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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집회라니…나라가 너무 치사하다”

지성유인식 2008. 5. 18. 00:09

[현장 3신 = 10시] 김장훈 “불법집회라니…나라가 너무 치사하다”

 

9시가 지나자 청계광장은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84년부터 활동해 온 헤비메탈 그룹 블랙홀이 무대에 올랐다. 기타연주자 3명과 드러머 1명으로 구성된 블랙홀이 무대에 오르자 시민들은 촛불을 흔들며 환호했다.

 

이들이 “나 홀로 외로이 잠못 이루네. 흐르는 눈물 가득 담겨 반짝이네” 라고 노래하자 일부 시민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감상에 잠겼다.

 

이어 배우 김부선씨가 무대에 오른 뒤 그룹 트랜스픽션이 등장했다. 청소년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트랜스픽션은 약 5분간 공연 후 “우리가 먹는 거 우리가 입속으로 들어가는 게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연설하고 퇴장했다.

 

트랜스픽션이 무대에서 내려간 후 사회자가 갑자기 “우리의 왕자님을 여기 모셨다” 고 말하자 하얀 운동화에 빨간 바지를 입은 가수 이승환이 갑자기 등장했다, 이씨는 당초 주최 쪽에서 집회 참여 예상자로 밝히지 않았던 만큼 시민들은 놀란 표정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지. 이제 후회 하지만… 그 고백을 등뒤로…”

 

이승환이 그의 히트곡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부르자 시민들은 모두 촛불을 높이 들었다. 어떤 시민들은 핸드폰을 열고 생중계로 친구들에게 현장을 찍어 보내주기도 했다.

 

이승환씨는 노래를 부른 뒤 “나는 가수 이승환이다. 사실 가수로서보다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내 이웃과 친구들, 가족들이 걱정돼 이 자리에 섰다. 나의 노래가 여러분에게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이씨는 앵콜송으로 ‘천일동안’을 부르고 무대를 내려갔다.

 

가수 김장훈도 무대에 올랐다. 하얀바지에 남색 자켓을 입은 김장훈은 자신의 히트곡 ‘난 남자다’를 부르며 첫 인사를 건넸다. 그가 노래를 부르던 도중 갑자기 그 특유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발차기’ 퍼포먼스를 선보이자 시민들은 열광했다.

 

그가 “아름답게 행사가 진행되니 기분이 좋다”고 인사를 하자 시민들은 “오빠, 잘생겼어요” 라고 화답했다. 김씨는 “잘 생겼다는 말보다 이 시간에 이런 가창력을 보여주는 가수가 흔치 않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씨는 이어 ‘소나기’,‘사노라면’을 열창했다. 특히 ‘사노라면’을 부를 때 시민들은 가사를 따라 부르며 ‘협상무효’라고 적힌 손팻말과 촛불을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어댔다.

 

김장훈씨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17일 “나라가 너무 치사하다. 어린 학생을 수업중에 겁 주고 민심을 거슬러 불법집회로 간주하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고 글을 남겼다.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김씨는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해 축가를 부르기도 했던 가수다.

 

집회 중간에 사회자가 국회 앞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 철회와 재협상’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다 쓰러진 시민 배성용씨가 오늘 문화제에 와있다고 소개하자 시민들은 “배성용씨, 힘내세요” 라고 외치며 그를 격려했다.

 

지금 무대 옆엔 가수 윤도현씨가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청소년들을 비롯한 시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가수들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2신 = 8시]청계광장에 4만여 촛불 ‘협상무효·고시철회’ 너울너울

 

17일 오후 7시. 해가 지며 어둑해지던 청계광장은 수만개의 촛불이 타오르며 밝아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나 주최 쪽은 현재 약 4만여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청계광장은 시민들이 빼곡히 들어 앉아 모전교 앞까지 시민들로 꽉 차 있다. 사회자가 “움직일 공간이 없다며 동선 확보를 해달라”고 호소까지 해야 할 정도다. 시민들은 집회 중간 “자리 정리” 자리 정리“를 외쳤다.

 

6시 50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자가 집회 시작을 알리자 시민들은 함성을 질렀다. 곧 이어 사회자가 “함성이 청와대까지 들리도록 더 크게 외치자”고 제안하자 시민들은 약 10초간 길게 함성을 더 질렀다.

 

오늘도 무대에 나와 ‘반 FTA’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는 시민들이 출연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에서 나온 어머니 6명은 엉성한 몸놀림으로 ‘광우병 반대춤’을 추어 시민들을 즐겁게 했다. 어머니들은 ‘고시철회’라고 쓰인 손팻말을 하얀 셔츠에 붙이고 춤을 추었다. 비록 노래 박자와 어머니들의 몸놀림은 어긋났지만 시민들과의 마음은 어긋나지 않았다. 시민들은 어머니들의 춤에 환호하며 들고 있던 촛불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공연 뒤에 윤숙자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47)은 “미친교육 미친소는 학부모가 확실히 때려 잡겠다. 이제는 미친교육 미친소 꼼짝하지 못할거다”고 연설했다.

 

7시 30분께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사는 주부 이선영씨와의 전화연결 시간이 있었다. 이선영씨는 얼마전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미국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광우병 소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한인이다.

 

이선영씨의 “안녕하세요” 하는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스피커를 통해 나오자 시민들은 “와”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윽고 이선영씨가 뭐라고 하는 지 하나라도 더 듣고 싶은 시민들은 숨을 죽였다. 갑자기 조용해진 청계광장에 이선영씨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씨는 “광우병 걸린 소를 먹고 10년 이상 지나야 인간광우병 증세가 나타난다. 미국소가 안전하다는 판단을 하기 위해선 최소 2013년이 지나야 한다”며 “미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광우병을 우려해 쇠고기 리콜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또 “여러분이 들고 있는 촛불은 진실을 밝히는 촛불이다. 미국에서도 마음으로 똑같은 촛불을 밝히고 있다”고 말하자 시민들은 다시 한번 함성을 질렀다.

 

오늘도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한 학생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뿐 아니라 ‘학교의 억압적인 환경’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송아무개(16·수원시)군은 “내 머리를 봐라. 빡빡이다. 군대처럼 머리를 깎아야 하는 이런 학교에 다니는데 어떻게 주체적인 학생이 나오겠냐”며 “아침 7시 10분에 등교해 밤 11시에 수업이 끝난다”고 토로했다. 시민들은 송군에게 위로의 박수를 보냈다. 송군은 답례로 비트박스 장기를 선보였다.

 

한 시민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하루 앞두고 의미 있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아무개(20·대림동)씨는 “5·18 때처럼 정부는 우리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한다. 여러분 우리가 범법자입니까” 라고 시민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시민들은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지금 일부 언론은 권력에 봉사하고 있는데 5·18 당시와 너무 닮았다” 고 덧붙였다.

 

8시께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무대에 올랐다. 강 의원은 오늘도 분홍색 두루마기를 입고 집회장에 나왔다. 시민들은 “강기갑! 강기갑!”을 외치며 마치 연예인을 만난 듯 환호했다. 강 의원은 “정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진짜 모르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정부가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재협상을 위해선 전국에서 이런 양심의 촛불들이 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의원이 갈라진 목소리로 5분여간 연설하고 무대를 내려가자 시민들은 다시 “강기갑! 강기갑!”을 외쳤다.

 

오늘 문화제에서도 시민들의 갖가지 소망이 담긴 손팻말들이 등장했다.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 “될때까지 모입시다. 미친소를 넘고 대운하를 넘어” “국민이 뿔났다”고 적힌 손팻말들이 눈에 띈다.

 

한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선 ‘미친소’를 주제로 시민 삼행시 짓기 행사가 열렸다. 시민들은 “미쳤냐. 친(진)짜 국민 우롱할래. 소는 명박이나 실컷 먹어라” 등의 시를 지어 상자에 담았다. 또 파이낸스빌딩 앞에선 ‘민주시민선언운동’이 벌어져 시민들이 작은 종이에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등의 소망을 담아 주최쪽에 전달했다.

 

오늘 교육청에선 장학사, 교사 등 9백여명이 집회 현장에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집회장 곳곳에선 수첩을 들고 집회참여자 등을 꼼꼼히 메모하는 교사들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확인됐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고 기자들이 다가가면 손사래를 치면서 자리를 피했다. 동아일보 사옥 근처에서 학생들의 집회 참여 모습을 지켜보던 서울 ㅅ 중학교 교감은 “아이들이 혹시 위험한 행동을 할까봐 걱정돼 나왔다. 아직은 학생들이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나이라 집회 참여는 섣부른 행동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교사는 교육청의 지시와 다르게 일선학교에서 무조건 학생들을 귀가하도록 지시한다고 털어 놓았다. 교사 김창수(43·영신고)씨는 “교육청에선 단순히 학생들의 안전지도만 지시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일선 학교에선 아예 집회참여 못하도록 조기귀가 조치를 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시민들은 “협상무효, 고시 철회” 등을 외치고 함성을 지르거나 촛불파도타기를 하며 집회를 즐기고 있다. 4만여 촛불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청계천의 밤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1신 = 6시50분] 청소년들 ‘한판’ 벌이며 청계광장으로 행진

 

열한번째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17일.

 

백여명의 청소년들은 오후 네시 반부터 서울 명동 도심에 미리 모였다. 인터넷모임 미친소닷넷 청소년 회원들은 7시 촛불문화제 참여 전에 명동 아바타 건물 앞에서 사전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준비해 온 발언과 율동을 서로 나누면서 집회를 진행했다. 자유발언 시간엔 집회 참여을 막는 일선 학교에 대한 주장과 불만이 쏟아졌다. 정책반대시민연대에서 활동하는 누리꾼 ‘쥐사냥꾼’은 “내 친구가 집회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학생주임 교사에게 귀를 잡힌 채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정말 화가 났다”고 말하며 경찰을 비판했다.

 

한 학생은 앞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집회를 할 것을 제안했다. 이상명(17)군은 “2차 청소년 행동의 날엔 청와대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써서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날리자”고 말해 청소년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어서 그는 집회 참여를 막는 교사들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군은 “얼마전 부모에게 학교로부터 학생들 귀가가 늦어지니 17일 집회 참여를 통제해 달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며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 다만 몸만 건강해라’고 격려해줬다”고 말했다.

 

이들 백여명의 미친소닷넷 회원들은 ‘미친소�미’라고 씌여진 검은색 반발티를 맞춰 입고 행진을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고정된 장소에서 촛불문화제만 진행됐는데 도심을 행진하는 집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친소닷넷 운영자 백성균(30)씨는 “청소년들은 더 역동적인 것을 원한다. 앉아서 공연만 보는 것보다 시민들에게 광우병 문제를 알리고 싶어 행진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오후 다섯시께부터 시작된 이들의 행진은 시민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명동 아바타 건물을 출발해 시너스 건물까지 가는 동안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청소년들의 행진을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명동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튀김요리를 하던 노점상도, 화장품 샘플을 나눠 주던 홍보인도 하던 일을 멈추고 이들의 행진에 관심을 보였다.

 

청소년들은 알록달록한 종이에 자신의 소망을 쓴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광우병 쇠고기, 너나 먹어 2MB”, “미친소를 청와대로”, “청소년도 국민이다”등의 구호를 외치면 지나가던 시민들은 “미친소”라고 맞장구를 쳐주는 진풍경도 볼 수 있었다. 진주에서 서울 여행을 온 제아무개(49·진주시)씨는 “자신없어 하는 어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이들이 대신 해주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말했다.

 

이들 백여명의 청소년들은 명동에서 출발해 을지로 1가를 지나 7시부터 예고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청계광장으로 향했다.

 

일선 학교에서 촛불문화제 참여을 통제한 가운데 오늘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자신의 자발적인 참여 자체를 뿌듯해 했다. 유관순 복장을 연상시키는 한복을 입은 임희영(17·ㅅ고등학교)양은 “학생들이 학생 권리를 주장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어른들이 우리를 막는 건 우리가 무서워서 그런 듯 하다”고 말했다.

 

특히 면목고에 다니는 이상명(17)군은 집으로 보내진 학교 가정통신문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학교에 항의했다. 가정통신문에는 ‘심야에는 학생들이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도심 집회에 참여하지 않고 일찍 귀가하도록 가정에서 확인하고 지도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라고 씌여 있었다.

 

오후 6시 50분. 서울 청계광장에서 본격적인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집회가 열리기 전부터 청계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한 시민들은 현재 약 만오천여명 정도이다. 시민들은 동아일보 사옥 앞에 설치된 대형무대를 중심으로 빼곡하게 광장을 채우고 있다.

 

오늘 문화제에도 청소년들이 가장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청소년 조기귀가’를 독려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지현(16·일산시)양은 “학교에서 막는다고 안 오면 지금까지 집회 참석한 게 모두 허당이다. 너무 우리를 부질없다고만 하지 말고 어른들이 우리를 도와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들도 곳곳에 눈에 띈다. 이보라(40·청량리동)씨는 네 살, 아홉 살 짜리 자녀들과 함께 나왔다. 이씨는 “아이들이 오랫동안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데 어른들이 힘을주고 싶어 나왔다. 우리 아이에게도 공동체 문화를 체험시키고 싶어 함께 나왔다”고 설명했다.

 

오늘은 가수 윤도현, 김장훈씨 등의 연예인들이 참여한다고 주최 쪽은 밝혔다.

 

 

<한겨레> 취재영상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현장 4신= 11시] 주최쪽 “최종 6만명…22일·24일 다시 모이자”
10시. 160센티미터의 작은 체구의 여고생이 무대에 올라 대국민 호소문을 낭독하자 청계광장은 숙연해졌다. 노래 ‘아침이슬’이 나지막히 깔리는 가운데 이연우(16·국립국악고)양은 호소문을 읽었다.

“오늘로서 촛불을 든지 보름이 지났다.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우리가 바라는 건 건강과 안전이다. 미국 국민들도 먹지 않는 위험한 쇠고기를 우리에게 먹이려 하지 마십시오.”

10시30분. 윤도현을 비롯한 ‘YB밴드’ 맴버들이 무대에 오르자 청계광장은 ‘락 콘서트장’으로 바뀌었다. 윤씨가 ‘살기 위하여’란 노래를 시작으로 그의 히트곡을 연달아 부르자 시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은 지난 보름간 집회의 시작과 끝에 윤도현의 <아리랑>을 불렀다. 윤씨는 이 모습을 어떻게 봤을까? 그가 입을 열었다.

“너무 아름답다. 6년전에 미선·효순이 추모하는 공연 후에 오랜만에 촛불집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솔직히 10대 친구들이 이렇게 와서 하는 걸 보고 창피했다.”

시민들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의 입을 바라보았다. 윤씨는 할 이야기가 많았는지, 무대에 올랐던 다른 가수들보다 길게 이야기를 했다.

윤씨는 “어차피 욕 먹을 각오하고 나왔다. 우리가 태어난 곳이 바로 이런 무대다. 계속 이런 무대에 서고 싶다. 텔레비전을 보며 우리가 부른 아리랑이 나오는 것을 보고 동참하고 싶었다. 여러분 아이러브유”라고 말했다.

이어 조용한 기타 연주 음악이 흐르더니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

시민들은 그동안 자주 불러왔던 ‘아리랑’을 윤도현이 직접 부르자 모두 촛불을 높이 들었다.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눈에 눈물이 고인 시민, “창피해 하지 않아도 돼요” 라고 외치는 시민, 손팻말과 촛불을 들고 이리저리 흔드는 시민, 갖고 있던 작은 태극기를 흔드는 시민, 모두들 제각각의 표정과 몸짓으로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 윤씨는 ‘아리랑’을 부른 후 시민들의 앵콜 요청에 ‘돌고 돌고’ 란 노래를 더 열창한 후 무대를 내려갔다.


오늘은 10대 학생들 뿐 아니라 20대 학생들의 모습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시간이 갈수록 20~30대 참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세훈(21·서울대 국문학과)씨는 “서울대 축제에서 원더걸스가 공연하는 날 서울대에선 ‘광우병 대책위’가 꾸려졌다. 이제 20대들도 많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단위로 나온 참가자들도 많았다. 안정희(40·고양시)씨는 아이들 셋과 함께 아예 돗자리까지 깔고 소풍나온 것처럼 문화제를 즐겼다. 안씨는 “아이들 맡길 데도 없고 문화제는 나와야하고, 그래서 이렇게 준비해 나왔다”고 말했다. 안씨 옆에는 세명의 아이들이 그림장에 낙서를 하며 청계천의 밤바람을 즐겼다. 안씨와 함께 나온 노신혜(13·중산동)양은 “요즘 쇠고기 급식 나오는 날은 친구들이 모두 밥 안먹고 컵라면 사먹거나 도시락을 싸 온다”고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옆에 있던 안씨는 “아이들이 걱정되서라도 앞으로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주말마다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YB밴드의 공연 후 시민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 <헌법 제1조>와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를 불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사를 따라 부르며 아래 위로 폴짝폴짝 뛰었다. 시민들이 들고 있던 촛불들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자원봉사자 김광일씨는 “오늘 여기 모인 우리는 영웅이다. 이명박은 쪽박이다”고 말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오늘 촛불문화제는 밤 11시께 끝났다.

문화제 뒤 시민들은 직접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웠다. 몇몇 시민은 열쇠같은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바닥에 떨어진 촛농을 직접 긁어내는 모습까지 보였다. <조선일보>가 얼마전 바닥에 떨어져 굳어버린 촛농을 사진으로 소개하며, 촛불문화제 참석자들을 비판한 기사를 시민들이 의식한 탓이다.

오늘 집회에서도 시민들과 경찰 사이의 큰 마찰은 없었다. 경찰은 30개 중대 3천여명을 배치해 청계광장 주변을 통제했다. 경찰은 오늘 문화제에 1만여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으나 주최 쪽은 “최종 6만여명이 참여해 지금까지 문화제 중 참가 인원이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주최 쪽은 “경찰이 집회 참여인원을 축소 발표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주최 쪽은 앞으로 문화제가 계속 될 것을 알렸다. 사회를 맡은 최광기씨는 “25일은 정부가 고시를 알린 날이다. 22일과 24일 우리 다시 모이자”고 제안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영상 은지희 피디 eunpd@hani.co.kr

[박스] 이연우 학생이 읽은 대국민 호소문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에 반대하는 청소년과 네티즌이 국민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오늘로 이곳에서 촛불을 든 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저와 같은 학생들, 우리 엄마 아빠들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이곳에서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건강과 안전입니다. 미국 국민들도 먹지 않는 위험한 쇠고기를 우리 국민에게 먹이려 하지 마십시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거짓말도,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는 궁색한 변명도 더 이상 하지 마십시오. 국민의 건강과 주권을 포기하고 얻을 국익은 없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담보로 한 죽음의 도박 이제 멈추십시오.

우리 청소년들은 우리가 살아갈 이 사회가 교과서에 나오듯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나라의 정부가 국민을 속이면서 강대국에 굽실거리는 정부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국민을 아끼고 위하는 정부, 당당하게 주권을 행사하는 정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국민 여러분,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저희들의 손을 함께 잡아 주십시오. 조금만 더 힘을 내고, 서로의 마음을 모아 촛불을 밝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