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기적은 다르면서 같다.
기도나 기적 모두 원인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도는 현생 노력의 발로이고,
기적은 전생, 즉 자기가 모르는 노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적 [奇蹟, miracle]
초자연적인 힘이나 신의 힘이 있어서 작용했다고 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비상하고 놀라운 사건.
어떤 문화에서든 기적적인 사건에 대한 믿음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믿음은 실제로 모든 종교가 가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원시문화에는 자연의 인과관계라는 과학적 개념이 충분히 발달되어 있지 못하므로 '초자연적' 기적이라는 관념도 완전하게 발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구성원들도 비상한 사건이나 힘의 작용에 대해 알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들도 의식(儀式)이나, 마법 또는 샤머니즘 등 여러 가지 양식을 통해 보다 정상적인 행동양식들과 통합된다. 이와 유사하게 바빌로니아나 이집트 같은 고대사회의 종교에도 공식적인 기적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신탁(神託)과 같은 어떤 신의 행동이나 우주의 작용도 사물의 정상적인 질서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신화와 마찬가지로 고대인도의 신화 역시 신의 행동에 대한 환상적인 설명들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브라만교(敎) 경전인 〈우파니샤드〉와 〈브라마나〉를 보면 기적에 대해 점점 더 무관심해졌다는 것이 드러난다. 보다 발달된 다른 신비주의의 표현들과 마찬가지로 이 경전들도 종교적 통찰과 변화라는 정신적 경험만을 유일하게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적'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힌두교에서는 요가 수행자가 보여주는 기적의 힘에 어떤 한계도 없으며 이로써 인도는 전형적인 기적의 땅이 되었다.
유교에서는 기적이 존재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도교는 모든 수준의 중국 민간신앙에서 환술(幻術)과 환법(幻法)이라는 수확을 풍부하게 만들어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구약성서〉 전체를 통해 기적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신은 특별히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인들의 역사를 통해 이집트에 발생한 10가지 역병과 같은 '놀라운 일'을 한다.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도 기적은 희귀한 현상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에피다우르스의 아스클레오스 신전에서 행한 것처럼 기적으로 병을 치료하고 신들의 동상이 움직이며 죽은 사람이 부활하고 처녀가 수태하는 등 많은 기적이 이루어졌다. 당시 철학의 비판 역시 명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예들이 사실로 전해진다. 키케로는 〈예언에 대하여 De divinatione〉에서 기적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초기 불교의 기록에 따르면 고타마 붓다는 '모든 요가 수행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존재였던 그가 당연히 지녔던 기적의 능력을 가리켜 그 힘 자체에는 종교적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히, 대승불교의 전통에는 부처의 유물에 관련된 기적뿐 아니라 그의 탄생과 생애 및 이후의 불교성인들의 탄생과 생애를 기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만연했다.
그리스도교 〈신약성서〉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특정인들의 요구에 따라 병을 치료하거나 음식물을 넉넉하게 나누어주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신약시대 이후에도 기적은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기적은 그리스도교 성인이 죽은 뒤뿐만 아니라 살아 있을 때도 그들 생애의 일부분을 이룬다. 그리고 기적은 프랑스 루르드 소도시에서 생긴 일을 비롯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성인으로 추앙하는 과정에도 정식으로 인정된 기적이 필요하다.
마호메트는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이 위대한 기적이라는 원칙 아래 기적과 기적의 힘을 부인한 유일한 종교 창시자이다. 그러나 마호메트가 죽은 뒤에 나온 성인전(聖人傳)에서는 그의 생애를 가장 훌륭한 기적적 일화들로 서술했다. 특히 수피파(派)의 영향 아래 있는 대중적인 이슬람교 신앙에는 기적이 풍부하며 기적을 행한 성인들의 무덤으로 향하는 순례여행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초자연적인 힘이나 신의 힘이 있어서 작용했다고 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비상하고 놀라운 사건.
어떤 문화에서든 기적적인 사건에 대한 믿음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믿음은 실제로 모든 종교가 가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원시문화에는 자연의 인과관계라는 과학적 개념이 충분히 발달되어 있지 못하므로 '초자연적' 기적이라는 관념도 완전하게 발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구성원들도 비상한 사건이나 힘의 작용에 대해 알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들도 의식(儀式)이나, 마법 또는 샤머니즘 등 여러 가지 양식을 통해 보다 정상적인 행동양식들과 통합된다. 이와 유사하게 바빌로니아나 이집트 같은 고대사회의 종교에도 공식적인 기적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신탁(神託)과 같은 어떤 신의 행동이나 우주의 작용도 사물의 정상적인 질서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신화와 마찬가지로 고대인도의 신화 역시 신의 행동에 대한 환상적인 설명들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브라만교(敎) 경전인 〈우파니샤드〉와 〈브라마나〉를 보면 기적에 대해 점점 더 무관심해졌다는 것이 드러난다. 보다 발달된 다른 신비주의의 표현들과 마찬가지로 이 경전들도 종교적 통찰과 변화라는 정신적 경험만을 유일하게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적'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힌두교에서는 요가 수행자가 보여주는 기적의 힘에 어떤 한계도 없으며 이로써 인도는 전형적인 기적의 땅이 되었다.
유교에서는 기적이 존재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도교는 모든 수준의 중국 민간신앙에서 환술(幻術)과 환법(幻法)이라는 수확을 풍부하게 만들어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구약성서〉 전체를 통해 기적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신은 특별히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인들의 역사를 통해 이집트에 발생한 10가지 역병과 같은 '놀라운 일'을 한다.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도 기적은 희귀한 현상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에피다우르스의 아스클레오스 신전에서 행한 것처럼 기적으로 병을 치료하고 신들의 동상이 움직이며 죽은 사람이 부활하고 처녀가 수태하는 등 많은 기적이 이루어졌다. 당시 철학의 비판 역시 명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예들이 사실로 전해진다. 키케로는 〈예언에 대하여 De divinatione〉에서 기적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초기 불교의 기록에 따르면 고타마 붓다는 '모든 요가 수행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존재였던 그가 당연히 지녔던 기적의 능력을 가리켜 그 힘 자체에는 종교적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히, 대승불교의 전통에는 부처의 유물에 관련된 기적뿐 아니라 그의 탄생과 생애 및 이후의 불교성인들의 탄생과 생애를 기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만연했다.
그리스도교 〈신약성서〉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특정인들의 요구에 따라 병을 치료하거나 음식물을 넉넉하게 나누어주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신약시대 이후에도 기적은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기적은 그리스도교 성인이 죽은 뒤뿐만 아니라 살아 있을 때도 그들 생애의 일부분을 이룬다. 그리고 기적은 프랑스 루르드 소도시에서 생긴 일을 비롯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성인으로 추앙하는 과정에도 정식으로 인정된 기적이 필요하다.
마호메트는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이 위대한 기적이라는 원칙 아래 기적과 기적의 힘을 부인한 유일한 종교 창시자이다. 그러나 마호메트가 죽은 뒤에 나온 성인전(聖人傳)에서는 그의 생애를 가장 훌륭한 기적적 일화들로 서술했다. 특히 수피파(派)의 영향 아래 있는 대중적인 이슬람교 신앙에는 기적이 풍부하며 기적을 행한 성인들의 무덤으로 향하는 순례여행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기도 [祈禱, prayer]
사람이 하느님, 신, 초월적 영역, 초자연적 세력 등 신성하거나 거룩한 존재와 대화하는 행위.
기도는 역사 전체를 통해 모든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한 개인이 혼자 기도할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으로 기도할 수도 있다.
사람을 위한 기도는 전적으로 비인격적인 마술에서 떨어져 나와 생겼으나, 기도와 마술은 발전해가면서 끊임없이 엇갈리고 뒤섞였다.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일어섬, 무릎을 꿇음, 구부림, 엎드림, 머리를 조아림)와 손 자세(올림·펼침·쥠·교차함·맞잡음) 등의 기도행위는 복종·존경·헌신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며, 금기(禁忌)와 초인적 존재가 주는 위험을 막기 위해 고안된 마술적 기교에서 나온 듯하다.
기도를 통해 신적인 존재와 나누는 대화는 그 신적인 존재가 자연 세력(예를 들면, 비의 신)이든, 인간행위의 수호자(예를 들면, 출산의 여신)이든, 조상이든, 만물 가운데 최고의 세력이든, 하늘의 신이자 창조주이든 간에 일상적인 사회접촉과 똑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도에는 '아버지', '어머니', '주'(主), '왕' 같은 호칭이 쓰이며, 마찬가지로 죄의 고백, 간구, 감사, 찬송, 예물(제사)에 대한 말, 기도를 들어주면 예물들을 바치겠다는 약속(서원)을 한다. 원시시대 기도의 특징은 세상의 질병과 위험에서 벗어나고 현세적인 소유를 얻으려는 욕구에 있다.
이러한 원시적인 기도는 문자사용 이전시대 사람들에게서 그 단순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기도는 고대 문명에 그대로 살아남으면서 원래 즉흥적이고 자유스럽게 표현된 기도가 고정된 기도문으로 발전했다. 찬송은 의례식의 경직성과 형식에 치우치던 데서 점차 벗어나, 자연에 나타난 하느님의 행위를 순수히 명상하는 데로 발전했고 이집트 왕 이크나톤의 태양을 노래하는 찬송이 그 절정이다.
종교가 영혼과 도덕을 추구함에 따라 사람의 기도생활도 그런 방향으로 발전했다. 현세적인 소유를 구하는 일은 훨씬 덜 중요하게 되거나 어떤 경우들에는 완전히 사라진 반면에, 영적 및 도덕적 자질, 하느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 하느님과 하나됨을 비는 기도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또한 '영적 기도' 혹은 '마음의 기도'라고 부르는 죄의 고백, 찬송, 감사, 하느님의 뜻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기도가 많아졌다.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무언(無言) 기도가 생겼는데 신비주의자들은 이를 신에 대한 가장 순결한 형식의 경배로 생각한다.
개인 기도뿐만 아니라 공중(公衆) 기도도 종교발전의 모든 단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시 종족에서는 대표자가 기도하면 공동체가 응답하는 형식으로 공동기도를 했고, 그 대표자는 주로 가장(家長)·족장·제사장이었다. 이러한 공동기도가 정교하게 발전한 예는 제2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뒤(70)의 유대교와 유대 전승을 지켜온 그리스도교에서 볼 수 있다. 유대교의 공동예배기도에서는 맨 먼저 창조와 구원을 이룬 하느님을 찬송하는 내용이 나온다.
찬송 다음에는 하느님의 백성과 온 인류를 위한 중재기도가 따른다. 그리스도교에서 공동기도의 절정은 주기도문으로 예수 당시의 유대인이 하던 주요 기원들을 한데 모은 기도이다. 주기도문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기원하는 데 있다. 불교에서 그리스도교의 주기도문에 해당하는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모든 생물들, 즉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못하거나, 크고 우람하거나, 중간 크기이거나, 투박하거나, 세련되거나, 볼 수 있거나, 볼 수 없거나,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 이미 태어났거나, 태어나려고 하는 것이나, 모든 존재가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해 주옵소서."
4개의 예언종교, 즉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조로아스터교는 즉흥적인 개인 기도와 공중예배뿐만 아니라, 특정한 개인을 위해서 작성해놓은 일일(日日) 기도문에 따라 기도하도록 가르친다. 모든 유대인 남자는 '셰마'(Shema), 즉 야훼를 유일한 참 하느님으로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른바 '18가지 요청의 기도'(Amida)를 하루에 2번 반드시 낭송해야 한다. 소박하게 '기도'(Tefilla)라고 하는 것도 역시, 찬송·감사·간구(懇求)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노예·어린이까지도 하루에 3번 반드시 낭송해야 한다.
이처럼 의무적으로 낭송했던 유대교 기도에서 발전한 그리스도교 교회의 성무일도(聖務日禱)는 수도원 예배당에서 수사나 수녀가 함께 낭송 혹은 노래하며, 재속(在俗) 사제들이 개인적으로 낭송한다. 성공회와 루터교에서는 간략하게 만든 성무일도를 회중예배 때 낭송한다.
이슬람교의 '살라트'(salat)는 유대교의 의무적인 기도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하루에 5번(동틀 때, 정오, 오후, 해가 진 직후, 해진 후 2시간 가량 뒤) 사원의 뾰족탑에서 기도 시간을 알린 뒤에 한다. 기도를 하기 전에 목욕재계를 한다. 엄격한 규율에 따라 경전을 낭송하고(〈코란〉의 제1'수라'장, 찬송기도, 신앙고백, 마호메트와 信仰偉人에 대한 감사기도), 기도 자세를 취한다(일어섬, 절함, 엎드림, 허리를 굽힘, 손을 들거나 펼침 등). 조로아스터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도문들을 낭송하며, 이 네 종교들은 모두 의무적인 기도문들을 반복 낭송하는 것이 공덕(功德)을 쌓는 일로 생각한다.
사람이 하느님, 신, 초월적 영역, 초자연적 세력 등 신성하거나 거룩한 존재와 대화하는 행위.
기도는 역사 전체를 통해 모든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한 개인이 혼자 기도할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으로 기도할 수도 있다.
사람을 위한 기도는 전적으로 비인격적인 마술에서 떨어져 나와 생겼으나, 기도와 마술은 발전해가면서 끊임없이 엇갈리고 뒤섞였다.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일어섬, 무릎을 꿇음, 구부림, 엎드림, 머리를 조아림)와 손 자세(올림·펼침·쥠·교차함·맞잡음) 등의 기도행위는 복종·존경·헌신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며, 금기(禁忌)와 초인적 존재가 주는 위험을 막기 위해 고안된 마술적 기교에서 나온 듯하다.
기도를 통해 신적인 존재와 나누는 대화는 그 신적인 존재가 자연 세력(예를 들면, 비의 신)이든, 인간행위의 수호자(예를 들면, 출산의 여신)이든, 조상이든, 만물 가운데 최고의 세력이든, 하늘의 신이자 창조주이든 간에 일상적인 사회접촉과 똑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도에는 '아버지', '어머니', '주'(主), '왕' 같은 호칭이 쓰이며, 마찬가지로 죄의 고백, 간구, 감사, 찬송, 예물(제사)에 대한 말, 기도를 들어주면 예물들을 바치겠다는 약속(서원)을 한다. 원시시대 기도의 특징은 세상의 질병과 위험에서 벗어나고 현세적인 소유를 얻으려는 욕구에 있다.
이러한 원시적인 기도는 문자사용 이전시대 사람들에게서 그 단순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기도는 고대 문명에 그대로 살아남으면서 원래 즉흥적이고 자유스럽게 표현된 기도가 고정된 기도문으로 발전했다. 찬송은 의례식의 경직성과 형식에 치우치던 데서 점차 벗어나, 자연에 나타난 하느님의 행위를 순수히 명상하는 데로 발전했고 이집트 왕 이크나톤의 태양을 노래하는 찬송이 그 절정이다.
종교가 영혼과 도덕을 추구함에 따라 사람의 기도생활도 그런 방향으로 발전했다. 현세적인 소유를 구하는 일은 훨씬 덜 중요하게 되거나 어떤 경우들에는 완전히 사라진 반면에, 영적 및 도덕적 자질, 하느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 하느님과 하나됨을 비는 기도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또한 '영적 기도' 혹은 '마음의 기도'라고 부르는 죄의 고백, 찬송, 감사, 하느님의 뜻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기도가 많아졌다.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무언(無言) 기도가 생겼는데 신비주의자들은 이를 신에 대한 가장 순결한 형식의 경배로 생각한다.
개인 기도뿐만 아니라 공중(公衆) 기도도 종교발전의 모든 단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시 종족에서는 대표자가 기도하면 공동체가 응답하는 형식으로 공동기도를 했고, 그 대표자는 주로 가장(家長)·족장·제사장이었다. 이러한 공동기도가 정교하게 발전한 예는 제2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뒤(70)의 유대교와 유대 전승을 지켜온 그리스도교에서 볼 수 있다. 유대교의 공동예배기도에서는 맨 먼저 창조와 구원을 이룬 하느님을 찬송하는 내용이 나온다.
찬송 다음에는 하느님의 백성과 온 인류를 위한 중재기도가 따른다. 그리스도교에서 공동기도의 절정은 주기도문으로 예수 당시의 유대인이 하던 주요 기원들을 한데 모은 기도이다. 주기도문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기원하는 데 있다. 불교에서 그리스도교의 주기도문에 해당하는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모든 생물들, 즉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못하거나, 크고 우람하거나, 중간 크기이거나, 투박하거나, 세련되거나, 볼 수 있거나, 볼 수 없거나,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 이미 태어났거나, 태어나려고 하는 것이나, 모든 존재가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해 주옵소서."
4개의 예언종교, 즉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조로아스터교는 즉흥적인 개인 기도와 공중예배뿐만 아니라, 특정한 개인을 위해서 작성해놓은 일일(日日) 기도문에 따라 기도하도록 가르친다. 모든 유대인 남자는 '셰마'(Shema), 즉 야훼를 유일한 참 하느님으로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른바 '18가지 요청의 기도'(Amida)를 하루에 2번 반드시 낭송해야 한다. 소박하게 '기도'(Tefilla)라고 하는 것도 역시, 찬송·감사·간구(懇求)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노예·어린이까지도 하루에 3번 반드시 낭송해야 한다.
이처럼 의무적으로 낭송했던 유대교 기도에서 발전한 그리스도교 교회의 성무일도(聖務日禱)는 수도원 예배당에서 수사나 수녀가 함께 낭송 혹은 노래하며, 재속(在俗) 사제들이 개인적으로 낭송한다. 성공회와 루터교에서는 간략하게 만든 성무일도를 회중예배 때 낭송한다.
이슬람교의 '살라트'(salat)는 유대교의 의무적인 기도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하루에 5번(동틀 때, 정오, 오후, 해가 진 직후, 해진 후 2시간 가량 뒤) 사원의 뾰족탑에서 기도 시간을 알린 뒤에 한다. 기도를 하기 전에 목욕재계를 한다. 엄격한 규율에 따라 경전을 낭송하고(〈코란〉의 제1'수라'장, 찬송기도, 신앙고백, 마호메트와 信仰偉人에 대한 감사기도), 기도 자세를 취한다(일어섬, 절함, 엎드림, 허리를 굽힘, 손을 들거나 펼침 등). 조로아스터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도문들을 낭송하며, 이 네 종교들은 모두 의무적인 기도문들을 반복 낭송하는 것이 공덕(功德)을 쌓는 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