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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기증하고 떠난 토스트 할머니

지성유인식 2007. 6. 4. 17:23
 

사람이 떠나도 그 삶은 살아있다  


5월의 마지막 날 오후 3시. 성균관대 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양로원을 찾았다. “할머니의 유산”이라며 빨랫비누 11박스를 전했다.


지난 4월 11일 담낭암으로 생을 마친 조화순(향년 77세) 할머니는 1992년부터 성균관대 정문 앞에서 토스트와 어묵을 팔았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눈과 비를 포장 하나로 막아가며 오후 3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일하는 고단한 나날이었지만 할머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다른 포장마차보다 두 배쯤 두툼하게 부친 할머니의 1500원짜리 토스트는 학생들의 가슴까지 채워줬다. 성도훈(경영학과 4년)군은 1학년 때 먹은 ‘공짜 토스트’의 온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가, 천원만 내.” “어묵은 공짜야.” “추운데 이리 와서 포도주 한 잔 마셔.”

월세 30만원 내기도 힘겨워했던, 악성 뇌종양을 앓는 딸(37)과 백혈병에 걸린 손녀(11)의 병원비를 대기도 빠듯했던 할머니는 그렇게 학생들에게 사랑을 나눠줬다. 지난해 4월 할머니의 사정을 알게 된 학생들이 축제기간에 학교 안에서 할머니와 함께 토스트를 구워 팔아 그 수익금을 드리려 했지만, 한사코 하루 일당과 헌혈증만 받아갔다.


그해 9월 할머니가 담낭암에 걸렸다. 청주 꽃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성대 애기들이 보고 싶다”며 몰래 서울로 올라오기도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정재희(법학과 4년)군이 학교 게시판에 올리자 갓 스물의 신입생부터 40대 회사원이 된 졸업생까지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라며 애도했다. “시위가 있는 날엔 누가 다쳤나 걱정하고 새벽 순찰하는 경찰들에게도 어묵을 건네셨다.”(ID: windykid), “아르바이트하느라 힘들지 않으냐면서 한사코 돈(토스트 값)을 거절하셨다.”(ID: nexteam), “운전기사분들 드시라고 새벽 3시까지 일하셨다.”(ID: 알록이) 등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게시판에 하나 둘 쏟아놓았다. 그들 대부분은 그녀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토스트 할머니’라고 했지만 추모 행사를 열고 할머니를 기리는 문구와 그림이 새겨진 휴대전화 액정 클리너를 만들어 팔았다. 이렇게 모은 17만9000원으로 빨랫비누를 사 이날 청운양로원에 전달한 것이다. 토스트 할머니는 거액을 기부했던 ‘김밥 할머니’ ‘풀빵 할머니’처럼 돈을 남기진 못했지만, 학생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떠났다.


 

할머니는 세상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오롯이 주고 떠났다. 천주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서울 가톨릭대 의대 해부학 교실에 시신을 기증했고, 뼈 모형이 되어 ‘아가들’의 공부를 돕고 있다. 남은 육신은 화장해 용인 참사랑묘역에 모셔졌다.


중앙 선데이 구희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