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호에 대한 우리의 의견

통일 한국의 국호는 "대한국"이란 글

지성유인식 2010. 9. 24. 03:22

다음은 한국디지털뉴스의 이정근기자님 기사이다.

 

김민수 한민족운동단체연합 홍보국장

 

대한국은 고종황제가 한반도 간도 제주도 동해 독도를 비롯한 인접 도서, 해양을 통치하고 태극기,애국가를 상징으로 한 제국으로서 1897년 경운궁으로 환어한 고종은 자주 독립을 대내외에 널리 표명하기 위하여 10월 12일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황제로 즉위하였는데 고종황제는 12일 오전 2시 환구단에 나아가 천신(天神) 황천상제(皇天上帝)와 지신(地神) 황지지(皇地祗)에 고하는 환구대제를 봉행한 뒤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 의자에 앉아 12장 곤면(袞冕)을 입고 새보(璽寶)를 받았다.

 

나라는 옛 나라이나 천명(天命)을 새로 받았으니 이제 이름을 새로 정하는 것이 합당하다.삼대(三代) 이래로 황제의 나라에서 이전의 나라 이름을 그대로 쓴 적이 없다.조선은 당당한 제국의 이름으로 합당하지 않다.대한(大韓)이란 이름을 살펴보면 황제의 정통을 이은 나라에서 이런 이름을 쓴 적이 없다.한(韓)이란 이름은 우리의 고유한 나라 이름이며,우리나라는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원래의 삼한(三韓)을 아우른 것이니 큰 한(韓)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다.대한국(大韓國)을 국호로 한다.

 

경운궁 대안문부터 환구단까지 좌우로 군사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하고 황색 의장으로 호위하였다.시위대 군사들이 어가를 호위하였으며 어가 앞에는 대황제의 태극국기가 먼저 지나갔고 대황제는 황룡포에 면류관을 쓰고 금으로 채색한 연을 탔고 그 뒤에 황태자가 홍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쓴 채 붉은 연을 타고 지나갔다. 12일 환구단에서 환구대제를 봉행한 후 경운궁으로 환어한 고종황제는 태극전에서 백관의 축하를 받고 이어 낮 12시에 황후를 책봉하고 오후 2시에 왕태자를 황태자로 책봉했다.

 

짐(朕)이 생각건대 단군(檀君) 이래로 강토가 나뉘어 각각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서로 웅(雄)함을 다투다가 고려(高麗)에 이르러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의 삼한(三韓)을 통합(統合)함이다. 우리 태조(太祖)께서 용흥하는 처음에 여도(輿圖)로써 밖으로 개척한 땅이 더욱 넓어져 북으로 말갈(靺鞨:만주,연해주)의 계(界)를 다하여 상아와 가죽을 생산하고, 남으로 탐라국(耽羅國:제주도)을 거두어 귤과 풍부한 여러 해산물을 공(貢)하는 지라. 폭원이 4천리에 일통(一統)의 업(業)을 세우시었다.

 

산하가 공고하여 복(福)을 우리 자손만세(子孫萬歲) 반석의 종(宗)에 드리셨거늘 오직 짐이 부덕(不德)하여 여러 어려움을 당하였는데 상제(上帝)께서 돌아보시어 위태함을 돌려 평안(平安)함을 갖게 하고 독립(獨立)의 기초를 창건하여 자주(自主)의 권리(權利)를 행하게 하시니, 금년 9월 17일(양력 10월 12일)에 백악(白嶽 북악산)의 남쪽에서 천지(天地)에 제(祭)를 올리고 황제에 즉위하며 천하에 호(號)를 정하여 대한(大韓)이라 하고 이 해로써 광무(光武) 원년(元年)을 삼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다음은 동일 언론의 김민수 개원기자님의 글이다.
 
대한제국(大韓帝國)은 고종황제가 한반도 간도 제주도 대마도 동해 독도를 비롯한 인접 도서, 해양을 통치하고 태극기,애국가를 상징으로 한 제국으로서 1897년 경운궁으로 환어한 고종은 자주 독립을 대내외에 널리 표명하기 위해 10월 12일 경운궁 대안문 앞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황제로 즉위했는데 고종황제는 환구단에 나아가 천신(天神) 황천상제(皇天上帝)와 지신(地神) 황지지(皇地祗)에 고하는 환구대제를 봉행한 뒤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 의자에 앉아 12장 곤면(袞冕)을 입고 새보(璽寶)를 받았다. 



나라는 옛 나라이나 천명(天命)을 새로 받았으니 이제 이름을 새로 정하는 것이 합당하며 삼대(三代) 이래로 황제(皇帝)의 나라에서 이전의 나라 이름을 그대로 쓴 적이 없고 조선은 당당한 제국의 이름으로 합당하지 않다.대한(大韓)이란 이름을 살펴보면 황제의 정통을 이은 나라에서 이런 이름을 쓴 적이 없고 한(韓)이란 이름은 우리의 고유한 나라 이름이며,우리나라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한(三韓)을 아우른 것이니 큰 한(韓)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니 대한국(大韓國)을 국호로 한다. 



경운궁 대안문부터 환구단까지 좌우로 군사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하고 황색 의장으로 호위했다.시위대 군사들이 어가를 호위하고 어가 앞에는 대황제의 태극국기가 먼저 지나갔고 대황제는 황룡포에 면류관을 쓰고 금으로 채색한 연을 탔고 그 뒤에 황태자가 홍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쓴 채 붉은 연을 타고 지나갔다. 10월 12일 환구단에서 환구대제를 봉행한 후 경운궁으로 환어한 고종황제는 태극전에서 백관의 축하를 받고 이어 낮 12시에 명성황후를 추존하고 오후 2시에 왕태자를 황태자로 책봉했다. 



단군(檀君) 이래로 강토가 나뉘어 각각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서로 웅(雄)함을 다투다가 고려(高麗)에 이르러 고구려·백제·신라의 삼한(三韓)을 통합(統合)함이다. 우리 태조(太祖)께서 용흥하는 처음에 여도(輿圖)로써 밖으로 개척한 땅이 더욱 넓어져 북으로 말갈(靺鞨:간도)의 계(界)를 다하여 상아와 가죽을 생산하고, 남으로 탐라국(耽羅國:제주도)을 거두어 귤과 풍부한 여러 해산물을 공(貢)하였으며 남북으로 4천리에 이르는 영토를 일통(一統)하는 업(業)을 세우시었다. 



산하가 공고하여 복(福)을 우리 자손만세(子孫萬歲) 반석의 종(宗)에 드리셨거늘   상제(上帝)께서 돌아보시어 위태함을 돌려 평안(平安)함을 갖게 하고 독립(獨立)의 기초를 창건하여 자주(自主)의 권리(權利)를 행하게 하시니, 올 9월 17일(양력 10월 12일)에 백악(白嶽 북악산)의 남쪽 환구단에서 천지(天地)에 제(祭)를 올리고 황제에 즉위하며 천하에 호(號)를 정하여 대한(大韓)이라 하고 이 해로써 광무(光武) 원년(元年)을 삼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1899년 8월 17일 반포된 대한제국의 헌법적 법전의 명칭은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였다. '대한국(大韓國)'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민족적 자긍심을 감안한 것으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는 총 9조로 구성되고, 대한국 황제의 육해군 통수권, 계엄령 발포권, 법률 제정·반포권, 문·무관 임명권, 외국과의 조약 체결·선전·강화·사신 파견 등을 규정하고 있다. 



1904년 2월 대한제국 영토를 군용지로 하는 한일의정서를 강제하여 1900년 10월 25일 고종황제 칙령 41호에 의거한 대한제국령 독도를 1905년 2월 불법 강점한 일제는 미국과 1905년 가쓰라태프트밀약, 영국과 영일동맹, 러시아와 포츠머스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 독점지배에 관한 제국주의 열강의 승인을 얻어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하였다.1909년 9월 간도침략과 이권 장악을 위해 무효인 '을사늑약'에 의거 강탈한 외교권을 불법 행사하여 이범윤 간도관리사가 관리한 대한제국령 간도를 청에 불법 양도했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아침 6시에 독이 들어 있던 음료 때문에 경운궁 함녕전에서 붕어하셨는데, 경운궁 대안문 앞,고종어극40년칭경기념비전 앞 '3·1 대한광복운동의 배경이 됐다.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강제로 퇴위를 당한 고종황제는 대한독립의군부,대한광복군정부 등 대한광복운동의 상징적 구심점이었으며, 대한광복운동을 계획하여 조직된 신한혁명단'은 고종황제,의친왕을 망명시켜 대한광복운동을 활성화하려 하고, 고종황제는 고액의 '내탕금(內帑金)'을 지원하는 등 대한광복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1919년 1월 21일 일제 총독부에 의한 고종황제 붕어는 2·8 대한광복선언,3·1대한광복운동,6·10대한광복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국내외 대한광복운동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으며, 자주독립적이고 자유민주적인 국민국가의 수립, 대한국의 통일을 위한 한민족공동체의식으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으며 광복(光復)이란 병탄당한 대한국 국권의 회복을 의미하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은 일제로부터 대한국의 주권과 영토를 되찾은 날이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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