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의 아부다비에서 개최되는 ROADEX 참관차 삼월 십일일부터 십팔일까지 6박8일간의 아랍에미레이트의 듀바이․아부다비(2박3일), 이집트의 카이로․룩소르(3박4일), 터키의 이스탄불(1박2일)을 다녀왔다.
간략하게 일정을 살펴보면
3/10 17:30 익산 출발,
3/11 00:30 인천공항 출발, 05:30 듀바이공항 도착,
3/12 아부다비 ROADEX참관,
3/13 15:50 듀바이공항 출발, 18:00 카이로 도착,
3/14 05:00 카이로 공항 출발, 06:00 룩소르공항 도착 왕가의 계곡, 룩소 신전, 카르낙 신전,
엠논거상, 황세수트 신전 등 견학, 19:00 룩소르공항 출발,
3/15 사카라의 계단식피라밋, 기자의 피라밋(1943.11.23~27 2차세계대전의 전후처리문제를 협의한 “카이로선언” 회담장소가 인근에 가장 근접한 호텔임), 스핑크스, 이집트박물관 견학,
3/16 14:00 카이로공항 출발, 17:00 이스탄블공항 도착,
3/17 톱카프 궁전, 블루모스크, 336개의 돌기둥이 더 받치고 있는 지하물 저장고 견학 및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러스 크루즈(정규선), 19:20 이스탄블공항 출발,
3/18 17:00 인천공항 도착, 21:30 익산도착.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은 거두절미하고 이집트에서의 느낀 점만을 피력하고 싶다.
이집트는 2003년 현재 미화$1,500로 룩소르의 시장을 보아서는 우리 나라의 60년대 초(사실 내가 세상에 나온지 몇 년되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상황으로 인식했답니다.
즉,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후진국에 속하는데 과연 지금으로부터 약 5천여년 전의 그 찬란한 문화와 기술을 가지고 있던 민족이 왜 지금은 이와 같이 되었을까요?
난 개인적으로 그 기술과 문화를 절대군주의 영생과 사치에 정력을 소모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만약 국가발전을 위해 사용하였더라면 선진국의 반열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 각자의 가정, 국가는 절대로 현재에 안위하지 말고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변화해야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답니다.
참고로 이집트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은 영국, 프랑스 등에 빼앗겨 그야말로 조족지혈 정도인데 그중 푸탄카문의 묘에서 발굴된 것을 위주로 보았는데 입이 쩍벌어졌으며,
세계7대불가사의중 하나인 피라미드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네이버에서 가져왔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건조물인 피라미드는 고 왕국의 전성기인 기원전 2700년 경에 만들어 졌다. 이집트 전체에서 94개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로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쿠프왕의 피라미드의 경우 2,352,000개에서 268만 여개 정도의 각 2.5t 내지 10t 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었다. 석회암은 모깔담과 기자 남동쪽 15km 지점의 엘뚜르 등에서 캐내어 이용하였다. 화강암의 경우는 카이로 남쪽 850km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통하여 운반 해 왔다.
돌을 쌓은 단층의 수는 원래 210계단 이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것은 203계단이다. 하루 10만여명이 1년에 3,4 개월씩 20여년(총 2천여일) 동안, 연인원 2~3억명이 동원된 대규모 공사로서 용도는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밑변의 길이 230.3m, 겉표면에 있었던 돌의 17만여개는 아랍과 터키 점령하에서 건축자재로 재활용 되느라 벗겨졌다. 칼리프 알마문이 뚫은 구멍을 통해 내부로 들어 갈 수 있으며 원래의 입구는 이보다 위쪽 10m 지점에 있다.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50년간 통치한 쿠프왕은 모든 신전을 폐쇄하고 제사를 금지시키고 자기만을 숭배토록 했다.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위하여 돌을 옮길 둑길을 만드는데 만도 10년이 소모되었는데 전체길이가 1km, 폭이 18m, 가장 높은 곳의 높이가 14.4m였다. 이 길에 여러가지 동물의 모습을 새겨 장식하였고, 다듬은 돌로 축조하였다. 돌길이는 90cm 이하가 없었다. 피라미드에는 상형 문자로 이일에 동원된 일꾼들이 먹어치운 무, 양파, 마늘의 양이 기록되어 있다. 그 액수는 은 1,600 달란트에 해당된다. 이것이 맞는 기록이라면 공사용 철제품과 노무자들의 주,부식 옷가지등을 지급하는데 따른 비용은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상상이 안간다. 돌을 잘라 나르고 지하 수로를 파는 데만도 적잖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지하의 쿠프왕의 현실은 나일강의 물을 운하로 끌어드린 물로 마치 섬처럼 만들어 졌다.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의 기초를 쌓은 대는 이디오피아 산의 다양한 색깔의 돌을 사용하였다. 그는 쿠프왕의 동생으로 56년간 통치하였다. 쿠푸, 카프레 왕은 106년간을 통치하였다. 카프레 왕의 아들인 멘카우레 왕은 신전을 다시 열고, 노역에서 해방시켜 생업에 종사토록 하였으며, 종교적인 관습을 실행하도록 허용하였다.
원래 높이 현재높이 밑변길이 부피(만㎥) 무게(만t)
쿠푸왕의 피라미드 146.5 137.2 230.3 259 650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143.5 136.5 214.6 220 550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 66.5 62.0 104.7 23.9 60
피라미드의 가장 경이로운 점은 아마도 그 거대한 구조물의 방향일 것이다. 각 능선은 거의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그 각도의 오차는 진북(眞北)에서 5분 밖에 벗어나 있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어서, 우연의 배열의 결과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또한 현대 20세기의 건축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정확성은 도저히 인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이다. 105 m 높이의 '상승통로'는 완벽한 배열에서 1cm 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 피라미드가 건조될 당시 천구(天球)의 북극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용자리의 알파별을 지표로 삼아 이 통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또한, 대피라미드의 3~4백미터 남쪽 카프레 계곡 사원 부근에는 대(大)스핑크스가 있다. 바위산을 깎아 만든 이 스핑크스는 얼굴은 카프레 왕이고 몸은 누워 있는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길이는 약 73m, 높이는 20m에 달한다"
ISTANBUL PRINCE HOTEL의 바에서 댓 명이 맥주로 9일간의 해외출장을 마감하는 마지막 밤을 정리하며, 옆에 있는 미도레스토랑 가라오케 바(우리나라 사람 운영)에 가 노래를 부르며 마시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입장료 us 5$을 내고 가야하는데 한국인 여사장이 어느 정도 술이 취한 우리를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결국 모두 숙소로 올라 갔는데 난 갔다가 다시 내려왔더니 한국 사람으로서 체신을 잃지 마라는 말과 함께 입장을 허용한다.
테이블별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우리와 똑 같고, 음악 또한 우리나라 노래방기계라 대부분 아는 노래라 난 따라 부르기도 하고 가끔 혼자 부르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7명의 투르크인과 교감이 닿아 합석하게 되어 내가 양주 1병을 US 168$(카드결재)에 사 같이 마셨는데 반병쯤 비우니 이제 자기들 집으로 가잔다.
같이 놀다 보니 50대 초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친구들인데 노래 부르는 실력들이 보통이 아니고, 사람들이 좋아보여 가겠다고 했더니 지금 나가잔다. 그래 남은 반병은 그중 젊고 서로 대화를 많이 한 젊은 남자(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도 알 수 있는 사람은 이름을 적어준 Filiz 여성이다. 7명중 3명은 여성 4명은 남성이었는데) 앞으로 보관하고 그들이 타고온 2대의 차에 분승하여 한 20분 가 4층 연립주택에 도착에 맨 윗층으로 올라 갔다.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난 무슨 음악 홀에 온지 알았다.
원형 침대 한 개가 중안에 있고 드럼 등이 구비된 원룸이었다.
한 2시간 같이 술도 마시며 노래 부르고 놀다가 4시30분에 이제 가겠다며, 깔큼한 화장실에 놓여 있는 원형무늬가 있는 조그만 돌을 기념으로 달랬더니 망설임 없이 주어 그 것을 가지고 왔다.
물론 올 때는 그중 술을 안 마신 한 친구가 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2006.06.23 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