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마리아의 응답이라는 칼날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서 하나님은 구약에 비해 매우 파격적인 방식으로
인류 역사에 등장한다. 그분이 택하신 장소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전의 지성소도 아니고, 예언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거친 광야도
아니었다. 또 그분이 택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여사사 드보라처럼 야심
만만한 여장부도 아니었고, 세도 있는 양가집 규수도 아니었다. 나아
가 그분이 택하신 시간은 꿈을 꾸며 몽환적인 곡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두운 밤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분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나사렛의 촌구석을, 이스라엘의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름을
가진 사람 처녀 마리아를, 그리고 일하고 생활하는 엄연한 현실의 대
낮을 계시의 현장으로 택하셨다.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지
극히 평범하고 서민적인 분위기가 곧 신비의 사건이 벌어진 마당이
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서민적 접근은 종래의 성속(聖俗)의 구별을
무색하게 만든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도시의 한복판이, 땀 흘리며
일하는 작업의 시간들이, 또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나 자신의 처
지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계시의 현장이 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 아니겠는가?
한편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리는 장면은 너무나도 감
동적이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일개 시골 처녀를
구원 사역의 동반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더욱이 마리아
를 대화의 상대역으로 삼고 창조 이래 준비해온 당신의 구원 계획
을 마리아의 응답이라는 칼날 위에 올려놓으실 만큼 하나님은 차라
리 모험적이셨다. 이것은 참으로 한 인간의 자유와 의지를 존중하
는 지극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것은 구원의 역사에 인간
의 자유로운 선택이 차지하는 몫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다. 실로 구원의 역사란 하나님과 인간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대화
속에 엮어가는 거대한 교향곡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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