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신천동 KTF 본사. 회사 입구에 들어서자 커다란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초심을 잊지 말자’는 제목 아래 “WCDMA(3세대 동영상 통화) 1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지금, 1등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 옆에는 비장한 필체로 ‘2007년 3월 SHOW(쇼)를 시작할 때 그 마음 그대로 다시 뜁시다’고 쓴 입간판이 서 있다.
‘이동통신 만년 2위’ 낙인을 벗기 위한 KTF의 각오를 엿볼 수 있다.
지난해 3월 ‘SHOW’ 브랜드로 국내에선 가장 먼저 전국적으로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한 KTF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왔다. 그 덕분에 3세대 시장에선 SK텔레콤(SKT)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KTF의 이 같은 결실에 누구보다 뿌듯해하는 사람이 있다. 이동원(전무) 비즈니스·마케팅실장이다. 그는 SHOW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콘텐트 개발을 책임져 왔다. 그가 총괄하는 휴대전화 서비스 종류는 4500개가 넘는다.
이 전무는 “10년을 준비했고, 일단 성공했다. 한 번만으로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SKT란 큰 산은 넘으려면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험난해도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바짝 긴장하고 있다. SKT가 ‘되고송’을 앞세워 대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6월 말 현재 SKT의 3세대 가입자는 603만 명으로 KTF에 29만 명 차이로 바짝 다가섰다.
SKT ‘되고송’으로 반격
SKT의 ‘되고송’이 기세를 떨치면서 SHOW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던 지난 5월. SHOW는 새 광고를 내보냈다. 한 살짜리 아기가 벌떡 일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데 열중하던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아기의 대사는 “엄마는 나한테 관심이 없어. 뭔가 새로운게 필요해”다.
“당시 우리의 심정을 반영한 광고다. SKT의 반격은 예상대로 대단했다. 또다시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게 아닐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뭔가 보여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터에 이 광고가 만들어졌다.”
KTF는 요즘 ‘SHOW의 생활화’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1살의 쇼’ ‘7살의 쇼’ ‘20살의 쇼’ 시리즈 광고를 선보였다. 앞으로 30살의 쇼, 40살의 쇼로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10, 20대 위주인 동영상 통화 서비스를 전 연령대로 확대하기 위해서다. 10, 20대는 무료 서비스만 사용하는 데다 새 서비스가 나오면 바로 옮겨 가는 만큼 구매력을 가진 30, 40대를 잡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40, 50대 임원이 좋아하면 실패
“SKT는 깨끗한 통화 품질을 무기로 2세대 휴대전화 서비스 시장을 장악했다. SKT가 독점한 800㎒ 주파수는 지방이나 산간 지역에서도 잘 터지기 때문에 통화 품질이 확실히 우수하다. 1900㎒ 주파수를 쓰는 우리로선 따라잡기 쉽지 않다. 이런 구조를 깰 수 없다면 다른 뭔가를 찾아야 했다.”
지난 10년간 KTF는 2등 브랜드였다. 2등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 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단절. 서울과 수도권에서만 가능하던 3세대 영상 통화 서비스를 전국 단위로 확대하기로 하고 차근차근 준비했다. 준비가 끝난 지난해 3월, KTF라는 브랜드는 사라졌다. 대신 SHOW가 등장했다.
“2007년 3월 전 임직원 명함에서 KTF를 지웠다. 회사 이름 자리엔 ‘SHOW’라고 썼다. 해외 출장을 가면 ‘KTF에서 오기로 했는데 왜 SHOW에서 왔느냐’고 묻는 일도 있었다.”
3세대 서비스에 전력을 쏟기로 한 KTF는 우선 이름 짓기에 골몰했다. 기존 영상 통화 서비스 브랜드 ‘G-큐브’가 소비자에게 너무 어려운 느낌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오랜 작업을 거쳐 임원회의엔 비욘드(beyond), 더블유(W)등 후보작이 올랐다. 투표 결과 SHOW는 꼴찌. 사장될 운명의 SHOW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조영주 사장의 결단 덕분이었다는 게 이 전무의 설명이다.
“조 사장이 ‘꼴찌 한 걸로 하자’고 말했다. 조 사장의 지론은 40, 50대 임원이 좋아하는 건 절대 실패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대리점 사장이 들려준 얘기다. 한 10대 고객이 찾아와 ‘쇼폰 주세요’ 하더란다. 쇼폰을 쓰려면 KTF로 가입 회사를 바꿔야 한다고 했더니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단다. SHOW는 젊은 층의 호응을 얻는 데 확실히 성공했다.”
목표를 명확히 하라
KTF는 2007년 1월 임원 시무식을 산에서 했다. 50여명의 임원들이 정상에 올라 “죽자! 죽자! 죽자!”는 구호를 외쳤다. 새 서비스 SHOW에 회사 목숨을 건다는 의미였다. 목표는 SKT를 넘어 3세대 시장 1위를 하는 것. 모든 임직원은 이 목표에 공감하고 사활을 걸었다. KTF 직원 사이에선 말 끝에 ‘쇼’를 붙이는 일명 ‘쇼체’를 사용하는 게 인기다.
“2등에게 기회는 많이 오지 않는다. 1등은 스스로 기회를 만들 수 있지만 2등은 그러기 힘들다. 2등은 자원을 축적하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기회라고 생각하면 모든 걸 걸어야 한다.”
그는 목표의 명확성이야말로 성공의 필수조건이라고 말한다. “직장생활 25년 동안 성공보다 실패를 훨씬 더 많이 경험했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 터득한 결론은 목표가 명확해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다면 아무리 훌륭한 계획도 실패하고 만다.”
약점을 강점으로 활용하라
올해 초 KTF는 제휴 마케팅을 들고 나왔다. 이마트·CGV 등 국내 유명 브랜드와 제휴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곰과 토끼의 결합을 주제로 한 TV 광고가 등장한 게 이때다. 제휴를 통해 기반을 넓히려는 시도였다.
“SKT 뒤엔 SK그룹 계열사들이 있다. SK그룹 계열사와 관계사가 모두 SKT를 쓰기 때문에 기본 수요를 깔고 간다. KTF는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주변에 광범위한 얼라이언스 그룹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건 약점이자 강점이다. 제휴를 많이 할수록 소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등이 때론 장점이 된다. 1등은 가진 것을 지키려다 보면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SKT가 3세대 서비스에 미온적이었던 것도 2세대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잃을 게 없어 3세대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다. 무조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KTF는 국내 1위를 넘어 세계 1위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 NTT-도코모와 제휴하고, 말레이시아에도 진출했다. 중국·일본 관광객을 위한 지리정보 서비스도 시작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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