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成

합격자 플래카드와 다산의 「감사론」

나는 새 2008. 12. 3. 18:19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대학 동창 중에 중고등학교 교사가 많다. 다른 길을 걷노라 어울릴 기회가 적지만 뜸뜸이나마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얼마 전 대학 다닐 때 순수한 교육적 열정으로 들끓던 친구를 십수년만에 만나 생선회 한 접시를 앞에 놓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만나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 소식을 묻기도 하고, 떠올리자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청춘의 황당한 실수담 등 온갖 얘기로 꽃을 피우다가 화제가 입시 이야기로 번졌다.


“야, 아무개야, 그런데 말이지, 대학 입시 끝나거든 제발 학교 앞에다가 서울대 몇 명 합격이라고 플래카드 좀 붙이지 말아라. 원, 그래서야 쓰겠냐? 학생이 서울대 몇 명 간 것이 학교 자랑거리가 되나? 그거 교육자답지 않다.”


친구의 답은 이랬다. “이 사람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나. 선생님들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학부형들이 몇 명 갔느냐고 물어서 붙여 놓은 거란다. 또 교장 선생님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특정 대학에 많은 학생을 합격시키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목적인가, 자랑거리인가. 설령 그렇다 치자. 하지만 학교에서 그것을 플래카드에 써서 몇 달이고 광고를 하는 것이야말로 좀 부끄러운 처사가 아닌가.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런 꼴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슨 고시 합격자 발표가 나면, 길거리에 ‘무슨 고등학교(혹은 중학교) 졸업생 아무개’ ‘아무개 씨 아들 누구’가 어떤 고시에 합격했다고 자랑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리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대학 올해 사법시험 몇 명 합격, 무슨 고시 몇 명 합격, 이런 플래카드는 넝마가 될 때까지 걸려 있다. 물론 개인이 노력해서 어렵다는 시험에  합격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기뻐할 일이고, 그 개인을 아는 사람이 축하하면 그만인 일이다. 동네방네 그것을 알려야 할까?


또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내 주위에 그런 시험에 합격한 분들이 더러 있지만, 그들로 인해 그 마을이나 그 학교나 그 이웃이나 그 친척이 무슨 행복해지는 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안면을 통해 무슨 사사로운 부탁을 하여 덕을 보는 일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분들이 차지한 높은 자리가 사적 친분을 통한 부탁을 들어주라고 만든 자리는 아닐 것이다. 요컨대 플래카드의 주인공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것일 뿐이다.


나는 이런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조선시대의 과거 합격자와 다산의 「감사론」이 떠오른다. 「감사론」의 한 부분을 들면 이렇다.


“그 사람은 큰 깃발을 세우고 넓은 일산을 바치고 큰 북을 치고 큰 나팔을 불고 두 필의 말이 끄는 교자를 타고 옥로(玉鷺)를 위에 꽂은 갓을 쓰고 길을 간다. 그를 따르는 사람을 꼽자면, 수종군은 부(府)가 둘이고 사(史)가 둘이며, 서(胥)는 부·사의 수와 같이 하되 둘을 더하고, 병졸은 수십 명, 하인과 종의 무리는 수십 수백 명이다. 여러 현(縣)과 역(驛)에서 나와 인사를 안부를 여쭙고 맞이하는 아전과 병졸이 수십 수백 명이고, 말을 탄 사람이 1백 명, 짐을 실은 말이 1백 필, 고운 옷에 곱게 단장한 부인이 수십 명, 화살 넣은 동개를 지고 말을 타고 앞을 달리는 비장이 둘, 그리고 뒤에 따라가는 비장이 셋이다. 거기에 따르는 역관(驛官)이 하나, 향정관(鄕亭官)으로 말을 타고 따르는 사람이 셋, 인끈을 늘어뜨린 부신(符信) 주머니를 차고 숨소리도 내지 않고 말을 타고 따르는 사람이 네댓, 붉고 흰 차꼬와 항쇄, 족쇄를 싣고 가는 사람이 넷, 횃불을 등에 지고 청사초롱을 손에 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수백 명, 손에 채찍을 쥐고 백성들이 앞으로 달려 나와 하소연을 하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여덟이다. 길거리에서 바라보고 한숨을 뿜으며 부러워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다.”


왜 엉뚱하게 플래카드의 이름에서 과거합격자와 감사가 떠오르냐고? 나도 모른다. 나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연상 작용의 복잡한 과정을 어떻게 알겠는가? 혹 「감사론」을 다시 꼼꼼히 읽어보면 알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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