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자가 왕이 된 시대는 신라 시대뿐이었다. 27대 선덕여왕과 28대 진덕여왕, 그리고 통일신라 말기 진성여왕이 그들이다. 진성여왕을 끝으로 우리 역사에서 여자의 몸으로 왕이 된 예는 찾아볼 수가 없다. 고구려나 백제에 없는 여왕이 왜 신라에만 있었는지 살펴보고, 우리나라 역사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여왕 3명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 알아보자.
신라에만 유독 여왕이 있었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신분제도인 ‘골품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왕에게 아들이 없는 경우 유력한 왕족의 한 사람이 왕위를 계승하면 되었다. 반면에 신라에서는 성골(聖骨) 신분이 아니면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다. 성골을 고집하는 골품제도는 왕자가 태어나지 않으면 공주라도 왕위를 계승하도록 했다. 선덕여왕의 경우도 성골 출신 중에서 왕위를 이을 남자가 없게 되자 여자이지만 유일한 성골인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골품(骨品)이란 뼈에도 품격이 있다는 말이다. 왕이 될 수 있는 성골과 왕의 친족이나 귀족 세력인 진골(眞骨)로 나누어지는데,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왕족의 혈통 보존을 위해 근친상간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여자가 왕이 될 수 있게 한 신라의 골품제도는 결과적으로 신라를 여성과 남성의 지위가 거의 동등한 나라로 만들었다. 여자도 재산 상속권과 경제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혼인을 하더라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편의 지위와는 별도로 계속해서 보장되었다.
신라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또 다른 이유로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유교 문화의 수용이 늦었던 점을 들 수 있다. 남자 중심의 가부장적인 유학을 가장 늦게 받아들임으로써 신라는 고대 모계 중심 사회의 전통이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늦게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신라 세 여왕의 역사적인 평가는 어떠할까? 선덕여왕은 즉위해서 민심을 다스리려고 노력했고 첨성대와 황룡사탑을 만들었다. 그러나 외적의 침입이 많았고 말년에는 상대등 비담이 난을 일으키기도 한다.
진덕여왕은 즉위하자마자 왕권을 다지기 위해 선덕여왕 말년에 난을 일으킨 비담 등 30여 명을 잡아서 처형했다. 하지만 진덕여왕이 재위 8년 만에 사망해 버리자 왕위는 삼국 통일의 주역인 진골 출신 김춘추에게 넘어간다.
통일신라 말 왕위에 오른 진성여왕은 재위 초년에는 남편인 각간 위홍에게 모든 정치를 주관하게 하였고 자신은 정치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위홍이 죽자 진성여왕은 정치적 실정을 거듭하였고, 결국 농민봉기와 지방 호족의 발호로 신라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세 여왕 중 누구에게도 좋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선덕여왕에 대해서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여왕의 치세를 겪으며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라고 썼고, 진덕여왕에 대한 기록도 별다를 바 없다. 진성여왕에 대해선 음란하고 부도덕한 여인이라는 혹평을 하고 있다. 특히 진성여왕이 자신의 숙부인 각간 위홍과 혼인하였고, 위홍 사후엔 젊은 남자를 끌어들여 국정을 농락했다며 그녀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신라의 여왕들은 김부식과 같이 남성 중심적인 고려 유학자에 의해 상당히 왜곡된 평가를 받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왕족의 혈통 유지를 위한 근친상간이 흔했기 때문에 숙부와 혼인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진성여왕은 즉위 원년 민심 수습을 위하여 1년 동안 세금을 걷지 않는 세제정책을 썼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다시 세금을 거둬들이려고 했다. 이러한 정책은 대규모 조세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민란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진성여왕 개인의 잘못으로 보는 것은 공정치 못한 일이다. 이미 진성여왕이 즉위하기 100여 년 전부터 왕조의 ‘말기적 증상’을 보여 왔던 신라는 진성여왕 때에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국운이 기울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박승렬 LC교육연구소장
...진성여왕의 마음이..지금 우리나라의 대통령 마음 같았을지...?
...새로운 대한민국의 힘을...다질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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