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2,500원입니다."
김능환(62)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퇴임 바로 다음날인 6일 부인이 운영하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편의점에서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다. 손님이 없을 때는 물건 상자를 겹겹이 쌓아 들고 옮겼다. 위아래 등산복 차림에 목에는 목도리를 둘렀다. 영락없는 편의점 주인 아저씨였다.
전날 퇴임식에서 거취를 묻는 질문에 "아내의 가게를 도우며 소시민으로 살아가겠다. 당분간 공직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 그대로였다. 그는 공직생활 33년 내내 한결같이 검소한 모습을 보여 '청백리'라는, 이제는 낯설게 들리는 별명을 얻었던 사람이다.
이런 퇴직 공직자도 우리사회에 존재한다. 한국일보는 지난 4일부터 '공직사회 지배하는 로펌' 기획 시리즈로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전관예우 실태, 대형로펌 등을 매개로 돈과 명예를 노리고 공직으로 리턴하는 퇴직 고위공직자 문제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김 전 위원장의 이날 모습은 그런 현실에서 어쩌면 충격이었다.
김 전 위원장은 "이전부터 가게에 종종 나와 도와줘서 일이 익숙하다"며 "아직 물건 정리하는 법은 못 배웠다. 그것까지 내가 하면 집사람이 너무 심심해할까봐…"라고 말했다. 그의 부인은 공직자 재산공개 때마다 꼴찌 주변을 맴돈 남편을 도와 편의점과 채소가게를 열었다. 부인은 "바깥양반이 '판사 주변에서 이해관계가 얽히는 일이 있으면 안된다'고 늘 손사래를 쳐, 그나마 퇴임을 앞둔 지난해 가게를 열었는데 지난 겨울 채소값도 비싸고 처음 하는 일이라 손해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꿈이 있다면 편의점과 채소가게가 먹고 살 만큼 돼서 집사람과 함께 잘 지내는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군것질거리를 사러 온 꼬마에게 공짜 사탕을 쥐어주고, 막걸리를 달라는 노인에게는 1,200원짜리를 "1,000원만 내셔도 된다"며 값을 깎아주고 있었다. 그가 대법관에 중앙선관위원장 출신인지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 인터넷 한국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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