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헌법 제1조에 등극한 나라이름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우리나라 헌법의 아버지들을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은 광복 3주년이 되는 1948년 8월 15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내외에 선포한다는 목표아래 그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國號를 제정하는 문제에서부터 정부의 조직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등등 수많은 난제(難題)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특히 이 국호와 관련된 문제는 당시 일정한 정치세력등의 정부수립방안과 연계되어서 임정법통론(臨政法統論)에 입각한 우파의 '대한'과 기존 법통에 별로 구애될 것이 없는 좌파의 '조선'의 대립형태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결국 미군정의 우익 중심의 정치세력 재편정책에 따라 우선적으로 여운형(呂運亨) 등이 이끄는 좌파가 배제되고 이승만(李承晩) 등이 이끄는 우익이 정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 이후인 1946년에 들어 우익진영 내에서 이승만 세력이 김구(金九)와 중경(重慶) 임정(臨政)을 제압한 다음 1947년 과도입법의원에서 법률안 제정 등을 통하여 '선거에 의한 과도정부' 수립을 계속 주장하였다. 마침내 유엔 소총회의 결의에 따라 남한에서만의 총선거를 통해 이승만이 최고 행정수반이 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
國號 문제는 국회 내에 설치된 헌법기초위원회(위원장 서상일 徐尙日 : 대구시 을구 출신, 한민당 소속)가 제안한 '大韓民國'이 국회의 심의를 거쳐 원안대로 통과되었고, 이어서 우리 헌법 가운데 가장 핵심 중에서 핵심적인 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제1조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한 나라를 새롭게 건국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國號를 정하는 데는 쉽게 합의가 되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대로 국회의 헌법기초위원회에서 난상 토론이 벌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시 국호를 정하던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한 편의 신문기사를 여기에 소개한다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가 개원되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향한 발걸음이 한층 더 빨라져 갔다. 제헌국회가 헌법 초안을 심의하면서 논란의 초점들 가운데 하나가 제1조의 國號(국호) 조항이었다. 먼저 郭尙勳(곽상훈 : 인천시 갑구 출신, 무소속) 의원과 權泰羲(권태희 : 김천군 갑구 출신, 무소속)의원이 "국호를 '대한'이라고 정한 근거와 의미가 무었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헌법기초위원장 徐尙日(서상일 : 대구시 을구 출신, 한민당 소속)은 6월 26일 "문제의 '大韓(대한)'이라는 국호는 역사적인 사실로서 청·일전쟁을 종결짓는 시모노세끼(下關)조약에서 썼던 것이며, 그 뒤 한·일 합방으로 말미암아 국호마저 없어 졌으나, 3·1운동을 계기로 상해 임시정부에서 '大韓'이라는 국호를 사용했으므로 3·1 독립정신을 이어받은 우리로서 이 국호를 그대로 쓰게 되었다"고 답변했다.
郭(곽)-權(권) 두 의원은 '大韓'이라는 국호의 '大'자가 '군주국'의 분위기를 풍긴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徐위원장도 이에 공감하면서 '大韓'의 '大'는 '大英帝國(대영제국)'이니 '大日本帝國(대일본제국)'이니에서 엿보이듯이 군주국 또는 '非민주국'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천안군 출신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인 李炳國(이병국)의원은 국호에 '크다'는 뜻을 지니는 문자를 쓰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반론하면서, 다만 '大'보다는 '太'를 써서 '太韓(태한)'으로 정하자고 제의했다. 그는 또 '共和國(공화국)'이란 말이 이상스러우니 '同和國(동화국)'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함께 내놓았다. '共和國'이란 용어는 공산주의국가를 연상하게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制憲 國會(제헌국회)의 대체적인 의견들은 大韓이 대외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명칭이고, '共和國'이란 용어가 이미 아무런 저항감 없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지적했다.('共和國'이란 용어는 영어의 'Republic'의 번역어가 아니라 중국 고대 때부터 쓰여진 말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공(共)'이라는 나라와 '화(和)'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나라가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하고 있다.)
또한, 國號(국호) 문제와 함께 이때 새로 건국되는 '大韓民國(대한민국)'의 영토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도 논란이 있었는데 결국 '대한민국의 영토는 韓半島(한반도)와 그 附屬島嶼(부속도서)로 한다'라고 정하여 헌법 제3조에 규정되기에 이르렀으며, 이후 우리는 '한반도(韓半島)', '한민족(韓民族)' 등의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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