만큼 무관심한 것은 우리의 문화 수준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자의 이익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강자는 미국의 강자와 되도록 비슷해지는 것이 이익이다. 돈을 놓고는 서로 경쟁하지만 심리적, 문화적으로 그들은 하나다. 그래서 그들은 이름을 점점 더 영어로 짓고 심지어 한국어를 없애고 영어만 쓰기를 원하기도 한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세계화 시대의 주변인으로, 먹물 약자의 표상이다.
● 한국 강자는 미국 비슷하면 이익
한미 협상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노력한 협상단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미국을 '정신적으로' 극복하면서까지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주기를 그들에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노 대통령이 자유무역협정을 선도한 것이나 그들이 미국 협상단과 협상한 것이나, 세계의 패자 미국의 힘에 편입되거나 편승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었으니, 애당초 미국을 심리적으로 극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에게는 농민의 피눈물이나 나처럼 한가로운 사람의 정신 문화 운운은 거쳐 지나가야 할 통과의례일 뿐이고, "참 안 되었지만 국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네요!" 한 마디로 사라져야 할 약자들의 불평이고 소란일 뿐이다.
한국 역사에서 강자는 언제나 바깥의 강자와 연합하여 약자인 민중의 저항을 억눌렀다. 이번 일도 그 역사의 연장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약자여, 언젠가 한 번은 다른 길도 걸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약자도 대우 받는 시대는 정녕 오지 않을 것인가?
'오늘의 교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기와 고려! (0) | 2007.05.15 |
---|---|
나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구나 (0) | 2007.05.09 |
善이란! (0) | 2007.03.27 |
[스크랩] 새를 만나려고 (0) | 2007.03.23 |
신용 信用 (0) | 2007.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