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기록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얼마 전 우리는 다산에게 보낸 손암 정약전의 친필 편지 1통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편지내용의 주인공이 다산의 강진읍내 제자 황상(黃裳)이었습니다. 황상은 어릴 때의 이름이 산석(山石)이었고, 나중에 호가 치원( 園)이었는데, ‘치원’으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더구나 금년 봄에 공간된 『다산학단문헌집성』이라는 다산 제자들의 시문집에 실린 『치원유고(園遺稿)』의 「임술기(壬戌記)」라는 글에 따르면, 황상은 15세인 임술년(1802) 10월 10일 강진읍내 동문밖 샘거리의 주막집에 기거하던 유배객 다산을 처음으로 찾아뵙고 다산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글이 참 재미있습니다.
임술년 10월 보름날 중국의 소동파는 적벽강에 두 번째 찾아가 노닐면서 그 유명한 『적벽부』라는 천고에 유명한 글을 지었다고 하면서 우연의 일치지만 꽤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손암 정약전이 다산에게 보낸 편지는 1806년 3월이니 그때 황상은 이미 19세의 건장한 청년의 시절이었습니다.
4~5년의 세월동안 다산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힌 황상은 공부가 벌써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10월 10일 이후 7일 째인 10월 17일에 다산은 장래가 유망한 어린 제자에게 의미 깊은 ‘면학문(勉學文)’, 즉 학문에 힘쓰기를 권장하는 글을 「증산석(贈山石)」이라는 제목으로 증정합니다.
다산의 친필 ‘면학문’은 전하지 않으나, 처음 글을 써준 뒤 52년이 지난 1854년에 찢어진 다산의 글씨를 모방해 큰아들 정학연이 친히 써준 「증산석」의 증서가 지금 그대로 전해져, 이번 『다산학단문헌집성』의 사진판으로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아버지 필체를 거의 닮은 유산 정학연의 글씨도 명필임이 분명합니다.
1802년 10월 17일이라는 날짜가 명기된 다산의 글, 학문에 힘쓰기를 권하는 권학문으로 너무도 의미가 깊습니다.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하면, “황상이 배우러 와서 자기에게는 세 가지의 병통이 있다고 했다.
첫째 둔(鈍)하고,
둘째 막혔으며(滯),
셋째 거칠다( )고 했다.
그래서 내가 배우는 사람에게 세 가지의 큰 병통이 있는데 너에게는 그것이 없다.
첫째 외우는데 민첩한 병통,
둘째 글을 짓는데 날래고,
셋째 이해하는데 빠른 것이다.
외우는데 민첩하면 소홀하게 되는 폐단이 있고,
글을 짓는데 날래면 둥둥 뜨는 폐단이 있고,
이해가 빠르면 거칠게 이해하는 폐단이 있다.
그런데 너에게는 그런 폐단이 있는 병통과 반대되는 ‘둔·체·알’의 세 장점이 있으니 둔기로 파야 구명이 넓어지고, 막힌 데를 소통시켜야 패연하게 물이 흐르고, 거칠고 울퉁불퉁한 것을 제대로 갈고 닦아야 그 빛깔이 윤택해진다.
파는 것도 부지런(勉)해야,
소통도 부지런해야,
갈고 닦는 일도 부지런해야만 하는데,
‘마음을 확실하게 붙잡아’(秉心確)야만 부지런하게 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삼근계’라 이름지었습니다.
이런 면학문을 받았던 황상은 받은 뒤 60년 째 75세의 「임술기」에 15세 어린이 때 장가도 들지 못한 학동으로 그 글을 받아 60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잊지 않고 실천해서 글 짓는 선비들과 즐겁게 노닐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고 선생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피력했습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 역시 기록은 위대하기만 합니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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