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 홍보간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시골 의사’ 박경철(44)씨가 드디어 속내를 털어놨다. 직장·대장·유방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전문의이자 35만 부가 넘게 팔린 투자 입문서를 쓴 화제 인물인 그는 총선이 끝난 11일에야 가슴에 담아뒀던 얘기를 풀었다. 질문지 없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정치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거침없는 인물평을 쏟아냈다.
-환자를 다루다 민주당을 수술한 셈인데 차이가 많죠.
“우리가 환자를 수술할 때는요, 가능성이 있는 사람만 합니다. 가능성 없는 사람을 수술하는 것은 의료 남용이죠. 그런데 민주당에 들어와서 보니까 이거는 가망 없는 수술인 거예요. 회생 가능성이 안 보이는 거죠. 도저히 메스로 배를 못 가르겠어요. 심장 기능이 좋아야 마취를 하는 거고, 폐 기능이 좋아야 호흡기를 달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거는 숨도 안 쉬어. 뇌파만 조금 조금 살아 있고. 도대체 어느 부위를 손대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심각했네요.
“더 황당한 거는 환자 보호자가 많아 수술 동의서를 못 쓰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수술해라, 어떤 사람은 안 된다. 막 이러니까, 수술 동의서에 열 명이 넘는 보호자가 도장을 찍는 격이었습니다.”
-외부 인사들끼리는 마음이 잘 맞았나요.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7명의 외부 인사 중에는 ‘위장취업자’도 있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7명 중에 두 명이 원래 생각을 뒤집었어요. 한 명은 공심위 출범 일주일 후 자신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얘기를 하고, 또 한 분은 노골적으로 다른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두 명이 당 쪽으로 넘어가면 아무것도 못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박재승 위원장이 다소 독재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불과 5분 전까지 치열하게 반대하던 사람들이 방송 카메라 앞에서는 그러지 못하더라고요.”
-정치인들과 소통에 어려움은 없던가요.
“정치 언어라는 것은 4차원 말, 외계인 말이에요. 암호 해독기가 없으면 해독이 안 돼. 예를 들어, 내가 ‘이 기자님 좋아’라고 하면 좋아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게 때로는 경멸하는 것일 수도 있는 거예요. ‘나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라고 말하면 정말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너 이렇게 하면 죽어’ 이런 뜻이더란 말입니다.”
-선거 결과를 80석 내외로 예상하셨는데 딱 맞았네요.
“80석 플러스 마이너스 서너 석으로 예상했는데 적중했어요.”
-우연의 일치인가요.
“면접을 보면 느낌이 와요. 다들 이용희 의원을 떨어뜨리면 충북 벨트가 무너진다고 했지만 결과는 전혀 아니었지 않습니까. 우리는 충북 공천자들의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정도까지 예상하진 못했지만요.”(충북 8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6석을 확보했다.)
-중진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민주화 세력의 과거 훈장은 훈장대로 유효기한이 지났고, 개발세력의 전과는 전과대로 소멸됐다고 봅니다. 두 세력이 이제 공히 같은 출발점에 서서 누가 뭘 잘할 수 있느냐는 잣대에 의해 평등하게 평가받는 시대가 열렸다고 봐요. 김근태 의원이 예전에 ‘민주화운동이라는 낡은 훈장을 떼겠다’고 말했는데 진작에 뗐어야 했던 걸 계속 달고 다닌 게 문제죠.”
-김근태 의원도 낙선했죠.
“개인적으로 현재의 민주당을 상징하는 한 인물을 꼽으라면 바로 김 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김 의원이 낙선한 것은 민주당이 그동안 전면으로 내세웠던 가치를 바꿀 때가 왔다는 중요한 신호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새로운 발전론 같은 게 필요하겠군요.
“이번 총선 개표 방송을 보면서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하던 새마을운동 노래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한나라당은 옛날에 잘하던 경제 살리기를 특기로 내세운 것 아닙니까. 복고로 돌아가서요. 그런데 내가 공심위원이었지만, 민주당은 국민을 어떻게, 뭘 잘살게 해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공심위도 한계가 있었죠.
“공심위가 출발할 때 수도권에 당선 가능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공심위의 힘만으로는 역전시킬 수 없죠. 공심위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뿐 장작을 때는 것은 당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안 할 말로 20개 지역구를 전략지역으로 묶어놨으면 유력 인사 20명은 데려와야 할 텐데 당 지도부는 2명도 안 데려왔습니다. 인재영입위원회가 있다는 사실을 공천 끝날 때 알았습니다.”
-인력 자원이 부족하다던데.
“정치 하는 사람들이 비겁한 거죠. 나는 실망이 큽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권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총리·장관은 몇 명이며 자치단체장부터 검찰총장·국세청장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이 정권 바뀌었다고, 지지율이 낮다고 몸 사리고 눈치나 보고. 나는 이 나라를 한때 이끌었던 사람들이 비겁하고 치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인제 의원처럼 공천에서 배제된 사람 중 당선된 사람들도 있는데요.
“이 의원 같은 경우는 민주당에서 당선됐다면 오히려 부끄러운 결과였다고 봅니다. 옛 민주당파 공심위원들도 공천 배제에 찬성했습니다. 이 의원이 당선된 건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정치의 희화화 내지 코믹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복당 의사를 밝혔습니다만.
“민주당이 절대로 받아들여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박 전 실장이 유권자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그것은 정치인으로서 인정받은 것이지 민주당원으로서 인정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번 공천 과정의 배제 원칙은 공당인 민주당이 ‘이러이러한 사람은 당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입니다.”
-김홍업씨의 낙선은 어떻게 보나요.
“DJ의 흔적을 민주당으로부터 지우려는 의도가 공심위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원칙에 맞지 않았던 겁니다. 일부는 ‘북풍’ 때문에 안 됐다고들 하던데, 낙선의 첫째 이유를 나는 개인 비리라고 봅니다. 둘째는 DJ의 아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국회의원이 될 수는 없다는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이죠.”
-공천 심사하면서 좋게 기억되는 정치인도 있나요.
“김효석 의원요. 호남 출신 유력 정치인들에게 서울 출마 의사를 물어봤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김 의원은 ‘정치적으로는 죽음이나 당의 명령이면 따르겠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순간 ‘김효석’이라는 이름 석 자가 ‘이호성’만큼이나 인상적으로 남더라고요.”
-분위기가 험악했던 경우도 있었나요.
“강기정 의원과는 거의 싸우다시피 했죠. ‘지역구에 8명이나 도전했는데 얼마나 소홀히 했기에 현역 의원을 이렇게 얕보느냐’고 따졌죠. 하지만 강 의원은 물러서지 않더라고요. 결국은 당선까지 됐지 않습니까.”
-신청자들의 청탁이 많았습니까.
“후보가 직접 안동의 병원까지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내가 일요일에 진료하러 내려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광주에서 4시간을 운전해 왔더라고요. 오전 6시30분에 자기소개서 들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내가 없을 때는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까지 찾아갔다고 합니다. 심지어 나의 학교 은사를 통해서도 청탁이 들어오더군요. 내가 장관 출신 인사에게 90도로 인사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권력이라는 게 무섭더라고요.”
-공천심사 기준은 어떻게 정했나요.
“민주당이 부정적인 모습을 씻는 방법은 스스로 머리를 찧어 이마에 피를 흘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자는 ‘한나라당은 사람이 많아 그보다 더한 기준을 세워도 되지만 민주당은 안 된다’고 말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죠. 죽어가는 환자일수록 차라리 썩은 다리를 도려내는 게 낫다. 나중에 두발로 못 걷는 한이 있어도 잘라낼 건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인사를 배제하겠다는 고려는 없었나요.
“그런 고려를 전혀 안 하고 기준을 세울 수는 없겠죠. 최소한 ‘이러이러한 상징적인 인사들은 배제된다’는 원칙으로 기준을 세웠는데 그 기준에 의해 다른 인사들이 안타깝게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고요.”
-예를 들면 어떤 후보인가요.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같은 경우라고 볼 수 있죠. 박재승 위원장이 비리 전력자들에 대한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정말 억울하다고 인정한 딱 한 사람이 이 전 장관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분들은 언급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칭찬했다 곤경에 처하셨다지요.
“식사 중에 ‘난 박 전 대표가 괜찮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왜 힘을 가졌나. 다른 정치인들에게 없는 일관성과 원칙 아니냐’고 말했더니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난 자유인입니다. 정파적 색깔이 없는 사람이에요. 물론 박 전 대표의 우익적 발언이나 경직된 사고를 접하면 답답하죠. 그런데 정치인은 말 바꾸기, 카멜레온, 권모술수의 인식이 강하잖아요. 박 전 대표가 나름대로 멋있더라니까요.”
-저작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 소재를 제공한 인기 드라마 뉴하트를 보신 소감은.
“솔직히 몇 번 안 봤습니다. 드라마화하는 과정의 왜곡현상이 보기 불편하더라고요. 나는 드라마의 속성을 잘 압니다.”
-기왕 만난 김에 주식 투자 비법에 대해 한마디해주세요.
“투자에 관해 짧은 말로 설명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잘못 받아들이면 오히려 독이 되거든요. 소중한 자산을 절대로 즉흥적인 감정에 휩싸이거나 시류에 편승해 투자하지 마십시오. 건강한 마인드로 며느리를 고르는 마음으로, 백년해로하는 마음으로 주식이나 펀드를 고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joins 이종찬
-환자를 다루다 민주당을 수술한 셈인데 차이가 많죠.
“우리가 환자를 수술할 때는요, 가능성이 있는 사람만 합니다. 가능성 없는 사람을 수술하는 것은 의료 남용이죠. 그런데 민주당에 들어와서 보니까 이거는 가망 없는 수술인 거예요. 회생 가능성이 안 보이는 거죠. 도저히 메스로 배를 못 가르겠어요. 심장 기능이 좋아야 마취를 하는 거고, 폐 기능이 좋아야 호흡기를 달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거는 숨도 안 쉬어. 뇌파만 조금 조금 살아 있고. 도대체 어느 부위를 손대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심각했네요.
“더 황당한 거는 환자 보호자가 많아 수술 동의서를 못 쓰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수술해라, 어떤 사람은 안 된다. 막 이러니까, 수술 동의서에 열 명이 넘는 보호자가 도장을 찍는 격이었습니다.”
-외부 인사들끼리는 마음이 잘 맞았나요.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7명의 외부 인사 중에는 ‘위장취업자’도 있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7명 중에 두 명이 원래 생각을 뒤집었어요. 한 명은 공심위 출범 일주일 후 자신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얘기를 하고, 또 한 분은 노골적으로 다른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두 명이 당 쪽으로 넘어가면 아무것도 못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박재승 위원장이 다소 독재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불과 5분 전까지 치열하게 반대하던 사람들이 방송 카메라 앞에서는 그러지 못하더라고요.”
-정치인들과 소통에 어려움은 없던가요.
“정치 언어라는 것은 4차원 말, 외계인 말이에요. 암호 해독기가 없으면 해독이 안 돼. 예를 들어, 내가 ‘이 기자님 좋아’라고 하면 좋아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게 때로는 경멸하는 것일 수도 있는 거예요. ‘나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라고 말하면 정말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너 이렇게 하면 죽어’ 이런 뜻이더란 말입니다.”
-선거 결과를 80석 내외로 예상하셨는데 딱 맞았네요.
“80석 플러스 마이너스 서너 석으로 예상했는데 적중했어요.”
-우연의 일치인가요.
“면접을 보면 느낌이 와요. 다들 이용희 의원을 떨어뜨리면 충북 벨트가 무너진다고 했지만 결과는 전혀 아니었지 않습니까. 우리는 충북 공천자들의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정도까지 예상하진 못했지만요.”(충북 8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6석을 확보했다.)
-중진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민주화 세력의 과거 훈장은 훈장대로 유효기한이 지났고, 개발세력의 전과는 전과대로 소멸됐다고 봅니다. 두 세력이 이제 공히 같은 출발점에 서서 누가 뭘 잘할 수 있느냐는 잣대에 의해 평등하게 평가받는 시대가 열렸다고 봐요. 김근태 의원이 예전에 ‘민주화운동이라는 낡은 훈장을 떼겠다’고 말했는데 진작에 뗐어야 했던 걸 계속 달고 다닌 게 문제죠.”
-김근태 의원도 낙선했죠.
“개인적으로 현재의 민주당을 상징하는 한 인물을 꼽으라면 바로 김 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김 의원이 낙선한 것은 민주당이 그동안 전면으로 내세웠던 가치를 바꿀 때가 왔다는 중요한 신호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새로운 발전론 같은 게 필요하겠군요.
“이번 총선 개표 방송을 보면서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하던 새마을운동 노래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한나라당은 옛날에 잘하던 경제 살리기를 특기로 내세운 것 아닙니까. 복고로 돌아가서요. 그런데 내가 공심위원이었지만, 민주당은 국민을 어떻게, 뭘 잘살게 해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공심위도 한계가 있었죠.
“공심위가 출발할 때 수도권에 당선 가능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공심위의 힘만으로는 역전시킬 수 없죠. 공심위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뿐 장작을 때는 것은 당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안 할 말로 20개 지역구를 전략지역으로 묶어놨으면 유력 인사 20명은 데려와야 할 텐데 당 지도부는 2명도 안 데려왔습니다. 인재영입위원회가 있다는 사실을 공천 끝날 때 알았습니다.”
-인력 자원이 부족하다던데.
“정치 하는 사람들이 비겁한 거죠. 나는 실망이 큽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권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총리·장관은 몇 명이며 자치단체장부터 검찰총장·국세청장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이 정권 바뀌었다고, 지지율이 낮다고 몸 사리고 눈치나 보고. 나는 이 나라를 한때 이끌었던 사람들이 비겁하고 치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인제 의원처럼 공천에서 배제된 사람 중 당선된 사람들도 있는데요.
“이 의원 같은 경우는 민주당에서 당선됐다면 오히려 부끄러운 결과였다고 봅니다. 옛 민주당파 공심위원들도 공천 배제에 찬성했습니다. 이 의원이 당선된 건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정치의 희화화 내지 코믹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복당 의사를 밝혔습니다만.
“민주당이 절대로 받아들여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박 전 실장이 유권자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그것은 정치인으로서 인정받은 것이지 민주당원으로서 인정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번 공천 과정의 배제 원칙은 공당인 민주당이 ‘이러이러한 사람은 당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입니다.”
-김홍업씨의 낙선은 어떻게 보나요.
“DJ의 흔적을 민주당으로부터 지우려는 의도가 공심위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원칙에 맞지 않았던 겁니다. 일부는 ‘북풍’ 때문에 안 됐다고들 하던데, 낙선의 첫째 이유를 나는 개인 비리라고 봅니다. 둘째는 DJ의 아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국회의원이 될 수는 없다는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이죠.”
-공천 심사하면서 좋게 기억되는 정치인도 있나요.
“김효석 의원요. 호남 출신 유력 정치인들에게 서울 출마 의사를 물어봤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김 의원은 ‘정치적으로는 죽음이나 당의 명령이면 따르겠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순간 ‘김효석’이라는 이름 석 자가 ‘이호성’만큼이나 인상적으로 남더라고요.”
-분위기가 험악했던 경우도 있었나요.
“강기정 의원과는 거의 싸우다시피 했죠. ‘지역구에 8명이나 도전했는데 얼마나 소홀히 했기에 현역 의원을 이렇게 얕보느냐’고 따졌죠. 하지만 강 의원은 물러서지 않더라고요. 결국은 당선까지 됐지 않습니까.”
-신청자들의 청탁이 많았습니까.
“후보가 직접 안동의 병원까지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내가 일요일에 진료하러 내려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광주에서 4시간을 운전해 왔더라고요. 오전 6시30분에 자기소개서 들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내가 없을 때는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까지 찾아갔다고 합니다. 심지어 나의 학교 은사를 통해서도 청탁이 들어오더군요. 내가 장관 출신 인사에게 90도로 인사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권력이라는 게 무섭더라고요.”
-공천심사 기준은 어떻게 정했나요.
“민주당이 부정적인 모습을 씻는 방법은 스스로 머리를 찧어 이마에 피를 흘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자는 ‘한나라당은 사람이 많아 그보다 더한 기준을 세워도 되지만 민주당은 안 된다’고 말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죠. 죽어가는 환자일수록 차라리 썩은 다리를 도려내는 게 낫다. 나중에 두발로 못 걷는 한이 있어도 잘라낼 건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인사를 배제하겠다는 고려는 없었나요.
“그런 고려를 전혀 안 하고 기준을 세울 수는 없겠죠. 최소한 ‘이러이러한 상징적인 인사들은 배제된다’는 원칙으로 기준을 세웠는데 그 기준에 의해 다른 인사들이 안타깝게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고요.”
-예를 들면 어떤 후보인가요.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같은 경우라고 볼 수 있죠. 박재승 위원장이 비리 전력자들에 대한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정말 억울하다고 인정한 딱 한 사람이 이 전 장관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분들은 언급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칭찬했다 곤경에 처하셨다지요.
“식사 중에 ‘난 박 전 대표가 괜찮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왜 힘을 가졌나. 다른 정치인들에게 없는 일관성과 원칙 아니냐’고 말했더니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난 자유인입니다. 정파적 색깔이 없는 사람이에요. 물론 박 전 대표의 우익적 발언이나 경직된 사고를 접하면 답답하죠. 그런데 정치인은 말 바꾸기, 카멜레온, 권모술수의 인식이 강하잖아요. 박 전 대표가 나름대로 멋있더라니까요.”
-저작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 소재를 제공한 인기 드라마 뉴하트를 보신 소감은.
“솔직히 몇 번 안 봤습니다. 드라마화하는 과정의 왜곡현상이 보기 불편하더라고요. 나는 드라마의 속성을 잘 압니다.”
-기왕 만난 김에 주식 투자 비법에 대해 한마디해주세요.
“투자에 관해 짧은 말로 설명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잘못 받아들이면 오히려 독이 되거든요. 소중한 자산을 절대로 즉흥적인 감정에 휩싸이거나 시류에 편승해 투자하지 마십시오. 건강한 마인드로 며느리를 고르는 마음으로, 백년해로하는 마음으로 주식이나 펀드를 고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joins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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