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는 요즘 생각나는 책이 있다. 리더십과 소련 연구자인 로버트 터커(Robert C. Tucker)의 『Politics as Leadership』(1981, 개정판1995; 안청시·손봉숙 번역, 『리더십과 정치』, 까치, 1983)라는 책이다. 이 책에 쿠바 미사일 위기 사례를 거론한 부분이 있다.
냉전시대인 1962년 10월, 케네디 대통령은 중요한 보고를 받았다. 항공사진정찰 결과, 소련이 쿠바 내에 다량의 공격 핵미사일을 설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주요 도시를 겨냥한 이 미사일들이 발사될 경우, 8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생명을 잃을 수 있었다.
공습이냐 봉쇄냐, 도덕성 문제와 지지 결집가능성
이에 대해 대통령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대통령은 정책을 숙고하고 조언할 집행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의 몇몇은 미국의 압도적인 전략적 우세가 미사일 설치 후에도 유지되므로 별다른 대응조치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러나 다수는 뭔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대통령의 견해를 지지했다. 그러나 무슨 행동이 있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먼저 쿠바의 미사일기지를 비롯한 군사적 목표에 500대의 폭격기로 기습적인 공습을 가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또 미사일 관련 장비를 실은 소련 상선이 쿠바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상을 봉쇄하고 격리시키는 동시에 이미 설치한 미사일을 해체하도록 소련을 압박하는 외교적 조치를 취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심각한 논쟁 끝에 다수는 봉쇄안을 지지했고, 대통령은 이를 채택하여 성공적으로 실행했다.
이 사례를 들어 터커는 리더십의 집단적 성격, 도덕성 문제, 미래적 차원 등을 말하고 있다.
터커는 문제해결과정이 ‘집단적’ 리더십 과정이었음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데 관련 정부기관의 최고위 책임자의 도움을 받았으며, 결정된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는 의회의 지지와 함께 국제기구와 주요 국가의 지지를 얻어냈다.
위원회는 ‘도덕성’ 문제를 논의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공습은 결국 대국이 일개 소국을 기습공격한 꼴이라, 미국의 도덕적 지위를 크게 손상시킨다. 핵심적 문제는 무엇이 가장 강력한 응징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가장 도덕적, 정치적으로 설득력 있는 대안인가였다. 그것이 대내외의 지지를 결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대적 관계 속에서 전개되는 상황은 ‘미래적’ 차원을 갖는다. 이쪽의 대응책은 저쪽의 대응을 낳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상황으로 이쪽의 다음 대응책을 야기하고, 이에 따라 저쪽도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는 식으로 상황은 동태적 발전을 한다. 그래서 리더는 미래적 차원에서 상황을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환경의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미래를 그리는 비전이 필요하다.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 바바라 터크만(Barbara Tuchman)의 『8월의 총성(The Guns of August)』을 읽었다고 한다. 그 책은 유럽 열강들의 움직임과 그에 대한 대응들로 이뤄진 일련의 과정이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던 세계전쟁(1914년)으로 몰고 갔던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통령은 제3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10월의 미사일』이라는 이름의 유사한 책을 써서 제3차 세계대전의 기원에 대해 쓰게 되는 사태를 원하지 않았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대처하고 적극적으로 방지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였다. 그 경험은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들이 핵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상호 협력하는 길로 나아가게 하였다.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능력, 그리고 비전을 갖춰야
오늘 여기. 이미 체제 경쟁은 끝났건만, 북한 정권은 오히려 군사적 수단에 더욱 의존하고 있다. 한편으론 핵개발, 한편으론 국지적 도발로 위기를 조성하는 수법이다. 세계 최강인 미국이 이라크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위안을 얻으며, 벼랑 끝 전술과 물귀신 전략으로 생존을 도모하고 있다. 10여년 동안 서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강경조치가 점차 강도를 높여 교환되면서 상황을 강경하게 규정해버리고 일정한 경로를 따라 발전하는 양상이다.
북한 정권의 붕괴만 기다리는 것은 오산이다. 리더가 세 수(手)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필부의 용기만 갖고 대들 수는 없다. 북한 정권의 계산된 행동에 대응하기 급급하고, 미·중의 경쟁구도에 끌려가서는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더욱 더 좁아진다. 멀지 않은 과거에 경험했듯이 그 결과는 너무도 비참할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통일한국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남북 주민 사이의 갈등이나 주변국과의 분쟁으로 시달리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통일한국을 위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것임은 물론, 중국도 미국도 반대할 수 없을 정도로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대안이 강구되고 안팎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실학자들은 현실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 고전과 역사에서 배우고, 외부의 새로운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했으며, 현안문제를 해결할 실제적인 처방을 궁구하였다. 오늘 터커의 책을 다시 읽으며 위기극복의 리더십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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