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좋은 것은 부귀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고 바라는 바가 부하고 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세상에 싫은 일은 빈천입니다. 가난하고 천한 신분은 사람이라면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자(孔子)께서도 부귀는 사람마다 하고 싶어하는 일이다(人之所欲)라고 하였고, 빈천은 사람마다 하기 싫어하는 일이다(人之所惡)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논어). 그렇게 밝혀놓고도 인간의 욕심에 대한 절제없이는 문명세계를 이룩할 수 없다는 유교(儒敎)의 기본 원칙 때문에 공자는 하고 싶은 일에도 반드시 전제조건을 달았습니다.
바로 ‘도(道)’라는 제어장치였습니다. 아무리 이루고싶은 부귀라도 의리(義理)의 바름에 합당하지 않는 ‘도’라면 부귀를 얻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정당한 도리로써 얻어 낸 부귀가 아니면 그런 처지를 누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싫은 빈천이라도 정당한 방법과 도리에 의하지 않고 빈천에서 벗어나는 일도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오직 그에 합당한 ‘도(道)’에 의해서만 부귀에 이르고 빈천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자·주자(朱子)·다산은 모두 그런 근본 취지에 같은 뜻으로 찬성하였습니다. 요즘 세상이야 그런 어진 이들의 뜻과는 반대로 살아 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떤 도리나 의리는 버리고라도 부와 귀만 얻어내면 세상의 최고가치에 이른다고 여기는 못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도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보다 어렵다고 했건만, 수 많은 크리스찬들도 일단 부하고 보자는 세상이 오늘이 아닌가요. 정당한 방법으로 부귀에 이른다면 왜 천당에 못 가겠습니까. 정당한 방법으로만 빈천에서 벗어나야한다고 했는데, 지금의 세상에서 정당한 도리로 어떻게 빈천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는가요.
인간의 딜레마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자는 ‘안빈천(安貧賤)’, 가난하고 천해도 편안한 마음으로 견딜 수 있는 수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범인들에게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인간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다산은 한단계 더 현실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훌륭한 군자(君子)라도 끝내 빈천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빈천에서 벗어나는 일이야 반대지만, 온갖 노력을 기울여 빈천에서 정당하게 벗어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시중지의(時中之義)’를 얻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논어고금주,리인편) 그런 것이 현실을 극복해가는 논리로 시대에 맞는 ‘시중지의’라는 것입니다. 부귀에만 도취되어 인생의 목표로 여기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빈천으로만 오래도록 살아 가고 있는 보통사람들, 함께 모두 고민할 일입니다.
다산연구소장 박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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