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운동가가 기원 전 50년부터 현재까지 자그마치 2062년 동안의 한일 관계사를 정리한 책을 펴냈다. 김강열 시민생활환경회의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 이사장은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냈고, 5.18기념재단이사와 아시아생활환경회의 공동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중견 시민운동가다.
그는 이번에 펴낸 <2062년 동안의 슬픔>과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를 통해 "한국 땅이 분명한 독도가 한일 영유권 분쟁에 휘말리게 만든 주범은 바로 미국"이라며 "미국은 일본의 요청을 받고 독도를 무주지(사람이 살지 않는 땅)로 만들기 위해 세 차례나 폭격했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의 주장은 미군의 독도 폭격은 "독도를 폭격 연습장으로 사용하고 있던 미군의 오폭"이라는 그동안의 주장을 뒤엎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그 근거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협상 추이와 미 국무부 전문, 1948년 일본 정부가 미군에 독도 폭격을 요청한 사실 등을 들었다.
김 이사장은 또 최근 이명박 정부가 독도문제로 대일 강경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과 관련 "역사인식을 토대로 대처해야 하는데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며 "전쟁책임자인 일본왕의 사과와 일본의 전쟁책임을 대통령이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람직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정립을 위해서라도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은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며 "대선 주자들은 한일협정 폐기와 재협정 체결을 공약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인터뷰 전문.
"일본의 침략은 2062년 동안 지속되는 현재형"
- 400쪽이 넘게 한일관계사를 정리했다. 집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진보운동가와 시민운동가들이 민족문제와 국제문제에 대해선 건드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난 개인적으로 20년 이상을 일본 생협운동, 리사이클 운동 등 일본과 폭넓게 교류해왔다. 동남아시아나 등 여타 아시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매년 한차례 이상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을 방문하면서 '우리 역사를 똑바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됐다. 아시아의 많은 지역이 일본 침략사와 얽혀있었다.
해마다 일본 때문에 가슴 아픈 일이 몇 차례 생기더라. 일본 정치인의 망언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고, 8.15나 3.1절이 되면 군 위안부나 근로정신대 문제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그 할머니들의 아픈 가슴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역사적 사실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는데 힘들진 않았나.
"책을 쓰기 위해 2년 동안 준비했다. 대학 때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어능력시험 결과도 꽤 좋은 편이어서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 일이 수월했다. 대부분 한문으로 된 자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많이 있는 역사적 자료와 흐름을 객관적으로 정리하지 못했던 것을 난 그저 정리했을 뿐이다. 주변 지인들이 '이런 통사 하나 있어야 했는데 고맙다'고 하더라."
- 무려 2062년의 한일 관계사 중 주목한 사건은 무엇인가.
"일본의 침략은 기원전 50년 전부터 시작돼 2062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현재형이다. <삼국사기>가 왜구의 침략을 기록한 이래 끊임없이 침략해왔다. 고려시대를 보면 거의 60년 동안 고려 전역을 침탈했다. 임진왜란은 아무 것도 아닐 정도였다. 조선시대에는 약 4천만 석의 쌀을 뜯어갔다. 조선은 일본의 식량창고였던 셈이다. 많이 주면 잠잠하고 안 주면 협박하고 쳐들어가서 납치, 방화, 약탈, 살생을 반복했다.
근대에 들어서서는 강화도 조약부터 67년 동안 침략해 노략질을 했다. 그 만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치밀하고 잔인하게 우리의 문화와 지하자원을 수탈해갔다. 일제 식민시절 동안 그들이 우리에게서 침탈해간 금만 200톤이 넘는다. 그런데 박정희는 딸랑 5억 달러 받고 한일협정을 체결했다. 잘못된 협정이었다. '5억 달러 주겠다, 그때 가져간 것은 다주라, 피해 다 보상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금 200톤만 계산해도 얼마인가."
- 국가 간 맺은 협정이기 때문에 재협정 체결은 무리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무슨 소린가, 국가 간 맺은 협정이기 때문에 재협정 체결이 가능한 것이다. 일본이 한일협정 체결 조건으로 준 5억 달러가 어떤 돈인가. 일본이 패전 후 한국전쟁을 통해 번 돈의 일부다. 전범기업 미쓰비시는 네이팜탄을 만들어 한반도를 무차별 폭격해 돈을 벌었다. 그런 식으로 일본이 한국전쟁 때 번 돈이 20억 달러를 웃돈다. 한국전쟁 때 구 조선총독부 관리들이 공장, 명승지 등 폭격지점을 안내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당시 요시다 일본 수상이 말하길 '한국 전쟁은 신이 내린 전쟁'이라고 했다. 일본이 번 돈 20억 달러는 한국인의 피값이다. 패전 후 극심한 실업률 등으로 일본에서 거의 날마다 폭동이 일어나는 지경이었지만 한국전쟁을 통해 기사 회생했다. 한반도에서 죽어간 수백만 명의 목숨값으로 일본은 돈을 번 것이다."
"독도문제에 관한한 미국은 일본과 공범이 아니라 주범"
-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독도문제가 다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우선 독도 문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2차 세계대전 후 전범국 일본의 책임을 묻기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있다. 1947년 말에 작성된 5차 초안까지는 독도가 일본이 포기해야할 영토에 들어가 있다. 그러다가 1948년 6월 8일 미군이 독도를 폭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부에선 이 사건이 독도를 폭격 연습장으로 사용하던 미군의 실수 정도로 얘기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군은 일본정부의 요청을 받고 독도를 폭격했다. 일본 정부는 '독도에 마약수송선이 있다'며 미군에게 퇴치요청을 한다. 이 요청에 따라 오키나와에 있던 미 공군 소속 B-29 9대가 아무 경고 없이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윌리엄 시볼트는?
독도 문제가 거론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제의 미국인이 있다. 윌리엄 시볼트(William Sebald). 그는 2차 세계대전 후 일본 미 군정청(GHQ) 외교국장, 연합국 대일 이사회 미국 대표 겸 의장, 주일 미 정치고문 등 패전 후 일본의 운명을 좌우하는 3개의 핵심 요직을 모두 꿰차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자신의 일본문제 전임자였던 버터워스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1949년 11월 14일과 19일 전보와 공식문서를 보내 "독도 문제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다"며 "이 섬에 대한 일본 측 주장은 역사적으로 정당하니 이 섬을 일본 영토로 기재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압박했다.
그리고 미 국무부는 일본의 패전 책임을 따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6차 초안에서부터 독도를 일본이 포기해야할 영토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부인이 영국계 일본인이었던 윌리엄 시볼트는 은퇴 후 일본에 남아 법률고문회사를 운영했다.
당시 독도엔 우리 어민들이 해산물 채취와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미군이 발표한 공식자료에 따르더라도 이 폭격으로 30여 척의 배가 전파되고 150여 명의 어부가 사망했다. 폭격에 사용된 포탄 한 개의 무게가 무려 1000kg이었다. 미군은 또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에 독도를 2차 폭격한다. 그리고 미군은 같은 해 9월 22일 학술조사단이 독도를 방문하려 하자 3차 폭격을 가했다.
미군이 독도를 세 차례에 걸쳐 폭격한 것은 독도를 무주지(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땅)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 치밀하고 치졸한 음모엔 주일본 미군정 정치고문이었던 윌리엄 시볼트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친일인사가 개입돼 있다. 그는 1949년 11월 14일 미 국무부에 서한을 보내 독도를 일본이 포기해야할 영토에서 빼달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6차 초안부터는 독도가 빠지게 된 것이다. 독도문제에 관한한 미국은 일본과 공범이 아니라 주범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왕의 사과를 요구했는데.
"역사인식을 토대로 대처해야 하는데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본왕의 책임에 대해서 대통령이 정확히 애기해야 한다. 일본왕은 패전 선언을 하면서도 반성은 하나도 없었다. 일본왕은 우파 뒤에 숨지 말고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책임자다. 그는 아시아 침략을 반성하기는커녕 '나의 백성이 되어 싸워줘서 고맙다'고 적반하장으로 말했다. 수많은 아시아 사람이 죽고, 전쟁의 질곡으로 그 아픔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책임자인 일본왕의 사과와 일본의 전쟁책임을 대통령이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 도대체 일본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바람직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정립을 위해서라도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은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임진왜란 때도 명나라 장수가 오사카 가서 협상을 하고 전쟁을 끝냈다. 1965년 한일협정 때도 미국이 끼어서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 없이 한많은 식민시절 종결선언을 해버렸다. 바로 그래서다. 제대로 된 한일관계 정립을 위해서 우리가 주체로 있어야 한다. 그 첫걸음이 한일협정 폐기다. 2012년 대선 주자들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기를 자처한다면 한일협정 폐기와 재협정 체결을 공약으로 내세워야 한다."
- 이 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는가.
"한 지인이 한 회사에 이 책을 교양도서로 추천하니까 회사 관계자가 읽어보고 한다는 말이 '너무 잔인해서 교양서로 못 쓰겠다'고 했다더라. 자기역사를 잔인하다고 외면하는 너무 천박한 역사인식,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대통령부터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란 의미로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책 한권을 보냈다.
난 이 책을 한국인이라면, 또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인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일본이 기원전부터 한반도를 침략하고 괴롭히고 상처를 준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독도 문제나 식민시절 사과거부 등으로 한반도와 아시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지 않은가. 당하는 피해자들은 일본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고대, 근대, 현대 구분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학살하고 수탈하고 침략하겠다는 뜻으로 읽히기 마련이다. 일본 사람들도 읽게 하기 위해서 일본어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 책이 일본의 사죄를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작은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오마이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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