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김종해
눈은 가볍다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내리는 눈은 포근하다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눈내리는 날은 즐겁다
눈이 내릴 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출처] 눈/김종해(19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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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잃어버린 자연' 으로 표현되면 비가(悲歌)다. 실재 앞에 있는 것으로 표상되면 목가
(牧歌)다. '눈과 눈이 서로를 업고 있다' 는 발상이 놀랍다. 수많은 눈송이들에서 '뿔뿔이' 가 아
나라. 조화 화해를 본 것이다. 문재는 "눈이 내릴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는 시구다. 누군
가를 업지 못한, 즉 조화 화해를 잃어버린 상태임을 암시하기에 이 시는 넓은 의미의 비가다. 이점
에서 "눈은 가볍다"로 시작한 건 반어적이다. 목가적 상황을 예측하게 해놓곤 비가적으로 끝내기
때문이다. 김춘수가 '눈에 대하여' 에서 "눈은/우모(牛毛)처럼 가벼운 것도 아니다"라고 읊은 것은
역설이다. 눈이 '무거운 현실' 과 등가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박찬일 시인)
(중앙 일보 2008 12 26자 시가 있는 아침에서)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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