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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도 기자인가?

지성유인식 2008. 11. 11. 14:10

                                         김 민 환(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2005년 8월 8일, 무정부주의자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G-8 회담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런 회의가 열리면 응당 반대시위가 따르곤 했는데 이번에는 시위 참가자들이 신원 노출을 꺼려 모두 복면을 쓰고 시위에 참가했다. 경찰로서는 참가자들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한 노릇이었다.


동영상 블로거로서 그동안 시위현장을 촬영해 여기 저기 제공해 온 조쉬 울프(Josh Wolf)는 이 시위도 생생하게 찍었다. 그는 며칠 뒤 지역 활동가의 뉴스 웹사이트인 ‘인디베이’(Bay Area Indymedia)에다 비디오 자료를 올렸다. 그는 텔레비전 방송국인 KRON에도 편집한 비디오 몇 개를 팔았다. 그가 촬영한 비디오는 경찰과 저항 운동가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실감나게 표현한 것이었다.


블로거가 촬영한 비디오 자료 제출요구를 거부했는데


그의 일련의 비디오 내용이 알려진 뒤 FBI는 울프에게 비디오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울프가 이를 거부하자 FBI는 그에게 증거문서 제출명령(subpoena)을 내렸다. 샌프란시스코의 G-8 반대시위와 관련한 모든 기록뿐만 아니라 카메라와 컴퓨터까지 7월 8일 오후 6시 30분부터 11시 59분 사이에 FBI에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울프가 이 명령에도 불응하자 FBI는 곧 그를 기소했다. 이 사건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국가변호사조합(National lawyers Guild)이 변호를 맡았다. 변호인단은 울프에 대한 과도한 요청이 다른 언론인들에게 의욕 상실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 지방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기각하고 2006년 8월 1일 울프를 법정 모욕죄로 구속했다. 변호인단이 즉각 보석을 신청하자 법원은 보석을 허가하였으나 울프가 비디오 자료 등의 제출을 끝내 거부하자 9월 18일 보석을 취소했다. 울프는 9월 22일 다시 구금되었다.


그의 수감 기간은 가히 기록적이다. 2007년 2월 7일까지도 울프는 풀려나지 못해 살인 사건에 대한 공표되지 않은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여 168일 동안 구금된 휴스턴의 프리랜서 레겟(Vanessa Leggett)의 구금기록을 깼다. 2007년 4월 3일 연방조정기구가 Wolf의 석방을 요구하자 비로소 법원은 이 명령에 서명했다. 울프는 226일 만에 풀려나 자유를 얻었다.


이 사건에서 논쟁의 핵심은 신문사나 방송사에 소속하지 않은 개인 블로거나 비디오활동가도 법적으로 언론사 기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들도 기자 대접을 받아야 한다면 언론사 소속 기자와 마찬가지로 취재원 보호를 명분으로 법원의 자료제출 요구를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겠지만 만약 기자 대접을 받을 수 없다면 법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블로거나 개인 활동가에게는 말 그대로 중차대한 문제였다.



“투옥? 여기가 불가리아인가, 아니면 한국인가?”


그러나 이 쟁점은 싱겁게 해소되었다. 미국의 전문기자협회(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가 울프에게 자유롭고도 독립적인 언론의 원칙을 드높였다 하여 ‘올해의 기자상’을 수여했다. 그밖에도 여러 곳에서 울프를 기자 자격으로 표창했다. 검찰이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려면 이제 많은 언론단체와 한판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검찰은 울프를 석방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었고 이렇게 하여 개인 활동가도 법적으로 언론사 기자와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결말이 어떻게 났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미국 SPBG의 편집인 브럭만(Bruce Brugman)의 울프사건에 대한 논평이 잘 시사하고 있다. 그는 말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샌프란시스코의 개인 언론인을 어찌 투옥한단 말인가? 도대체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 불가리아인가, 아니면 한국인가?” 브럭만이 아닌 우리가 사는 여기는 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