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있던 무렵, 나는 장준하를 가까이서 자주 뵐 수 있었다. 박정희정권은 삼선개헌을 통과해 종신집권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고, 반대로 야당과 재야민주진영은 깊은 좌절과 침체에 빠져 있었다. 그때 장준하는 비록 필마단기이기는 했지만, 그 누구보다 박정희와 강렬하게 맞서고 있었다. 일본군장교가 되어 독립군을 쫓던 박정희에게, 독립군 출신인 자신이 결코 정신적으로는 져서 안 된다면서 매일 아침 냉수마찰을 하는 등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그 조용하면서도 신독(愼獨)한 자세는 과연 지사의 면모가 약여하였다.
유신, 통일에의 순수한 열정과 진정성을 배신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그것은 필시 박정희의 민족애, 또는 민족통일에 대한 열정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종신집권을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공작이요 카드였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의 저의를 의심했다. 그러나 장준하는 달랐다. 단순히 찬성하는 정도를 지나 어린애처럼 좋아하고 기뻐했다. 이때 그 유명한 장준하의 대사(臺辭)가 나온다. “모든 통일은 다 좋은가.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 민족적 양심에 살려는 사람의 지상과제가 분단된 민족의 통일이라고 할 때, 어떻게 이 사실을 엄청난 감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말로 따지고 글자로 적기 전에 콧날이 시큰하고, 마침내 왈칵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으랴.”
대지(大智)는 약우(若愚)라고 했던가. 우리는 장준하의 그 순수한 열정과 진정성 앞에 우리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장준하는 얼마가지 않아 참담한 배신을 맛보게 된다. 박정희는 ‘대화 있는 남북대결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유신을 선포하는 것이다. 장준하는 그 유신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긴급조치 1, 4호 위반으로 15년의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병을 얻어 출옥했지만, 아직껏 그 죽음의 진상마저 가려진 채, 유신치하에서 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반(反)노무현이면 다 좋은가. 하기는 대통령 자신조차 ‘반노무현이면 모두가 다 정의’라는 세태에 울분을 토로한 적도 있다. 이런 정권이 다시 태어나서는 안된다는, 그 반면교사가 되고 있는 것만이 이 정권의 유일한 치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이 4년여 동안 보여준 무능과, 독선과 치기에 국민은 실망한지 이미 오래요, 그 하는 일(정책)이나 인사와 언행 그 대부분이 국민을 식상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반노무현이면 다 좋은가.’ 나는 적어도 역사의 정의와 그 힘을 믿으며 역사는 정의의 방향, 정(正)의 방향으로 흘러야 그것이 정도라고 확신한다. 노무현과 이회창이 맞붙은 지난번 대선은 “이 나라의 국민은 결코 역사가 거꾸로 흐르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고 나는 해석한다. 독재에 대한 반독재 민주가 정의요, 그렇게 흐르는 것이 역사의 정의 방향임은 물론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대선 후보들에게는 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엄혹하고 살벌했던 유신과 군부독재시절, 당신은 그때 어디서 무얼 했느냐”고. 독재의 장막 뒤에 숨어 싸늘한 시선으로 학생과 민주인사들이 개처럼 끌려가 고문당하고 마침내는 주검이 되어 나오는 것을 보기만 했는지, 아니면 개발이란 것에 편승하여 부동산투기로 떼돈을 벌고 있었는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릴 수 없어
얼마 전 유력한 대선후보의 한사람은 긴급조치 위반자를 재판한 판사 명단을 자료차원에서 공개한 것을 놓고, 그것이 자신에 대한 정치공세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만천하에 권력에 의한 강탈임이 명백히 밝혀진 부일장학회(釜日奬學會) 같은 것을 놓고도 구차한 변설로 되돌려주지 않고 있다. 그런 논리, 그런 생각이라면 진실은 끝내 밝혀질 수 없을 것이며, 정의는 영원히 바로 서는 날이 없게 될 것이다. 혹자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고 하고, 혹자는 진실을 밝히되 국민내부의 화해를 해쳐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용서는 진실이 밝혀지고 나서야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요, 화해는 속죄와 반성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이들 유력한 후보라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한 국가비전이나 변변한 정책마저 없는 데다가 민감한 국가의 현안문제에 그들은 애써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과거의 개발논리와 유신독재에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다. 이제는 줄까지 세우고 있다. 이것은 분명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는 조짐에 다름 아니다. 나는 반노무현이면 다 좋은가와 함께, 21세기 새로운 문명시대에 과연 우리만 역사를 거꾸로 되돌려도 좋은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다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그 물길을 막거나, 거꾸로 되돌리는 일은 결코 이 나라 역사에서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역사 속에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글쓴이 /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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