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겠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의 국감장 욕설 파문이 뉴스에 오르기 시작할 때, 솔직히 나는 데면데면했다. 한숨 한 번, 냉소 한 스푼쯤이라 해두자. 정치판에서 늘 보여 온 모습처럼 막말 설전이 또 벌어졌나 보다 했다. 이 나라 정치판에 최소한의 품위를 요구하는 일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일처럼 어렵다는 것을 이골 나도록 경험했으므로.
그런데 결국 동영상을 보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문화행정과 언론을 담당하는 장관이 국감장에서 기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쌍욕을 섞어 반말을 하고 있었다. 씨x, 이게 도대체 뭔가. 분노와 모욕감이 밀려왔다. 더러운 것을 뒤집어쓴 것처럼 구토와 현기증이 몰려왔다. 그리고 너무나 창피했다. 국감장에서, 국민의 눈귀 노릇을 하러 간 기자들에게, 쌍욕을 해대는, 저런 사람이, 이 나라 문화예술행정의 수장이란 말이지?
기막힌 것은 또 있었다. 사건 직후 문화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욕설은 없었다, 오해다, 과장되었다’고 밝혔다.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해명이랍시고 해대는 뻔뻔스러움에 또 한 번 경악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이 ‘해명자료’는 전 국민을 천하의 바보로 여기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우롱이다. 또 한 번의 모욕이다.
백 번 양보해 이렇게도 생각해 본다. 살다 보면 ‘성질 뻗칠’ 수 있지. 상대편 의원이 화를 돋운 면도 있군. 그런데 왜 그의 욕설은 상대편 의원이 아니라 애꿎은 사진기자에게로 향했는가. 이 무의식적인 욕설의 방향은 내게 또 한 번 구토증을 일으켰다.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에겐 군림하고자 하는 권력지향의 전형. 그에게는 절대 강자인 대통령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상대적 약자들은 그에게서 씨x 소리나 들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유 장관은 “물러날 일이 있으면 물러나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자리 연연 안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장관직에서 물러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 나는 이 사건이 ‘자리 연연 안 하는’ 장관이 그만 물러나야 할 중대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그는 문화예술계의 행정 수장으로 이 나라 문화예술계의 수준을 일거에 ‘저질’로 만들어 버렸다. 창피하다.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외국인들이라면 이런 얘기를 주고받을 것이다. 코리아의 문화부 장관이 방송과 취재가 진행되는 공석에서 퍽큐를 연발했다고! 그런 장관이 자리를 보존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문화 수준의 한심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둘째,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정말이지 ‘문화적 품위’가 있는 문화부 장관을 가지길 원한다. 문화는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관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한 사회의 모든 방면에 관여하는 공기 같은 것이다. 강자만이 아니라 약자와 소수자를 존중하고 한 사회의 음지와 양지 모두를 아울러 소통시키며 공동체 전체가 인간의 품위와 긍지를 가질 수 있게 고양시켜야 하는 것이 문화이다. 그간의 유 장관의 행보는 문화를 통한 소통과 다양성 확보에 매진했다기보다 문화와 관련된 여기저기에서 코드인사, 보은인사로 추정될 정치판 짜기에 종사해온 흔적이 강하다. 소통이 아니라 또다른 경계를 만들어 왔다는 말이다. 정치 경제가 다 어쩔 수 없이 권력지향이 된다하더라도, 문화만큼은 그래선 안 되는 것이다. 문화는 한 사회의 대립과 반목을 조절할 수 있는 완충지대이며 대화와 공생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무장지대이다. 그러기에 문화가 척박해지면 말과 행위의 폭력이 승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유 장관은 그만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셨으면 한다. 문화 저질 나라의 시인이 된 것이 심히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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