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깨어나는 봄처럼 장자연 파고가 우리를 깨우고 있다. 그녀의 억울한 삶과 죽음을 상기시키듯 죽음 2주기를 맞아 50통의 편지, 100회 성접대 자리, 31명의 1% 남성 권력자들 명단 문제가 풀어야 할 숙제로 우리 사회에 배달됐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최근 공개된 편지의 진위 여부가 관건인 양 다뤄지지만, 편지는 이미 2년 전 죽음을 앞 둔 나약한 신인 여배우로부터 배달됐다.
상식적 수준의 수사 이루어져야
법적 효력이 있도록 주민등록번호와 지장까지 찍은 상태로. 그건 마치 죽은 자가 2년이란 차이를 두고 배달된 두 가지 문건을 ‘지록위마(指鹿爲馬)’ 상황으로 몰고 갈 세태를 예견한 것처럼 보인다.
사슴도 말이라고 우기는 진짜, 가짜 논란의 판결을 권력에 야합한 또 다른 권력의 힘이 관장하게 되면,
또 다른 진실의 편지가 배달될 것이다.
여러 매체와 인터넷에서는 어떻게 이 숙제를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이 파도치고 있다.
문건의 진위여부에 돌입한 재수사와 그에 따른 법적 처벌은 당연한 일이다. 법적 정의는 진실의 힘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을 거친 사회가 민주화와 표현의 자유가 이루어진 후 과거사 진실규명을 특별법으로 만들어 진실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지구촌의 역사이기도 하다. 과거사 진실규명을 1990년대 말부터 시작한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첫 번째 배달된 문건을 동반한 장자연 자살건은 시간이 가면 잊혀질 일회성 개인사에 멈추지 않는다.2년 전 수사는 피해자를 죽음의 침묵 속에 가두고, 가해자는 증발해 버린 채 종결됐다.
제2, 제3의 장자연사태가 예견되었듯이, 우승연의 자살에 성상납 노예각서 파동과 트로트 여가수의 성노예 파문이 이어졌다. 자본 권력층이 출세를 대가로 연예계 성상납을 받는 일은 권력남의 여성편력 관행으로 넘어가기에는 불가능한 심각한 범죄적 현상이다.권력을 못 가진 남자가 성매매를 하면 범죄로 처벌받는다.
남성 상사가 부하 여직원을 성희롱하면 처벌된다.
그런데 밀실에서 성상납을 받으면 매매춘도 아니고,
연예인도 출세하려고 합의한 행동이니 범죄적 행위가 아니라는 주장, 증거 불충분이라는 인식 속에는
여성 연예인을 인권을 가진 주체로 보지 않고 운명적인 성노리개처럼 대하는 혐의가 들어 있다.
이번 재수사로 가해자 처벌이 명명백백하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갖는다. 이런 상황이 한 연예인의 피해사례에만 그치지 않고, 그간 밀실에서 권력의 비호 하에 이루어진 비리의 온상이라는 대다수 국민의 심증적 인식이 법정으로 거듭 넘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거 영화자료를 보면 나운규 감독조차 1937년 한 신문사가 주최한 원탁회의에서 여배우 다루는 법을 논하며 ‘감독 포주론’을 운운하니 진보건 보수건 자본 젠더권력의 파행은 이어져 온 것이다.
‘장자연 사건’ 개인사에 그치지 않아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 차원에서 장자연건을 풀어야 한다. 하나는 지난 번 진실규명 차원에서 국민적 설득력을 상실한 수사결과가 이번에는 셜록 홈스는 아니더라도 상식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지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왜 하필이면 특정 연예기획사 소속 여성 연예인들(장자연 외에도 최진실, 정다빈, 유니)이 줄줄이 자살을 했는가와 같은 문제도 풀어야 한다.진실의 법정이 권력의 힘 때문에 불가능하더라도 사회적 차원에서 이런 병적인 구조를 깨는, 인권이 살아있는 연예계 풍토 만들기를 반드시 해내야 한다.
자력구제 정신으로 연예계 자체부터 실력으로 크는 풍토를 만들고, 진실의 고백이 드러날 때 여성 연예인의 순결성을 요구하며 섹시함을 즐기는 우리의 이중적 잣대를 버려야 한다.
유지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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