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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주인이 돌아왔다!

지성유인식 2007. 6. 19. 09:53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의 각 부문에서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최근에는 언어 민주화도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느끼는 언어 민주화는 두 부문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표준어 정책에 대한 지역어의 도전에서, 다른 하나는 두음법칙에 대한 개인들의 도전에서 나타났다. 이 두 부문의 도전은 민중의 언어 수요가 국가주의적 언어 정책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기할 만한 사항일 뿐 아이라, 민중이 드디어 언어정책의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표준어 정책에 대한 지역어의 도전


표준어 정책은 근대 국민국가에서 국론통일을 위해 장려해 왔던 것으로서 우리도 늦게나마 이 정책을 통해서 한국어의 표준화와 국민의 언어 소통에 중대한 진전을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정책이 다른 한 편으로는 지역어를 열등 언어로 인식케 함으로써 서울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민을 언어로써 차별하는 정책으로 정착되는 역기능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차별적 언어 정책을 시정해 보고자 민중이 나서서 표준어 제도 개선을 위한 헌법 소원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학계에서도 이에 공감을 표시하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데, 지난 5월 26일에 제주도에서 열렸던 ‘표준어와 지역어의 공존 방안 모색’이라는 학술 토론회(이 토론회는 국립국어원이 주최하고 전국 국어상담소 연합회가 주관했다)가 표준어 정책을 재검토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표준어 정책이 지역어의 보존 및 발전 정책과 함께 가게 된다면 각 지역 문화의 특성이 언어와 함께 살아 숨 쉬게 될 것이고, 이것이 곧 우리 문화의 층을 지금보다 훨씬 더 두껍게 해 주리라고 믿는다. 흔히 말하는 우리의 ‘문화 콘텐츠’를 풍부하게 해 줄 것이라는 이야기다.


두음법칙은 남한에서는 매우 잘 확립되어 의심의 여지가 없이 수용되던 음운법칙인데 이에 대해서 일부 국민들이 개인의 정체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대법원의 호적등록 규칙에 따라서 성씨 표기에도 두음법칙을 적용하여 왔다. 그래서 ‘류(柳), 리(李), 림(林), 량(梁), 려(呂), 라(羅), 로(盧)’ 등의 한자 성씨를 ‘유, 이, 임, 양, 여, 나, 노’로 표기해 왔다. 그런데 일부 성씨 문중에서 성씨 표기에 두음법칙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여 몇몇 지방법원에서 승소하는 결과를 얻기에 이르렀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던 언어 정책에 이처럼 개인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는 것은 국민의 언어에 대한 인식이 점점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언어정책을 심의하는 최고기구인 국어심의회에서도 이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대법원도 머지않아 이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보면 언어 정책에서도 민중의 요구를 국가가 뒤쫓아 가는 형국이 되고 있다. 정치 부문의 민주화를 민중이 선도했던 것처럼 언어 부문의 민주화도 민중이 선도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어의 주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나는 오래 전부터 언어 운동을 하면서 국민이 한국어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하고 어쩌면 ‘개념이 없는’ 것 같다고 푸념을 해 왔다. 사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 신문 기사, 행정문서 등에서 사용되는 한국어를 보면 참으로 한심해서 국민의 언어 의식을 탓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각종 안내판이나 게시판에 적힌 문장을 보면 도대체 이 사람들이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사람들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언어 운동이 결실을 맺어 조금씩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찍이 감사원은 감사 문장을 쉽고 간결하고 정확하게 쓰는 체제를 완성하였고, 작년에는 법제처가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벌여 60여 법령을 개정하였으며, 한국방송을 포함한 각 텔레비전 방송국이 한국어 관련 프로그램을 크게 늘려서 국민들의 한국어에 대한 인식을 한껏 높여 주었다. 전국의 공무원들도 한국어를 바로 쓰기 위해서 앞을 다투어 국립국어원에 가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한국어를 자기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하며, 한국어를 통해서 개인과 사회 발전을 이룩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한국어는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외국어는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가 가꿔 나가는 것이다. 이를 민중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한국어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그 주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한국어를 보급하고 발전시킬 가장 확실한 담보라는 점에서 이제 우리 한국어의 미래에 서운이 감돌기 시작하였음을 느낀다.


·  글쓴이 / 남영신(국어문화운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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