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었다.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이 이토록 무능한 까닭이 뭔지 말이다. 좌파 정권 10년에 우파 인재의 씨가 말랐다 해도 건국 이후 반세기 동안 쌓인 내공이 있을진대 어찌 이리 미숙아들만 키재기를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었다.
시위 막겠다고 수도 심장부에 컨테이너 성을 쌓는 단세포적 대응 능력, 예상됐던 유가 급등 하나에도 꼬리를 내리고 마는 무소신 개혁·성장 패러다임, 국민은 총맞아 죽고 국제무대선 농락이나 당하는 정신지체 외교…. 어느 하나 인큐베이터가 필요하지 않은 게 없다. 거기에 코드인사, 포퓰리즘, 엇박자 내는 집권당까지. 무능 정권이 갖출 덕목은 죄 갖췄다.
지난 정권 386 아마추어들의 선무당 짓보단 조금은 나으리라 기대했는데 결코 덜하지 않은 보수 정권의 미숙함이 무엇 때문인지, 그나마 그들이 가졌던 일관성마저 없이 넋잃고 우왕좌왕하는 이유가 과연 뭔지 궁금했었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의문이 풀렸다. 함께한 지인이 소주 한잔 들이켜고 “캬” 소리 대신 뱉은 말이 머리를 때렸다. “처음 해보는 거잖아요.” 아뿔싸, 그랬던 거다. 건국 60년 동안 이념적으로 순수한 보수 정권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거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정부 수립이라는 지상명제가 있었다. 궁정동 총소리가 아니면 언제 끝났을지 모를 박정희의 공화당 정권, 또 그것이 낳은 기형아인 전두환·노태우의 민정당 정권은 모두 군사독재의 부산물이었다. 3당 합당에 기반을 둔 김영삼의 신한국당 정권 역시 군 출신 아닌 문민정부라는 가치가 우선이었다. 보수니 진보니 따져볼 겨를도, 그럴 필요도 없었던 거다.
하지만 이 정권은 달랐다. 좌파 정권이 설익은 낭만적 분배의 왈츠 스텝을 밟을 때마다 줄어드는 파이를 보고 놀란 국민들이 눈을 돌려 선택한 게 성장의 기치를 내건 이 정권이었다. 따라서 이 보수 자처 정권의 출발점은 보수의 가치를 살펴서 차근차근 실현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 길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가지 않았던 전인미답의 처녀지였다. 조심조심 두들겨가며 걸었어야 했다. 그 행보를 바라보는 국민들도 처음이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아무도 몰랐다.
초보면서 숙련된 기사인 줄 착각한 게 실수였다. 지난 10년간 운전대를 놓았지만 50년 운전경력이 어디 가나 싶었다. 경력이란 게 줄곧 조수석 무임승차였던 걸 깨닫지 못한 거였다. 신작로 따라 똑바로만 가면 될 줄 알았는데 구불구불 좁은 길도 나왔고 사거리도 나왔다. 아슬아슬 곡예운전을 차마 보지 못해 국민들은 눈을 감았다.
지금이라도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동동촉촉 가야 한다. 영국 보수당의 역사가 훌륭한 길잡이가 돼줄 거라 믿는다. 귀족·지주 계급의 결사에서 출발해 ‘옛것을 지킨다’는 신선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이름을 달고 200년 가까이 이어져온 비결이 그들에겐 있다.
그 속엔 온건한 개혁으로 중산층까지 지지 기반을 넓힌 ‘근대 보수주의의 아버지’ 로버트 필, 특권계급을 넘어 중하층까지 통합된 ‘일국 보수주의(One Nation Conservatism)’의 유산을 남긴 벤저민 디즈레일리, 사회적 조화와 산업적 동반자 관계, 대결보다 합의를 중시한 ‘신보수주의’를 제창한 스탠리 볼드윈 총리 등이 있었다. 그들의 공통된 덕목은 ‘시대 변화를 과감히 수용해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능했기에 보수당은 살아남았다. 영국에 극우 파시즘과 극좌 공산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기도 하다.
외람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나눠줬다는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돌파의 CEO 윈스턴 처칠』을 읽을 때가 아닌 듯싶다. 그보다는 숭실대 강원택 교수가 안식년 휴가를 가면서 남긴 『보수 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를 읽어보길 권한다. 처칠은 전쟁 영웅이지 보수 정치를 발전시킨 사람은 아니다. 영국 국민도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를 버리고 노동당을 택했다. 지금은 살아남아야지 돌파할 때가 아니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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