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KOREA와 COREA
우리나라의 국호 '大韓民國'을 영문으로는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 것일까? 여러 나라의 대표가 참석하는 국제 회의나 스포츠 행사 등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영문 표기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The Republic of Korea'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한 이를 줄여서 간략히 'Korea' 또는 'ROK'라고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문으로는 'Daehanminguk'(대한민국), 그도 아니면 더욱 가까이 있던 시대인 'Chosun'이라고 하지 않고 왜 500년 이상 지속된 '조선'이라는 이름의 역사를 건너 뛰어 굳이 'Korea'라고 하였을까하는 의문이 들 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같이 멀고도 광활한 중앙아시아 대륙으로 강제 이주 당하여 살고 있는 많은 우리 동포도 지금 '조선인(朝鮮人)' 또는 '한국인(韓國人)'이 아닌 '고려인(高麗人)'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후반에 조선의 국기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한 종류의 태극기가 발견되었는데 이 이름도 역시 '朝鮮國旗(조선국기)'가 아닌 '高麗國旗(고려국기)'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추측컨대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막강한 나라였던 고구려(高句麗)가 사해(四海)에 그 위엄을 떨치게 됨에 따라 그 영향을 받았거나 아니면 고려시대에 고려(高麗)의 교역 상대가 멀리 아라비아 半島까지 미치게 되고 또 그곳을 통하여 우리의 존재가 서양에도 알려지게 됨으로써 조선시대가 500여 년간이나 지속된 데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고려'(Korea)라는 이름이 사용된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는 앞으로 계속하여 추적해 볼만한 일이라 생각되는 과제로 생각되며, 이와 관련하여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선생이 쓴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의 글을 여기에 소개한다.
「서양 각 국에서 '코리아'와 또 그 비슷하게 부르는 이름들은 어떤 내력의 것입니까? 우리 조선을 영어로는 '코리아(Corea, Korea)'라고 하고, 프랑스어로는 '코레(Coree)'라 하며, 독일어로는 '코레아(Korea)'라 하고, 러시아어로는 '코레야'라고 하는 것은 대개 조선 역사상에 있어 가장 강대한 나라인 '고구려'에서 나온 것입니다. 대체로 고구려는 동방에서 일어난 여러 나라 가운데 세력이 가장 강하고 문화가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그 땅이 가장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의 인상이 이웃 나라에 깊이 박히고 더욱 중국사람들이 동방의 나라를 통틀어 '거우리'라고 부르게 되니 '거우리'는 고구려와 또 그것을 간단히 부르는 '고려(高麗)' 혹은 '구려(句麗)'의 음을 쓴 것이요, 먼 서방 나라들은 중국사람에게 '거우리' 이름을 들여다가 다시 '코레' 또 '코리'라고 변하여 일컫게 되어서 뒤에까지 내려오는 것입니다.
지금 남아있는 문헌으로는 지금부터 7백년쯤 전에 프랑스 루이 왕의 심부름으로 몽고의 조정에 왔던 「루브룩」이라는 사람이 돌아가서 동방의 사정을 전한 가운데 중국의 동쪽에 '카울레(Caule)'라는 나라가 있더라고 한 것이 가장 오랜 것이며, 그 뒤 20년이 넘어서 元나라에 와서 벼슬을 살다가 돌아가서 자세한 견문록을 저술하여 유명한 이탈리아 사람 「마르코폴로」의 책에서는 '카울리(Cauly)'라는 이름으로 기록되니 대개 이 두 말이 오늘날 서양 각 국에서 우리를 부르는 이름의 시초라 할 것입니다. 그네들은 元나라 서울에 많이 가 있던 고려 사람과 물건을 보기도 하고 또 거기서 '거우리'라는이름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명칭이 오늘날 'K'로 시작하는 영문표기인 'Korea'로 공식화되었지만, 일찍이 16세기 전후부터 서양에서는 영국·미국·네덜란드 및 라틴어권 등 절대 대다수의 국가들이 'C'로 시작되는 'Coea' 혹은 'Corea'로 명기하였다. 초기에는 高麗가 중국식인 'Caoli', 아랍식인 'Cory', 일본식인 'Corai'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기도 하였으나 'Corea', 'Coree' 등으로 통일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으며, 지금도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프랑스어권 등에서는 여전히 'C'를 서두로 쓰고 있다.
실제로 영미권에서도 영국인 로버트 콕스(Robert Cocks)라는 사람이 1617년 그의 일기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Corea'로 쓴 것을 근대 영문 명칭의 효시(嚆矢)로 보고 있다. 특히 주목할 사항은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도 영미권의 출판물들은 거의 'C'로 명기하고 있으며, 1882년부터 미국을 선두로 체결된 서구 열강들의 외교 협약 속에서도 독일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한국의 어두를 'K'가 아닌 'C'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19세기 후반 이래로 일본은 우리나라를 영문으로 표기할 경우에 일관성있게 'K'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1890년대 전후부터 미국 국무성과 영국의 왕립지리학회 등이 주도하여 지속적으로 'K'를 사용함에 따라 한동안 대다수의 서양인들이 'K'와 'C'를 혼용하게 되었으며, 이후 역사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명칭도 '동해(東海)의 일본해(日本海) 표기'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Korea'로 공식화되어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채 미완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한편, 1919년에 일어난 3·1독립운동을 계기로 중국 상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국제적으로 우리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국제연맹 등 국제적인 결사체와 미국 등 여러 나라에 보낸 외교 문서에서나 김규식(金奎植) 등 공식 대표단을 파견할 때에는 영문 국호를 일관되게 'The Republic of Korea'로 사용하였다.(우리나라의 국제적 명칭인 'The Republic of Korea'가 처음으로 외국에 보낸 공문에서 사용된 것은 1919년 6월 14일 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한 것을 통보한 공문이었다. ) 따라서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영문 국호도 그대로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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