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理)라는 글자 하나는 동양의 성리(性理) 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글자입니다. 공맹(孔孟) 이래의 유교철학은 수천년을 흘러오면서 발전을 거듭했지만, 남송(南宋)의 주자(朱子)에 이르러 주자학(朱子學)으로 완성되고 집대성(集大成)되면서 어떤 권위보다도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여 동양의 유교국가에서는 가장 큰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습니다. 중국만 해도 당나라 이후 불교도 매우 큰 위력을 과시하였고, 육왕학(陸王學)이라고 부르던 양명학(陽明學)은 명(明)나라에서는 큰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일본에서도 불교나 여타의 학문이 그런대로 발전했으나, 유독 조선5백년은 주자학이 사회표면의 사상은 완전히 좌우해버릴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야말로 주자학 일색의 나라가 조선 왕조였습니다. 윤휴(尹鑴)·박세당(朴世堂) 등 당당한 학자들이 주자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견해를 달리하는 논리를 폈으나 오히려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혹심한 탄압만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그대로 멈춰만 있지는 못합니다. 실학자들이 등장하는 17세기말이나 18세기에는 주자학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더니 19세기 초의 다산에 의하여 사서육경(四書六經)에 대한 새로운 경학이론을 전개하면서 주자학의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들어났습니다. 다산은 자신이 말한 대로 232권이라는 방대한 경전연구서를 통하여 이(理)라는 이론에만 머물러있던 성리학체계를 행사(行事)라는 실행을 담보하는 내용으로 새롭게 성리체계를 세웠습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이름은 일로 행한 뒤에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의예지란 인덕(人德)이지 인성(人性)이 아닙니다. 인(仁)할 수 있는 이치, 의(義)할 수 있는 이치, 예(禮)할 수 있는 이치, 지(智)할 수 있는 이치와 같은 것은 인성(人性)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仁義禮智之名 成於行事之後 此是人德 不是人性 若其可仁可義可禮可智之理 具於人性; 中庸講義卷一)”
인의예지를 마음이나 성품 안에 담겨있는 이치로 보던 주자의 성리학과는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대목이 바로 위와 같은 다산의 실학사상입니다. 일로 행한 뒤에야 인의예지는 성립이 되는 것이지, 심성 속에 숨겨 있는 이치(理)로 보아서는 완성되는 일이 나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인의예지는 덕행(德行)이기 때문에 행동과 실천이 없는 이론만의 인의예지는 실제 일에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다산의 뜻입니다. 효제(孝弟)를 행하면 인이 되고, 의로운 행동, 예에 맞는 행동, 지혜로운 행동이 인의예지이지, 성정속의 이치가 아니기 때문에, 인덕과 인성은 분명하게 구별하자고 다산은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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