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成

성인과 유년기 思惟의 상관관계

나는 새 2020. 12. 28. 13:03
능룡- 사는 동안童顔
<성인聖人 그리고 부재不在>

- 싯다르타 – 어머니의 부재-

고타마 싯다르타는 출생 1주일 만에 어머니를 잃었고
이모가 그를 키웠다
고대 인도사회의 전통에 따라 이모가 새엄마가 되었고 싯다르타는 이모의 젖을 먹으며 자랐다
나로 인해 엄마가 죽었다며 어린 싯다르타는
자책감을 지니고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친모의 부재 속 싯다르타는 유년을 보냈으며
그런 싯다르타는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특히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눈이 각별했다
하루는 성 밖으로 나갔다가 농부가 밭을 갈다 나타난
흙 속 벌레를 어느새 날아와 그 벌레를 쪼아먹는 새를 보았다
자연에도 삶과 죽음이 있음을 목도하며
충격을 받은 싯타르타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사유했다
이러한 사유의 힘 그 바탕에는 엄마의 부재로 인한 크나큰 결핍감이 깔려 있지에 대사유가 가능했으리라...

- 예수 - 아버지의 부재-
성경에는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났다고 기록돼 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곧 잉태를 할 것이니 아기 이름을 예수라고 지어라 천명天命이 있었다
그 이유로 목수 요셉은 그의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당시 유대 관습에 따르자면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은 여자는 돌로 때려죽였다
가문의 수치이기에 가족의 손으로 돌로 때려죽임으로써 가문의 명예가 회복된다고 믿었다
또한 동네 사람들 누구도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또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동정녀의 아들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훗날 성인이 된 예수가 고향을 찾아가 가르침을 펼칠 때 사람들은 오히려 무시했다
동네 사람들은 저 아이는 마리아의 아들이잖아 예수의 형제도 우리가 알고 예수의 누이도 우리는 알고 있다 라며 멸시하였다
이렇게 아버지의 부재속에서 자라난 예수를 성경에서 말씀하셨다

싯다르타가 어머니의 부재속에서 자라난 것처럼 유년기의 예수 그 역시 커다란 결핍 속에서 성장했던 것이다

- 공자- 67세 아버지와 16세의 어머니에서 탄생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노나라 하급 무관이었다
본처와의 사이에 딸 아홉을 낳고 첩을 보아서 겨우 아들을 낳았지만 애석하게도 다리를 쓰지 못하였다고 한다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대가 끊길까 봐 우려하던 67세의 숙량흘은 16세 처녀 안징재와 결혼하였고 나이 차이만 54세였다
얼마 후에 안징재는 공자를 낳았으나 공자가 3살 때
아버지 (69세)가 세상을 떠났고 공자 나이 16살(24세라는 설도 있음) 때는 홀어머니 안징재(34세)도 세상을 떠났다
효성이 지극한 공자는 3년 동안이나 상복을 입고
무덤을 지켰다고 한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한은 공자가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데 원인을 제공했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동북아 문명에서는 아버지를 하늘에 어머니를 땅에 비유한다
공자는 3살 때 하늘을 여의었고 16살 때는 땅마저 여의었다
그런 커다란 결핍을 안고 자라났던 공자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깊은 사유가 있었다
늘 효를 강조한 공자였지만 정작 자신은 뼈에 사무치는 부모의 아쉬움 속에서 성장했다

- 무함마드-유복자로 태어나다
싯다르타와 공자는 기원전 500년경 거의 동시대 인물이다
예수는 그로부터 500년 뒤에 태어났으며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는 예수보다 약 600년 후의 인물이다
무함마드는 유복자였다
그가 태어나기 몇 주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편을 잃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 어머니는 무함마드를 유복자로 낳았으며 6살 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모두 잃은 무함마드는 할아버지 집에 맡겨졌으나 8살 때 할아버지 또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상인이었던 숙부를 따라 험난한 사막을 횡단하며 성장했기에 무함마드의 유년기도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이와 같이불교와 유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창시자가 모두 절반의 결핍을 안고 자랐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신의 장난일까…

유년부터 혹은 날 때부터 감당해야 했던 거대한 결핍이 이들로 하여금 삶의 근원과 인생의 바닥을 깊이 사유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한 결핍이 이들에게는 커다란 목마름으로 작용했음이라...

혹자는 이러게 말한다
“종교적 깨달음을 위해서는 힘겨운 유년기와 부모의 부재가 필연적 조건인가?”

그 뜻이 아니라 핵심은 부모에 대한 상실감이 아니라
부모에 대한 결핍을 통해 이들이 어릴 적부터 던졌을
인간의 삶, 인간의 죽음에 대한 물음이 핵심이며
그 물음이 이들을 사유의 우주로 성장하게 한 것이다

싯다르타와 공자, 예수와 무함마드의 삶에는
예외 없이 고통과 번뇌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성장했기에 고통과 번뇌는 사유의 삶속에서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번뇌는 고통과 함께 한다
그래서 다들 싫어하며 피하려 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삶의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

부처와 공자, 예수도 피하지 못한 삶의 문제를
과연 누가 피할 수 있겠는가…

삶의 문제가 없다면 과연 삶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 문제가 있어야 그 속에 답이 있다

문제가 없다면 답도 없다.
그러니 삶의 문제가 있어야 삶의 답도 알 수 있다

번뇌를 사유로 하나하나 풀면서 이치를 터득하며
그 속에서 심상이 열리고 지혜도 성장한다

그런 지혜의 힘이 평화롭게 하며 삶을 자유롭게 만든다

이렇게 더 많은 번뇌와 마주하며
적극적으로 풀었던 사람이 더 지혜롭다

더 큰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 더 강하며
더 깊은 아픔을 지나온 사람의 시선이 더 깊고 광대하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 또한 삶 속에 답이 있음이라 성인의 결핍과 상실의 부재처럼
우리는 삶에서 사유의 진주 곧 진리 또한
부재속에서 만날수 있음이라...


인생은 밥이다
어차피
내가 소화해야 한다
꼭꼭 씹어서
능룡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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