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공심(公心)과 공안(公眼)으로 판단해야

지성유인식 2008. 7. 4. 15:29
 

조선 5백년의 역사에서 가장 처참하고 반역사적인 사건들은 학문이나 사상적 견해가 다른 반대파 학자들을 학문과 사상의 차이 때문에 죽이는 것이 아니라, 역적이나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서 죽이는 일입니다. 당신들은 우리 집권세력과는 학문과 사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같이 살아갈 수 없으니 죽일 수밖에 없소라고 했다면 정직하기라도 하지만 학문과 사상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는 사람을 죽였다는 역사가 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유를 둘러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난날 역사의 비극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을 거론하면, 바로 송시열과 윤휴라는 숙종 때 인물들의 문제입니다. 윤휴는 남인계 학자로 애초부터 주자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자의 경전해석에 많은 이론(異論)을 제기하면서 사서오경에 대한 새로운 주석으로 학계에 많은 풍파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어떤 정권이나 권력자도 그를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큰 학자로 대접받아 온갖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쳐 이조판서라는 고관의 벼슬에 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에 많이 알려진 ‘기해예송’이라는 복제(服制)문제로 남인과 서인의 싸움이 격화되자, 송시열의 기년(朞年)설에 참최(斬衰) 3년설을 강력히 주장한 윤휴는 송시열과 정면대결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비주이종(卑主二宗)’, 즉 임금을 낮추고 종통을 두 개로 나눈 서인의 잘못을 따지는 윤휴의 예설은 서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의 지적이었습니다. 이래서 서인들은 궁한 입장에 처했지만 권력이 그들에게 있었기에 반대파들을 축출하거나 귀양 보내 위기를 모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자, 마침내 비장의 무기를 꺼냈으니, 바로 ‘사문난적’이라는 역적으로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을 활용하게 됩니다. 신성시되는 주자학을 비판했다는 이른바 ‘사문난적’이라는 죄를 씌우고 역적이라 몰아붙여 극형에 처했으니 바로 윤휴의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정치의 쟁점이던 ‘예송’은 젖혀두고 엉뚱한 경전주석을 문제 삼아 정적을 제거했던 반역사적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산은 그의 편지 「여이여홍(與李汝弘)」이라는 글에서 공평한 마음(公心)과 공평한 안목(公眼)으로 보면 정치적 이유인 ‘예송’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숨기고 다른 이유로 윤휴라는 정적을 제거했던 점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요즘 촛불문화제를 보면서 반미·좌파세력으로 매도하며 배후 추적으로 촛불을 끄려는 당국의 입장을 공심과 공안으로 본다면 어떻게 평가할까요. 원인제공자가 누구였나를 공심·공안으로 따져야 하지 않을까요.


다산연구소 박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