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우리의 DNA와 사회-원불교와 불교의 관점 업보와 동포은

지성유인식 2018. 6. 19. 00:21

 

황진이.......

 

그녀는 여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조선중엽의 여인으로 태어난 것도 부족했던지, 사람대접조차도 받지 못했던 기생출신(妓生出身)이면서 양반의 첩(妾)이었던 여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만, 그러나 양반과 기생을 부모로 하여 태어났던 까닭에 소리와 무용과 각종 악기는 물론 학문까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양반의 첩이 되는 외의 삶이란 있을 수가 없었기에, 결국 그녀의 어머니처럼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이는 이웃의 청년이 그녀를 짝사랑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었음을 원인으로 기생이 되었다고들 하지만,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결국 기생출신의 첩을 어머니로 해서 태어난 딸이었음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기생이 된 그녀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감수성이 풍부했던 성품으로 많은 선비들을 희롱하며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살았었는데....... 그런 그녀가 가장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명창(名唱) ‘이사종’과 화담 ‘서경덕’, 그리고 ‘지족선사’와 이름 모를 한 선비였습니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졌던 네 사람을 잘 살펴보면, 첫 번째는 소리의 대가(大家)였고, 두 번째는 유교(儒敎)의 대가였으며, 세 번째는 불교(佛敎)의 고승(高僧)이었고, 네 번째는 신선술(神仙術)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만나고 이별했던 사람들을 살펴본 우리는....... 그녀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삶을 살고는 있었으나....... 사회적인 신분의 불평등으로 인해 겪던 상상도 못할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마치 상자 속에 갇힌 다람쥐가 끊임없이 쳇바퀴를 돌리듯,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음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윤회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 즉 ‘유교’와 ‘불교’, 그리고 ‘신선술’에 능통했던 스승들과의 인연을 기회로 하여....... 현세는 물론 영원히 행복하고 편안하며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야말로 자기 자신이 처했던 환경과 입장과 상대들 속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다했던 선구적인 사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그랬던 그녀는 많은 시조를 남겼는데, 아래의 시는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진 시조들 중 네 가지입니다.

 

*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시는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명창, 이사종을 향해서)

 

* 푸른 골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 마라,/ 길에 물이 차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밝은 달이 산 위에 차니 쉬어 간들 어떠리........(유생, 이종숙을 향해서)

 

* 내가 언제 믿음 없이 굴었으며,/ 임을 언제 속였기에,/ 달 기운 깊은 밤에 오려는 뜻이 전혀 없나./ 가을 바람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유생, 서경덕을 향해서)

 

* 푸른 산은 내 뜻이요, 푸른 물은 임의 정이라./ 푸른 물 흘러간들 푸른 산이야 변할 손가./ 푸른 물도 푸른 산을 못 잊어 울면서 가는가?.......(승려, 지족선사를 향해서)

 

위의 시조들을 살펴보면 하나 같이 무정히 떠난, 또는 떠나는 임들을 그리워하는, 그러나 티끌만큼도 원망하지 않았던 내용들인데....... 그것만을 보아도 그녀가 현실적인 삶의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영원할 삶을 추구했던, 그 어떤 면에서도 뛰어난 성품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행방불명된 뒤, 선비였던 ‘임제’가 황진이를 생각하며 지은 시조를 하나 더 적어 보았습니다.

 

* 푸른 풀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발그레했던 얼굴은 어디 가고 하얀 뼈만 묻혔나니,/ 잔 들어 권할 이 없으니 이를 설워하노라.

 

임제의 위와 같은 시조는 그가 평안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평양으로 가든 중, 송도에 있던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 술을 따라놓고 슬퍼하면서 지었다는데, 그런 사실이 조정에 알려진 그는 즉시 삭탈관직(削奪官職) 되었다더군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궁금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녀가 세속의 모든 것들을 다 정리한 다음 금강산으로 들어간 후 거의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송도에 웬 그녀의 묘소가 있었냐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행방불명된 것이 사실이라면, 임제라는 선비, 엉뚱한 이의 묘를 찾아가 슬퍼하면서 술을 마시다가 곤욕을 치렀었다는 것이겠죠?

 

그러나 역사는 거의 과장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 각각 나름대로의 알음알이에 의해 전해져 왔음이라, 위의 임제님의 전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가신 임제님은 물론 그녀와 함께 하셨던 모든 임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성불하셨기를....... 성불하시기를 발원합니다... () .

 

.......

 

<페북 혜관 커뮤니티에서>

 

건강한 행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두 손 모아 합장하옵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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