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뉴스에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항명이 있었기에 지금의 상태로 보존이 되었다는 글과 이집트의 피라밋의 마감재가 화강암으로 햇빛을 받으면 빛이 반사되었는데 재해로 건축물들의 수선이 필요할 때 인근의 주민들이 건축재료로 떼어가 지금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가이드의 설명을 비교해 우리 의식의 중요성을 세삼 느끼며...
아래 글은 충북향토사연구협의회 회장 김예식 선생의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사수한 별들의 이야기' 랍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게 한 우리 공군 편대장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6. 25사변이 발발하고 3일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전쟁다운 전쟁도 없이 충북지역의 음성 가므재전투와 충주 동락전투 그리고 다부동 전투로 이어지며 전선은 대구 팔공산전투 낙동강 최후 방어선!
피난 수도는 부산이고 경상남도 일부만이 남아있을 때, UN군 맥아더 사령관이 9월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어 길고도 긴 3개월의 악몽이 사라질 무렵 인민군들이 지리산 일대로 몰려 소백산맥으로 도주의 길을 택하면서 전선이 아닌 후방 북한군 소탕작전이 감행되고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의 형세로 될 때 해인사 근처의 북한군 토벌 명령을 받은 공군편대장의 기억은 이러하다.
해인사에 집결한 북한군 소탕작전에 한국 공군편대가 투입된다. UN군 작전명령을 받은 편대장은 편대기 4대를 몰고 출격, 북한군을 무차별 포격하여 불바다를 만들도록 명령을 받는다. 우리 공군 편대장은 해인사 폭격을 중지하고 항명한다. 항명을 한 편대장이 UN군 작전사령부에 호출되어 힐책을 받을 때 해인사를 폭격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단다.
“해인사는 법보(法寶) 사찰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우리나라 삼대 명찰중의 하나이다. 전쟁으로 인하여 이것을 불태울 수 없을 뿐아니라 불교신자인 나로서는 더더욱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영국 사람들이 말하기를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와 인도와는 바꿀 수가 없다’ 한단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세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주어도 해인사 팔만대장경과는 바꿀 수가 없는 보물중의 보물이다.’ 그리하여 폭격을 하지 아니하고 항명을 하였다.”고 당당히 말하자, UN군 작전장교는 한국군 편대장의 조국의 문화 사랑에 감복을 했다는 내용으로 기억되었다.
문화재에 얽힌 비화를 준비하면서 이 엄청난 사실이 어딘가엔 기록되어 있을 것으로 판단, 그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충주 근처에 공군부대가 있다. 부대 정보참모 면회 신청을 하고 방문하여 그 부대 정보장교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본부에 알아서 통보해준다 하고 몇 달이 지난 후 확인하였더니 그 정보장교는 본부에서 자세한 것이 아니라 그런 말은 있으나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에 참전했던 편대장이나 편대원 누구라도 찾아 내용을 알기 위함이었는데……
마침 충주 엄정면 출신 령관급 장교를 알게 되어 그로 하여금 당시의 편대장을 수소문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 편대장은 김영환 장군인데 청주에 살고 있다면서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즉시 전화를 하였더니 그 김영환 장군이 직접 받는데, “사람을 잘 만나지 아니하고 은거하고 있으니 무엇 때문에 만나려고 하는지 사유를 대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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