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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구도1

지성유인식 2018. 6. 29. 18:14

소크라테스의 변명 1

 

(이 글역시 실제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철학자들의 이름과 약간의 역사적인 사실에서 모티브(Motive)만 약간 가져왔을뿐 실제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의 이론과는 전혀 상관없으니 혼동일으키시는 벗님들이 안계시길 바랍니다.)

 

2500여년전 그리스 아테네엔 소크라테스라는 성자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소크라테스가 아직 성자라 불리기전 어린 시절부터 시작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린시절 약간 특이하고 별난 아이였습니다.

소크라테스스는 사물을 볼 때 다른 아이들과 항상 다른 각도로 보는 아이였습니다.

가령 선생님이 1+1 에 대해 질문하면 다른 아이들은 다 2라고 대답하는데 소크라테스는 1 + 1의 질문 자체를 이해 하지 못했습니다.

 

한덩어리의 진흙에 다른 한덩어리의 진흙을 더하면 더욱 큰 한덩어리의 진흙이 될분이지 어떻게 두개의 진흙이 될까?.가 소크라테스의 생각입니다.

 

한번은 이런적도 있습니다.

세상 가득한 공기를 가르고 매일같이 이동하는 수많은 생물들처럼 벽이나 나무를 가르고 이동할 수는 없을지를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벽이나 나무를 부시고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딱딱한 사물을 액체처럼 무르게 만들어 그사이를 지나고 나면 다시 딱딱한 사물이 되게 하는 법이 없을까?… 다른 또래의 친구들은 하지 못할 많은 상상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소크라테스입니다.

 

지루할법도 하건만 소크라테스에게는 하루는 너무 빨리 지나갔습니다.

조금만 사색하고 생각에 잠기다 보면 그새 하루가 가곤 했으니까요!

하루종일 마당에 서서 생각하는게 소크라테스의 일과입니다.

 

이런 소크라테스를 이해 못하는 친구들과 어른들은 어린시절 소크라테스를 둔한 녀석 혹은 지진아(遲進兒)라고 까지 불렀었습니다.

 

하지만 현명한 어른은 소크라테스와 대화해보면 아이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일반인들과 다른뿐 아주 영특한 아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일곱살이 됐을 무렵 우연히 마을에서 어른들이 돼지 도살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 장면을 보고는 소크라테스는 그냥 기절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식탁에 올라오는 고기는 과일처럼 나무에서 열리는 것이라 생각했지 저렇게 다른 동물을 죽여서 그 시체에서 발라낸 살 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동물이 자신과 다르게 생겼다면 모르겠지만,

어린 소크라테스의 눈으론 돼지와 자신이 무엇이 다른지를 알수가 없었습니다.

돼지도 자신처럼 눈 두개에, 콧구멍 두개, 귀 두개, 입한개, 이빨 앞다리(팔), 뒷다리… 똑같이 생겼고 다르다면 소크라테스의 관점으론 돼지가 자신보다 좀더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아테네 사람들은 형재를 죽이고 그 시체를 뜯어 먹는 잔인한 살인마 집단으로 보였습니다.

 

외모가 다르면 잔인하게 도살되고 그 시체마저 훼손되야 된다는 세상사람들이 당연시 받아들이는 이치가 소크라테스에게는 바른 이치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소크라테스는 세상에 대한 의문,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의문, 그리고 자신이 그러한 의문을 왜 갖는지, 이러한 무섭고 두려운 세상은 왜 존재하고, 그안에서 왜 우리는 존재하고, 그 존재에 대한 아무런 의문없이 다른 사람들은 살아가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의문을 철학과 신학에서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철학과 신학이야말로 나름 존재의 진실을 가장 절실히 규명하고자 하는 이들이 쓴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만났던 모든 소피스트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실망만을 주었을 뿐입니다.

 

소프스트들의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은 세상의 한 단면반 보고 이야기하는 이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른 다는것을, 이해 못한 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않아 더욱 현란한 언어 유희로서 감추고 더욱 복잡한 추상적 표현으로서 무지한 제자들을 속이는 소피스트들따윈 한심하게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신학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큰 영감을 주었느냐? 한다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신화속에 감춰진 진실을 볼수 있는 소크라테스에게는 신학자들과 성직자들의 맹목적인 믿음 강요와 어떤 초능력을 가진 인격신을 숭배하는 모습은 그저 노예가 자신의 주인을 숭배하는 듯한 어리석은 자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많은 신들,

사람들이 신이라 부르는 태양신 아폴론(Apollo)이 사실은 신이 아닌 먼 옛날 큰 깨달음을 얻고 수많은 그리스 인들을 교화하던 성자였음을 소크라테스는 많은 문헌들을 통해 추측할수 있었습니다.

 

아폴론뿐이 아닌 술의신 디오니소스도, 신들의 왕인 바람둥이 신 제우스도, 대지의 신 데메테르도, 대장장이신인 헤파이토스 신도, 지혜의 여신 아테네를 모신 파르테논신도 모두가 고대의 깨달은 자를 신격화 한것이란 것을 소크라테스는 알게되었습니다.

 

그중 디오니소스이야기를 간략히 한다면 디오니소스는 설법의 귀재이며, 그의 설법은 많은 사람들을 바로 신의 경지에 이르게 했다고 합니다

.

아폴론은 설법을 할 때 마치 수수께끼를 풀듯이 신도들이 이치를 직접 풀어가도록 적절한 방편으로 설법을 한 반면 디오니소스는 너무도 쉽게 일자무식인 자들도 신들의 말씀을 이해할수 있고 받아들일수 있게 설법했다고 합니다.

 

디오니소스의 설법은 야만과 난폭한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던 그리스인들에게 큰 마음의 안정을 주게 되었고,

 

특히 감성적인 여인들의 경우 디오니소스가 자신이 사는 마을로 전도(傳道) 하러 올때면 마치 광기에 취한 이들처럼 그를 열렬히 추종했다고 합니다.

 

성자가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는 것을 좋아할리 없었던 그리스의 왕들은 그에게 끝없는 중상모략과 시련을 주었으나 결국에는 그 왕들 마저 성자 디오니소스를 경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시간이 오래 흐리니 와전 되고 또 와전 되어 어리석은 신학자들은 디오니소스는 제우스 신의 아들이고,

 

그가 그리스 왕들의 질투심 때문에 겪은 시련은 첩의 아들을 질투한 헤라 여신이 준 시련이라고 그들의 신학에 짜 맞추어 기록했던 것입니다.

 

또한 디오니소스를 성자가 아닌 술의 신이라 규정하고 그가 술의 신인지라 가는 곳마다 취한 여인들이 그를 찾아와 광란의 파티가 벌어졌다는 말도 안되는 누명(陋名)을 씌웠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의 탄생은 위대한 성자의 말씀에서 시작된 것을 그 성자의 말씀을 이해 못하는 어리석은 신학자나 성직자들은 자신들은 이해 못하는 성자들의 말씀을 신 혹은 신의 아들이기에 그런 이야기를 할수 있었다고 생각하여 기록을 남기며 지금의 많은 그리스 신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오늘 진리를 듣게 된다면 내일 죽어도 좋다는 처절한 투쟁과 같은 마음으로 진리 탐구에 대한 수양(修養)을 하던 청년 소크라테스는 처음 글을 배운 열살부터 이십년을 넘는 세월을 진리를 찾으려 노력했으나 진리는 닿을 듯 말 듯 하기만하고 도무지 진리의 실마리를 잡을수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여행을 결심합니다.

 

고대의 성자들중에서도 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자가 많다는 문헌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신들의 신전으로 여행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오직 한가지 이유입니다.

그 신들의 깨달음을 나누어 받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우선 가까운 아고라 광장의 근처에 있는 헤파이토스 신전을 먼저 찾아가 봤습니다.

대장장이로서 깨달음을 얻은 헤파이토스는 대장간의 불꽃에서 온 우주의 이치를 발견했다는 신입니다.

 

헤파이토스 전기를 읽고 헤파이토스의 신전과 행적을 따라가 보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아무것도 얻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엔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 여신을 섬기는 파르테논 신전에 가보았으나, 역시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깨달음도 얻을수 없었습니다.

 

이번엔 좀 멀리 떨어진 아폴론이 지었다는 델포이(delphoi) 신전으로 여행을 가보려했습니다.

 

아테네에서 델포이까지는 직선 거리로 100KM에 육박하는 거리이고 교통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기에는 에둘러 가야하는 200KM의 거리입니다.

 

어찌 보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를 위험한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들의 보살핌 덕분인지,

몇번이나 산적들을 만나서 위협을 당하는 일이 있었지만 무사히 델포이 신전에 도착할수 있었습니다.

 

델포이 신전에서 신녀(神女)에게 인사들 드리고 신전을 돌아보는데 신전 앞마당에 아폴론신께서 직접 새겨 놓으셨다는 돌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거에는 이 한마디가 적혀 있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문구를 읽는데 소크라테스는 그가 평생을 찾아해메던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문구를 델포이 신전에서 처음 들은 것은 아닙니다.

소크라테스를 가르쳤던 선생님들,

그리고 소피스트 철학자 들에의해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문구입니다.

 

어린시절의 선생님들과 소피스트들은 교훈적 의미 혹은 신분에 대한 주제를 파악하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하고, 신분을 넘어선 꿈을 꾸는 어리석은 자들을 비웃기 위한 용도로 자주 이용하곤 했었지만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의 앞마당의 돌판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문구에서 진정한 신의 진리를 터득하였습니다.

 

과거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을 어째서 델포이 신전의 돌판에 새겨진 문구를 보고 새롭게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지는 그도 모릅니다.

 

아폴론신의 영(靈)이 소크라테스에게 깨달음을 전해 주었는지도 모르지요.

 

델포이신전 앞마당에 놓여져 있는 돌판의 ‘너 자신을 알라!’를 통해 소크라테스는 존재의 본질과, 온세상 가득하면서도 가장 존귀한 나의 본질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터득한 나의 본질은 이 육신에 갖혀있는 작은 인간으로서의 나가 아닌 대우주자체로서의 나입니다.

 

육체에 갖혀있는 작은 마음이 아닌,

크디 큰 대우주의 큰 마음에서 이세상이 창조 되었고,

그 큰 마음(가이아)가 바로 작은 한 인간 소크라테스이며, 그리스의 소피스트 철학자들이며, 수많은 다른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폴론신께서

‘너 자신을 알라!’라고 남기신 말은 주제파악하라는 뜻이 아닌

자신의 진정한 실체를 깨달아 신으로 거듭나라는 의미 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그리고 세상 모든 생명들은, 그리고 인간의 관점에서는 무생물로 보이는 공기 바람, 돌, 바위…도 모두 가이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모두가 가이아임을 소크라테스는 알게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하늘을 나는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위대한 현자(賢者), 전설에나 나올 신의 가르침을 이해할수 있는 성자(聖者)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가 그동안 공부하던 수많은 철학, 물리학, 수리학, 웅변학…은 깨달은 소크라테스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 소크라테스는 그 입만 살은 소피스트들의 논리를 철저히 깨부수고 우스개 거리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직 육체의 나이는 서른살의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기에 다른 지식인을 그 지식인이 상상도 못할 논리로 깨부수는데에 희열까지 느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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