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란 아름답고 밝은 빛을 발하는 최고급 예술 혹은 제품…
‘브랜드 제품(名品)’과 혼동 말아야
- 남훈의 철학적으로 남자 옷 입기⑧ 명품을 보는 올바른 시각(월간중앙)
사실 대중화라는 가치와는 다소 먼 개념이기는 하지만, ‘명품’은 무서운 속도로 교세를 확장하는 종교처럼 대중의 마음을 파고든다. 계절이 바뀔 즈음에는 언제나 새로운 패션에 대한 담론과 세계적 유행의 흐름, 그리고 이런 정보를 충실하게 재현한 아이템이 미디어에 소개되는데, 그 바탕에는 명품 브랜드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모든 백화점은 자기만의 개념이나 철학을 담기보다 어떤 유명한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는가에 목숨을 걸고 ‘백화점=명품관’이라는 명제를 현실화하기에 의욕적이다.
과거 명품은 비싼 가격과 도도한 이미지로 인해 대중이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어떤 추상적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보통사람도 한 개 이상의 명품 브랜드 제품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나아가 그 사람이 소유한 명품이 그 사람의 위상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읽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주위에 명품이 범람한다. 그러나 미디어와 소비자 모두 명품을 숭상하고 열망하는 가운데, 과연 그 중 명품의 역사적 유래와 올바른 의미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명품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해외에서 수입되는 패션 브랜드? 충격적으로 가격이 비싼 그 무엇? 생활에 그다지 필요하지 않으면서 오직 사치스러운 기분만을 위한 물건?
1. 트렌드의 본질
명품 브랜드들이 제안하는 유행, 혹은 트렌드라는 의미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구성하는 흐름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트렌드는 모든 사람이 순식간에 비슷하게 입어버리는 유니폼이 따로 없을 정도다.
‘2버튼 슈트가 유행’이라고 보도되면 명동 거리를 지나가는 남자에서부터 전국 백화점 매장에 이르기까지 온통 2버튼만 가득하고, 여성들의 레깅스가 유행이면 대한민국 여성들은 일치단결해 레깅스 룩을 삽시간에 갖추어 버린다. 지나가는 모든 여성이 루이뷔통 가방을 들고 다닌다면, 그것은 정말 트렌드일까?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공통의 코디네이션이란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모든 남자에게 유용한 명품 브랜드 혹은 공유되는 유행이라는 것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패션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복잡한 요인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특정한 흐름이 시간을 두고 반복된다. 여성 스커트의 길이는 100년을 넘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아래 위를 다녀갔으며, 남성의 슈트도 어깨 모양이나 버튼의 위치, 혹은 클래식과 모더니즘을 오가는 디테일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맞서고 있다.
트렌드 혹은 유행을 소리 높여 외치는 이유는 패션에서의 신상품이란 결국 혁신적 기술로부터 탄생한 제품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최근에 완성된 제품이라는 뜻이 강하기 때문이다. 가장 업데이트된 디자인을 제안함으로써 기존의 컬렉션을 진부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절묘한 ‘트렌드’야말로 패션 비즈니스의 철학이다.
▶진정한 명품은 쓰는 이가 만든 사람의 열정을 이해할 때만 그 진가를 발휘하는 하나의 예술품이다.
2. 名品은 ‘明品’이다
단어나 개념은 항상 그 어원이나 역사적 배경이 있으므로, 그 유래를 생각하면 좀 더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명품’의 어원을 신중하게 짚어보는 것도 명품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패션과 명품의 종주국이라고 할 프랑스에서 명품은 ‘프로뒤 드 뤽스(produit de luxe)’로 불린다. 영어로는 ‘럭셔리 굿즈(luxury goods)’다. 두 단어 모두 ‘빛’을 뜻하는 라틴어 ‘럭스(lux)’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런 역사를 감안한다면 명품이란 ‘아름답고 밝은 빛을 발하는 최고급 예술 혹은 제품’이 된다. 그러므로 많은 미디어에서 습관적으로 쓰는 ‘명품(名品)’이 아니라 ‘명품(明品)’이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이름 명(名)’ 자를 딴 명품은 명품의 본래 의미와 조금 다른 고가의 ‘브랜드 제품’이라는 뜻에 가깝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이와 같은 고가 브랜드를 뜻하는 이름 명 자 명품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는데, ‘프로뒤 드 마르크(produit de marque)’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의 차이를 극명하게 알려준 예가 바로 미국에서 캘빈 클라인이 매물로 나왔을 때의 일이었다. 세계적 명품의 집성지라고 할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캘빈 클라인은 명품(明品)이 아닌 명품(名品)”이라며 인수 제의를 거절했다.
‘밝을 명’ 자 명품과 ‘이름 명’ 자 명품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은 패션에 관련한 제품을 올바르게 접근하고자 하는 소비자에게도 중요한 문제일 뿐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상징하는 덕목으로서도 의미를 획득한다.
자신의 가처분소득 수준에 따른 합리적 명품 소비야 누구도 막을 수 없겠지만, 단지 수입한 고가 제품 혹은 화려한 위용을 가진 브랜드만 명품이라고 열망하는 것은 어딘지 본말이 전도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예술적 제품과 호화롭기만 할 뿐인 사치품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모습이다. 명품에 대한 지나친 열망이나, 반대로 그에 대한 냉소적 인식 모두 과유불급이다.
명품을 어떤 사회적 독소쯤으로 생각하는 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명품이 탄생할 수 없듯 명품의 나라 유럽에서는 시간과 기술과 마음이 결합한 명품에 대해 부자든 그렇지 않든 경멸하는 정서가 없다. 좋은 것을 존중하는 마음처럼 명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시각은 그런 훌륭한 예술을 등장시킨 필수 조건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3. 명품의 가치
명품이란 높은 품질과 역사를 지닌 사물 자체가 지닌 아름다운 아우라에서 발견하는 가치다. 또 그토록 빛나는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누군가가 공들인 오랜 시간을 흐뭇하게 느끼는 대상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소중한 물건, 즉 쉽게 획득할 수 없는 높은 품질로 전통이 쌓일수록 불멸의 가치를 지니는 것,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희소성의 논리가 오히려 정당하게 대접받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쓰는 이가 만든 사람의 열정을 이해할 때만 그 진가를 발휘하는 하나의 예술품, 그것이 바로 명품인 것이다.
제발 선진국에서 수입된 패션 브랜드 제품만을 명품이라고 지칭하는 오해는 이제 그만두었으면 한다. 명품이 쉽게 만들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본의 투자만으로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면, 지구에는 이미 기업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명품으로 넘쳐날 것이다.
명품은 처음 탄생한 순간의 마음가짐을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브랜드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념이며, 경제적으로 타협하고 싶은 사업적 유혹을 뛰어넘어 다소 무모한 열정을 가진 경영자만이 어렵게 이뤄낼 수 있는 궁극의 결과다. 또한 이와 같은 모든 시도를 존중해주는 사람과 문화 없이는 명품은 만들어질 수 없다.
4. 진정한 명품이란?
결국 명품의 기준은 오랜 시간을 인내하는 역사, 타협 없는 장인정신, 브랜드를 지켜낼 수 있는 열정적 경영자, 그리고 그에 대한 존중이 배어있는 문화 이 네 가지이며, 이 중 하나라도 결여돼서는 명품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래도록 여성들의 동경을 받아온 수제 핸드백과 신사들을 위한 품질 높은 클래식 슈트는 여기서 논증한 명품의 아우라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다.
비즈니스라는 현실의 높은 벽에도 자신의 철학에 대해서만은 도무지 타협이 없는 이들 브랜드는 앞으로도 수백 년 이상 전통을 쌓아가는 클래식한 제품들만 만들고 싶어한다.
이들에게는 브랜드를 운영할 충분한 수익이나 명성보다 그의 윗 세대를 지배했던 엄격한 규칙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소재를 고르고 정성을 다해 바느질하는 클래식 슈트와 수제 핸드백의 핸드메이드 정신은 빛나는 명품의 가치인 동시에,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자랑스러운 문화 자산이다.
클래식이 시대에 뒤처졌다는 뜻이 아니라 시류를 타지 않는다는 뜻이듯, 명품은 결국 크레디트카드의 한도보다 존중받을 만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탄생하고 향유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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