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망상 대한민국이여, 현실을 직시하라!

지성유인식 2007. 8. 7. 17:45
 

환자는 정확한 진단에 의해 치료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 국민을 좀더 정확히 진단하므로서

그야말로 업그레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데 가슴에 쏙 들어오는 글이 있어 전재해 봅니다.

원제는 “망상 대한민국이여, 헛꿈에서 깨어나라!”인데 좀 수정했습니다.


62년을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노 다니엘 박사가 진단한 우리

(출처: 조인스 특별기획

  글·노 다니엘_월간중앙 객원편집위원·정치경제학 박사 [2007년 08월호])


■ 한류 드라마 등에 망상 투영… 남 따라 하는 관행으로 확산일로

■ 도전적 생각·행동으로 표출… 소송 범람의 시대 열어

■ 나는 왜 가난하고 무기력할까? 보약 권하는 사회 초래

■ 폼생폼사! 자존심에 죽고 살았던 체로키 인디언 기질과 흡사

■ 망상적 대응으로 이미지 추락 가속화… 국제 ‘왕따’ 우려해야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학창시절 운동장에 모여 눈부신 8월의 태양에 눈을 찡그리며 부르던 <광복절 노래>의 2절 한 부분이다. 조선 왕조에 이어 40여 년에 걸친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 1945년 광복을 맞은 한국인들은 평화롭고 안락한 근대국가를 건설하기보다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을 꿈꿨다. 거창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62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은 어떠한 나라인가?


1. 프롤로그

- 김치에 어린 이미지들… 망상 가설의 시발점


잘 지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들러보는 공항 면세점에서는 최근 이례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김치를 사고파는 장면이다.


여러 나라의 공항을 보았지만 하나의 반찬을 주 상품으로 파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유럽의 공항에서 간혹 치즈를 특산품 코너에서 팔기는 하지만 오직 구석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은 김치 팔기에 열중이다. 김치는 반찬의 경지를 넘어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 셈이다. 국내에서 김치축제가 이어지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2시간 남짓 비행해 일본에 닿으면 김치에 대한 생각은 많이 바뀐다. 인천에서 김치를 파는 사람들이 세련된 복장과 용모의 면세점 직원이라면 일본에서 김치를 파는 대부분의 사람은 불법체류자들이기 때문이다.


일본 법무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 불법체류하는 사람들의 3대 국적 가운데 한국이 으뜸이고, 그 뒤를 이어 중국과 필리핀이 차지한다. 이 세 나라의 불법체류자들은 대개는 술집과 음식점에 종사하는 여성이다. 이 순간에도 일본에는 5만 명에 가까운 한국인이 불법체류하며 술과 김치와 몸을 팔고 있다. 식민 지배 하에 있던 시절에도 이러한 일은 없었다.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빛내자”고 노래하며 다짐하던 1945년 광복의 날의 결의와 포부는 62년이 지난 오늘 과연 현실로 바뀌고 있는가? 한국인이 수시로 내세우는 민족 자존이란 가끔 해보는 말에 불과한 것인가? 프라이드가 그토록 강해 ‘독도는 우리 땅’을 강조하기 위해 분신자살도 마다하지 않은 한국인들은 과연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


일본의 많은 사람이 한국의 김치에 매료되고 <대장금>을 비롯한 한류 드라마에 심취하고 있다. 대중문화 분야에서 그만큼 한국의 위상은 높아졌다.


진정한 우리 모습 되돌아보기


그러나 일본·중국·미국 등 한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나라들에서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가·관료·학자·전문가 등 소위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 ·기존의 여러 특권계층) 가운데는 한국을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 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대사로 근무한 어느 미국 외교관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인 일본 외교관을 만나게 됐다. 그때 그는 “한국에서 살아 보니 3년도 지옥이었는데 당신들은 용케 36년이나 지배했다”고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인으로서 피가 역류하는 모멸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충격을 지나 오래 관찰해 보니 그 미국 외교관의 관점을 많은 외국인이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글로벌 시대라는 광명천지에서 자신들의 속내를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 흑인을 ‘깜둥이’라고 서슴지 않고 부르고, “베트남 처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대로에 걸 수 있는 한국인의 과감무쌍함이 있었다면, 그들은 ‘솔직히 한국은 싫다’고 여기저기서 말했을지 모른다.


자신의 가치와 위상에 대해 타인의 관점과 자기의 관점이 한국처럼 극명하게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외형적이고 정량적인 면에서 한국은 커다란 성장을 이뤘지만 그에 걸맞은 존경과 신뢰는 확보하지 못한 채 광복 62주년을 맞고 있다.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이 국내에서 스스럼없이 사용되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한국인은 세계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릇된 믿음이라면 한국인들은 망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과연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진정한 위상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해관계에 있는 이웃 나라들의 엘리트나 지식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한국의 진정한 모습은 어떠한가?


나는 한국이라는 민족공동체의 오늘을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망상(delusion)’이라는 개념을 빌려 그려 보고자 한다. 이는 과감한 가설이자 도전적 제안이다. 진실에 다가가는 담론을 만들어 보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하는 ‘악마의 논리(devil’s advocate)’다.


나는 이 글에서 한국인의 집단망상이 한국을 세계사회에서 차츰 소외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자 한다. 한국인의 망상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만성적 증상이다. 따라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이 갑자기 보따리를 싸서 떠나거나 누군가가 한국과의 관계를 끊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망상들이 광범위하고 체계적이며, 이로 인해 한국인들이 향유하고자 하는 기회에 대한 문이 여기저기서 소리 없이 닫히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2. ‘뚜껑 열린’ 사람들

- 점차 거칠어지는 언어… 파라노이아(편집광)와 흡사


한국사회를 그린 문학작품을 읽거나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면 한국에는 유난히 병든 사람이 많다. 신체장애가 전혀 없는 사람도 마음에 안 들면 ‘저런 병신’이 되고 만다. 가족 사이에서도 ‘미친놈’이라고 불리기 일쑤다. 마치 햄릿이 친구 호레이쇼에게 “너의 철학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많다”고 말하듯, 자식을 사랑하는 한국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세상에 믿을 놈은 하나도 없단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부모·형제들은 이미 우리 사회를 망상의 사회로 규정한 터다.


언어가 거칠어지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은 이 부문에서 첨단을 걷는 듯하다. 예컨대 화가 난다는 의미로 “뚜껑이 열렸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다. 토머스 해리스의 소설 <양들의 침묵>에는 인간의 두개골을 전기톱으로 절단해 문자 그대로 사람의 뚜껑을 여는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옛 선인들이 보았다면 기겁했을 것이다. 두개골이 열리면 혼이 빠져 나와 결국 정신의 일체성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비슷한 사상이 있었던지 ‘out of mind’란 정신이 나간 것, 즉 미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서 가장 무서운 광증 중 하나인 편집광은 영어로 ‘파라노이아(paranoia)’인데, 이것이야말로 뚜껑이 열려 정신(noia=mind)이 나간 것(para=beside)이다. 파라노이아의 최신 용어가 바로 망상(delusion)이다. 망상에 대한 연구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칼 야스퍼스는 망상의 세 조건으로 터무니없는 내용을 주관적으로 확신하는 것, 다른 사람이 그 확신을 바꿀 수 없는 것, 그리고 그 내용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꼽았다. 요컨대 망상은 정신장애 중에서 지각과 판단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3. 대중문화가 망상장애 전파한다

- 한류 드라마 등에 투영… 남 따라 하는 관행으로 확산일로


망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주위의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꿈 깨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한둘이던가? 그런데 이 망상이 병적으로 심해 정상적 사고나 생활에 장애가 될 정도라면 ‘망상장애(delusional disorder)’라고 할 수 있다. 망상장애는 그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어려운 의학서적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우리 주변의 친숙한 TV 드라마가 망상장애의 여러 증상을 잘 보여준다.



한류의 최고봉이라는 드라마 <대장금>에서는 장금이라는 여성의 천신만고의 노력과 승리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춘다. 하지만 장금이의 승리는 자연의 거대한 도전이나 인간의 한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끊임없이 제기하는 음모와 시비의 극복이다.


드라마 <대장금>은 최 상궁 일파의 망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섭고 어두운 세상이다. 최 상궁이 대표하는 파라노이아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사랑받은 많은 역사 드라마에 반드시 등장한다. 결국 한국의 역사 드라마는 망상장애의 시청각 보조물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해설하는 망상장애는 현대물에도 등장한다. 최근 인기를 끈 <내 남자의 여자>는 프로이트의 정신의학적 기제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화영(김희애 분)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와 세치 혀로 남성이라는 다른 인간을 조종하고 소유할 수 있다는 망상을 잘 구현한다.


또 다른 드라마 <내 곁에 있어>를 보면 나이 든 산부인과 원장 배정자(정혜선 분)는 금전과 짱구가 창출하는 권력은 영원하다는 망상을 굳세게 붙들고 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그녀의 편집광은 한국을 지배해온 정치 엘리트들의 생활신조다.


한류라는 거대한 흐름을 구성하는 이들 드라마 속에서는 과대망상·관계망상·신체망상·애정망상 등 다양한 망상증후군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보너스로 보여주는 것이 망상적 생활의 풍경이다.


한국인들은 소외를 두려워해 모두 ‘남이 하는 대로’ 한다. 일상생활에서 ‘갑갑한 인간’을 상대했거나 해서 뚜껑이 열리는 사람은 술을 마셔야 한다. 이때 가진 자는 위스키, 못 가진 자는 소주, 그리고 일부 겉멋이 든 사람은 와인을 마신다는 공식이 들어 있다.


소주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포장마차다. 이 포장마차는 폭력을 행사해도 무방한 해방구다. 그 폭력은 조직폭력배나 깡패에 의해 자행되기 일쑤다.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는 엘리트들은 대개 검은 승용차를 타고 주로 전화로 세상을 좌우하는 사안을 처리한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에서 똑똑하다는 사람은 서로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실정이다.


4. 한국인의 망상체계

- 관계망상·박해망상·질투망상… 여러 망상 복합적으로 얽혀


집집마다 문화가 다르다. 그래서 한 집 식구들의 언행은 다른 집 사람들과 다르다. 이는 국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평균적 언행, 즉 대외 행동은 우리와 지리적·인종적으로 가장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과 다르다. 국가 사회의 가치관·문화·풍토는 가정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나 가정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의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무엇을 강조하는가? 압도적으로 ‘밖에 나가서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다. 미국의 부모는 대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 보라’고 한다. 중국의 부모라면 ‘돈을 벌어라’일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부모는 무어라고 할까? 내가 알기로는 ‘나가서 남에게 지지 마라’가 정답이다. 이는 자식의 어린 시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자식이 매를 맞고 들어오면 재벌 총수라는 신분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가야 하고, 50대의 자식이 국회의원선거에 나간다면 80대의 부모가 재산을 모두 들어부을 수 있다. 남의 애들한테 기죽는 것은 ‘때려죽여도’ 못 보기 때문이다.


엇갈리는 미소망상과 과대망상


정신질환으로서의 망상은 개인을 분석의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한 사회 전체에 망상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정신의학자는 없는 듯하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한국인의 망상’이란 과학적 용어가 아니라 수사적 용어다. 즉,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질환 이전의 ‘망상기분’ 정도의 특징을 원용해 한국사회를 비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전혀 엉뚱한 시도가 아니다. 한 사회의 역사·문화·정치·경제적 배경에 따라 발병하는 망상장애의 분포가 다르다는 연구는 얼마든지 있다.


한 예로 후지모리 에이스케라는 일본 정신과 의사에 의하면 한국의 경우 식민 지배 기간에는 빈곤망상환자가 많았는데 해방 후에는 과대망상환자가 급증했다고 한다. 중국이나 대만에는 얼어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특이한 냉동망상환자들이 있다. 같은 분열증 환자라고 해도 프랑스 환자는 말이 많고 독일 환자는 말이 적다.


내가 조사한 바를 망상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면 ‘한국인의 운명은 기구하다’(피해망상), ‘한국은 보잘것없다’(미소망상), 그리고 ‘한국은 대단하다’(과대망상)는 생각이 혼재하는 복합심리다. 의학 문헌을 종합해 한국인들이 집단적으로 보이는 망상을 사회 전체 차원에서 세계관에 연결시켜 정리한다면 <표>와 같이 아홉 개의 망상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피해망상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어떠한 피해가 자신에게 끼쳐진다는 그릇된 믿음이다. 이러한 일반적 망상 안에서 그 피해를 끼치는 측과 받은 측에 따라 세분할 수 있다. 관계(關係)망상(자신의 언행을 반드시 다른 사람과 결부시키는 것)·박해(迫害)망상(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려고 한다)·질투(嫉妬)망상(배우자의 부정, 사랑이나 관심의 상실 등으로 타자를 질투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것이고, 그 외에 추적(追跡)망상(누군가 나를 쫓고 있다)·피찰(被察)망상(누군가 나를 관찰하고 있다)·피독(被毒)망상(누군가 나를 독살하려고 한다)·빙의(憑依)망상(신령이나 괴물이 나를 점령하고 있다)·호소(好訴)망상(다른 사람이 나를 법적으로 괴롭히니 법으로 싸워야 한다)·도해(盜害)망상(다른 사람들이 나의 물건을 훔치고 있다) 등이다.


미소(微小)망상은 자신이 능력·재산·건강·지위·처지 등에서 작고 보잘것없다는 강박관념이다. 한국인에게 자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경향은 강하다. 심기(心氣)망상은 자신의 건강을 현실보다 약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 심기망상이 극에 달하면 자신을 부정하는 부정(否定)망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없다고 믿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곤궁하다고 믿는 빈곤(貧困)망상도 있다. 충분히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돈을 더 버는 데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흔히 본다. 무언가 잘못된 일에 대해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기는 죄책(罪責)망상도 있다. 잘못은 분명히 남편이 했는데 쩔쩔매고 사과하며 심지어 남편에게 맞기까지 하는 여인상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소망상은 개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차원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의식을 ‘엽전의식’이라고 부르는 것, 한국경제를 ‘접시물 경제’라고 부르는 것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광고물에 한국인이 아니라 서양인이 등장해야 무언가 제대로 된 광고를 보는 것 같은 심리도 이러한 미소망상의 한 버전이다.


미소망상에 반대 되는 현상으로 과대망상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이다. 현상을 과대하게 부풀려 현실로 믿는 대상은 여러 가지다. 우선 자신의 혈통이나 속성이 고귀하다고 믿는 혈통(血統)망상이 있다. 자신이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고 믿는 사람이나, 혈통에 관한 것이 아니라도 특정한 학교의 졸업생이나 특정한 국가고시에 붙은 사람은 고귀하다고 믿는 것이 이 망상이다. 한국에만 있는 특유한 직업인 ‘뚜쟁이’들은 이 혈통망상을 텃밭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는 자신이 위대한 예언자의 신탁을 받았거나 초월자에게 선택받았다고 확신하는 종교(宗敎)망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 이는 현재 전 세계에서 유난히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망상이라고 생각된다. 수많은 점쟁이와 무속인, 수많은 교회의 십자가, 수많은 사찰과 연등이 한국이라는 좁은 땅에서 붐빈다.


복수의 망상에 사로잡히기 일쑤


이 거대한 종교망상의 흐름 속에서 정치에 출마하는 사람이거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거나 자식을 일류대에 보내고 싶은 사람이거나 모두 일단 점쟁이의 말을 경청하는 경우가 흔하다. 인류 문명 사상 유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망상은 여타 정신질환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망상장애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정신의학자 앨리스테어 먼로(Alistair Munro)에 따르면 우선 망상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이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료 서비스를 가장 덜 받는 정신장애가 망상이다.


둘째로 망상은 그 환자를 내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조건에 따라 발병했다 정상으로 돌아갔다 하기를 반복 한다. 이 망상질환의 스위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켜졌다 꺼졌다 할 수 있고, 장기간 안 켜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셋째, 망상장애는 전체가 하나의 체계로 지각과 판단에 장애를 가져오는 것으로서 분화되는 것이 아니다.


즉, 나는 심기망상환자, 너는 혈통망상환자라는 식으로 전문화되는 것이 아니라 망상적 기질을 가진 사람은 대개 여러 가지 망상을 복수로 갖는다. 따라서 자신을 낮추는 미소망상과 높이는 과대망상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망상이 언행에서 표출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이러한 망상들이 병적 상태에 이른다면 ‘망상장애’가 되지만 그 전의 가벼운 상태라면 ‘망상기분’이라고 한다. 어떠한 형태로든 망상기분에서 자유로운 한국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 아닐까?


옛날 남산에 가면 소주잔을 들고 대통령선거를 주관했다가, 장관을 새로 임명했다가 미7함대를 발동시켰다가 하는 과대망상환자들이 종종 있었다. 이들의 과대망상은 지금도 여러 직업군의 많은 사람에 의해 면면히 지켜지고 있다.


5. 한국인의 피해망상과 행동

- 도전적 생각·행동으로 표출…소송 범람의 시대 열어


한국인들은 ‘아시아’라는 공동체에 자기도 모르는 엄청난 집착이 있다. 한국인의 입에서는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 아시아라는 말이 훨씬 빈번하게 나온다. 아시아라는 말이 들어가는 간판·상표·회사이름·단체이름은 부지기수다.


이 아시아라는 말에 대한 집착은 아마 어려서부터 ‘한반도의 지정학’에 관해 교육받는 데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중국이나 일본과 그리 사이가 좋지도 않으면서도 ‘한·중·일’(반드시 이 순서를 지키며)이라는 세 나라를 하나의 그룹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한마디로 관계망상이다.


이 관계망상과 더불어 박해망상도 가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이 한국을 괴롭혔다’는 명제는 한국에서 성장하면서 반복적으로 듣는 말이다. 이들 열강과 싸워 독립과 자존을 지켜오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질투망상을 형성했다. 우리가 비록 덩치는 작지만 ‘되놈’이나 ‘왜놈’들에게 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구 4,000만 명에서 뽑힌 한국의 축구·양궁·인라인 선수들이 되놈이나 왜놈들보다 앞서 나갈 때 한국인은 성적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만족을 느낀다.


이러한 망상은 국가경제나 국제정치에서도 구현된다. 한국이 일단 무엇을 한다면 그 이용자나 소비자의 실익과 같은 내부지향의 관점보다 아시아에서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 잠재적으로 지배한다. 이러한 시각의 연장에서 한국의 위정자는 한국이 ‘아시아 국제질서의 균형자’가 되기를 천명했다. 지금은 서울을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한창이다.


관계망상과 박해망상을 바닥에 깐 질투망상이 대외 행동의 심리적 기조를 이룰 때 상대는 바보가 아닌 이상 이를 느끼게 된다. 즉, 자신들은 가만히 있는데 한국이 도전해 온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도전적(aggressive)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말이 아니다. 한국인의 눈빛은 사납고 뭔가 시비를 걸어올 것이라고 느끼는 외국인이 많다. 실제로 길을 걸어가며 지나가는 행인의 눈에 초점을 맞추고 째려보는 한국인은 많다. 이러한 정서구조는 당연히 법적 소송을 양산하게 마련이다. 최근 한국이 소송 과잉 사회임을 지적하며 민사소송이 과거 10년간 10배 늘어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문제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주로 돈 관계를 다루는 민사보다 다른 사람을 처벌하라는 형사 소송에서 한국은 천국이다. 남을 고소하는 데는 ‘돈도 안 든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박해망상을 가진 한국인들은 남을 고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을 해하기 위해 위증과 무고도 서슴지 않는다. 일본의 한 통계를 보면 같은 인구수로 따져볼 때 한국의 위증죄는 일본의 240배, 무고죄는 4,000배를 넘는 것이었다.


DNA론이 관계망상의 정점


한국인의 이러한 심리구조와 행동문화는 대결적 상황을 만들기 쉽다. 한국인이 대결을 원해서가 아니라 대인관계의 설정 스타일에서 타인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1 대 1의 ‘대립각’을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면 밋밋하고 무개입적으로 끝날 수 있는 인간관계가 한국에서는 대개 진하게 해결을 보게 된다.


처음 본 사람도 마음에 드는 놈 아니면 안 드는 놈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나아가 상대방의 가치와 자기를 비교하기 위해 교육 수준이나 수입 정도 등 개인적 호구조사를 한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연줄이 닿는 것이 있으면 금세 형님·아우·선배·후배의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한다. 이러한 한국인의 행동은 대부분의 외국인, 특히 교육받은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되고 피곤하다.


전후 한국을 오래 지배하며 ‘경제 기적’을 만든 군사정권의 한 기조는 친일주의였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라는 세 전역 군인이 한국을 지배하던 시기에 일본과 통하고 친해지는 것은 사회적 자산이었다. 좋든 싫든 한국인의 관계망상의 표적은 일본이었다.


이때 한·일 간 관계망상의 정점은 DNA론이었다. 즉, 한국인과 일본인은 세계에서 체질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의학계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한·일 관계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말이었다. 이 말이 맞든 틀리든 일본제 의약품과 화장품이 한국인에게 잘 듣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한마디로 일본은 입맛에 맞는 나라였다.


일본이 입맛에 맞는 나라라면 중국은 한국인에게 눈맛에 맞는 나라로 등장했다. 군사정권시대의 친일적 관계망상은 이제 민간정부의 시대에서는 친중주의 관계망상으로 대치되는 느낌이다.


친일적 관계망상에서 친중주의로…


언제부터인가 중국은 한국인이 가장 중요시하고 좋아하는 나라가 됐다. 중국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이 삼팔선을 넘어 침공한 것이 불과 50여 년 전이고, 부모들이 되놈 믿지 말라고 하던 것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음에도 말이다.


유학 하면 미국 하던 것이 엊그제인데 지금 최대 유학지는 중국이다. 중국의 각 주요 대학에는 한국유학생이 1,000명을 훨씬 넘어 최대 외국인 학생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한국식 ‘체계적 커닝’이 이제 중국의 대학들에도 자리 잡고 있다고 푸단(復旦)대학의 교수는 실소한다.


한국인의 열렬한 친중주의 속에서 또 다른 DNA론이 들린다. 중국의 어느 싱크탱크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중국 연구자는 중국인과 한국인은 ‘문화적 DNA’가 같다고 한다. 한자로 언어를 구사하는 한국인들이 중국인과 사고체계나 가치관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류 드라마가 중국인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거기에 내재한 감정구조나 심리적 갈등이 중국인에게 쉽게 이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화적으로 코드가 맞는 강대국 중국과 체질적으로 코드가 맞는 강대국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항상 두 개의 관계망상에 시달려온 셈이다. 이 두 나라에 대한 강박관념은 동경·반항·질투·원한 등 강렬한 감정이 복합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일본인은 한국인의 대표적 정서로 원한(怨恨)을 꼽으며,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에 대해서는 배타적 반항과 동시에 ‘응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의 반항을 중국·일본·러시아·미국 등이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6. 미소망상의 양상들

- 나는 왜 가난하고 무기력할까? 보약 권하는 사회 초래


신문사 특파원으로서 일본을 살짝 들여다본 어느 인사가 쓴 <일본은 없다>는 책은 제목의 충격성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더니 이 제목을 원용해 <한국은 없다>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비록 비유어이기는 하지만 ‘한국은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 10대’라는 표현을 거의 매일 쓰는 오늘날도 TV 드라마를 보면 한국은 뭔가 원칙이 없고 희망이 없어 포기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인물이 수시로 등장한다. 자신이 약하고 작고 따라서 존재가 없다는 병적 강박관념이 미소망상이다.


자신을 낮추고 부정하는 미소망상에는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빈곤망상이다. 자신의 재산을 포함해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인들이 한국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교과서나 책에서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가르치지만 사실 한국에는 세계유산도 없고 부존자원도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척박한 땅이라는 생각이 뿌리깊다. 이러한 생각은 나약한 포기보다 생존을 위한 억척같은 또순이의 마음으로 연결된다.


옛날의 또순이는 자식의 출세를 통해 팔자를 고치겠다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열심히 일만 했지만, 요즈음 글로벌 시대의 또순이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하니 해외여행을 다니며 물건을 사들이고, 필요하다면 항공기나 호텔의 소모품을 편하게 빌려온다. 한국인들에게 이 척박한 세상은 투쟁해야 살 수 있는 정글이다. 이 정글에서 생존과 번영을 지켜주는 것은 법이나 상식이라는 제3자적 장치보다 나의 손, 나의 머리다. 억울하면 출세해야 한다.


이러한 나라에서는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보다 시끌벅적하게 치고 나가는 ‘물건’들이 평가받는다. 빈곤망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정말로 속 시원한 인생은 정주영·김우중·김두한·손기정 같이 나의 ‘짱구’, 나의 주먹, 나의 발로 인생을 개척한 사람들이다. 정치가가 부정을 해도 사과 궤짝으로 돈을 날라야 뭔가 뉴스를 보는 것 같다.


미소망상의 또 하나의 유형은 자신은 몸이 약하다는 심기망상이다. 이 망상은 실로 많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다. 병석에 누워 하얀 시트를 덮고 머리맡에는 과일과 꽃이 있는 풍경은 한국인에게 위험하다는 느낌보다 편안하고 그립다는 환각을 주는 것 같다.


한국인들의 몸 뜯어고치기 현상


한국은 기가 허한 사람이 많아서 가족이나 타인의 건강을 걱정하며 ‘보약 한 재’를 권하는 것은 일상적 멘트다. 한국은 실로 술 권하는 사회이자 보약 권하는 사회다. 여름이면 동료들이 회사 차를 타고 청계산 기슭으로 가서 개고기를 나누며 회사의 장래를 걱정한다. 따라서 한방이 가장 발달한 것이 한국이다. 사용되는 약재의 가격이나 품질에서 한방의 원산지인 중국은 한국에 비하면 마이너리그다. 양의와 한의가 거국적으로 밥그릇 투쟁을 하고, 한의대가 양의대와 경쟁하는 곳은 한국뿐이다.


몸이 작고 허약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어마어마하게 약을 먹어댄다. 약방은 어디에나 있고, 자신의 진단과 처방에 따라 익숙하게 약을 사 먹는다. 가벼운 감기 기운만 있어도 한 보따리씩 약을 먹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 마시기 전에 먹는 약, 술 마시고 나서 먹는 약 등 다양하게 복용한다. 한국인은 1인당 위스키 소비에서뿐만 아니라 항생제 소비에서도 세계 제일이다.


신체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으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몸이 작고 약한 심기망상을 가진 한국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보는 서양인들에 비해 작은 신체 부위들이 병적으로 마음에 걸리는 한국인들은 몸을 뜯어고치기 시작한다. 전에는 콤플렉스를 가진 여성들이 유방을 확대하는 수술을 하는가 했더니, 이제는 남자들이 성기를 확대하는 수술, 그리고 여자들이 성기를 조이는 수술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실시되고 있다. 성기를 고치는 것이 국민적 관심사인만큼 정정당당하게 선전이 이루어져 주요 일간지나 인터넷 포털에도 광고가 나온다.


심기망상을 가진 한국인들은 관념적으로도 강한 몸의 한국을 원한다. 따라서 각종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는 데 여념이 없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유치와 성공적 집행은 한국의 존재와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고 남에게 알리는 중요한 역사적 과업으로서 이념·세대·가치관 등을 초월하는 국민적 합의가 형성된다.


유엔 사무총장 배출한 가난한 나라?


산에 터널을 뚫는데 도롱뇽을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는 나라가 두 쪽이 나도록 대립하는가 하면 평창에 동계 올림픽을 유치한다는 훨씬 더 큰 사안에서는 두 번을 실패한 안타까움에 아직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듯하다.


미소망상의 또 하나의 유형은 부정망상이다. 의학적으로는 자신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좀 더 확대해 해석한다면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몸뚱어리가 아니라 한국의 가치나 정체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안 된다’는 소위 ‘엽전의식’이 좋은 예다. 경제에서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세계 10대 경제권이라는 표현을 쓰다 주식시장이 침체하면 갑자기 ‘접시물 경제’라고 한다.


한국을 가장 부정하는 사람들은 어처구니없게도 한국에서 누구보다 혜택을 받는 계층이다.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애국심을 떠드는 정치가들 중 ‘한국에 교육은 없다’며 자녀들을 해외로 빼돌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서구사회의 모순과 한국사회에 대한 애정과 소신을 절절하게 논파하는 지식인들도 자식은 해외, 특히 미국에서 학위를 하거나 변호사 또는 의사가 되기를 원한다. 한국사회를 사랑하고 핍박받는 민중을 위해 돌과 화염병을 던지던 데모대들은 결혼을 하고 어느 시점에서는 미국 이민을 인생의 한 메뉴로 자연스럽게 고려하기도 한다.


‘한국은 없다’는 망상을 가진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많은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한국이 싫거나 실망스러워 나온 한국인들은 해외 현지에서 가장 민족적 성향을 보인다.


유학 나온 한국 남자 유학생들이 한국 여학생들에게 외국인이 접근하는 것을 싫어하고 방해하는 것은 이제 여러 나라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다. 미국으로 이민한 지 수십 년 된 사람들 중 아직도 미국사회에 동화하지 못하거나 동화를 거부하는 이가 많다. 지금도 뉴욕이나 LA에서 한국어로 생활하고 경관에게는 잘 봐 달라고 “see me well(잘 봐 달라는 의미의 콩글리시)”이라고 하는 한인들이 있다.


미국·호주·일본·중국·홍콩 등 해외의 수많은 대도시에서는 한국인 여성들이 유흥업과 매춘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을 보며 외국인들은 과연 한국은 빈곤한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 술집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현지 가정의 월 소득에 해당하는 정도의 돈을 하룻밤 술값으로 날리기도 한다. 악착같이 미국 대학의 장학금을 받아내는 한국 유학생들은 대개 미국 학생들이 타지 못하는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


한국은 작고 가난하고 없다는 망상과 이에 상응하지 않는 행동을 보이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범죄자로 검거되는 한국인이 항상 외국인 중 2위를 차지해도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각종 국제대회에서 큰 목소리로 주장하더라도, 한국은 아직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이웃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외화보유고가 세계 10위 안에 들고, 한국인이 ‘롤렉스’ 시계나 ‘구찌’ 핸드백 같은 명품의 중요 고객그룹이 되었지만, 한국은 아직 작고 가난하다. 그래서인지 각종 국제구호기금이나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는 것은 아직 한국인의 머리에 등록돼 있지 않다.


7. 못 말리는 과대망상

- 폼생폼사! 자존심에 죽고 살았던 체로키 인디언 기질과 흡사


망상의 기질과 풍토는 버스를 갈아 타듯 옮길 수 있다. 한국인은 미소망상 못지않게 과대망상을 갖고 있다. 한국은 크고 강하고 대단하다는 집착이다. 월드컵에서 골 많이 넣으라는 함성으로 ‘대~한민국’이 사용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지도를 놓고 보면 중국의 한 성에 지나지 않는 반도를 놓고 대한민국이라고 하기는 조금 민망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많다. 스스로를 지칭하며 ‘대한민국의’라는 형용사를 넣어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느 유명 대학의 교수가 노래방에서 ‘정부의 무슨 위원인 대한민국의 아무개’가 노래를 하려는데 서비스가 서투르다고 주정을 부리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이 진정 애용되는 말임을 알았다.


과대망상의 여러 유형 중 한국에서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이 혈통망상이다. 자신이 혈통적으로 우수하다는 집념이다. 여기서 혈통을 사회적으로 해석하자면 출신성분이다. 이 혈통망상은 기득권 고수라는 정치적 의도와 맞물려 돌아간다. 우선 민족 전체가 혈통망상을 가지고 있다. 어느 민족이나 기원에 관한 신화가 있고, 그 신화에는 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그러나 한민족이 배달민족의 우수성에 대해 지키는 믿음은 장난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특수 신분들


이는 언어에서 잘 나타난다. ‘내 참, 자존심 상해서’라는 말은 한국에서 종종 듣는 표현이다. 내가 경험해 본 어느 사회에서도 이러한 표현은 없다. 어떠한 의사결정이나 행동을 취하는 데 자존심 상한 것이 요인이 된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문화는 없는 것이다. 자존심에 대한 언급은 한국인에게는 실례지만 대개 수준이 낮은 미개문명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영어 노래 <인디언 보호구(Indian Reservation)>의 가사를 보면 체로키 인디언은 사는 데나 죽는 데 너무 자존심이 강했다(so proud to live, so proud to die). 이 체로키 족과 유사한 심경을 가진 것이 한국인인 듯하다. 이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유행했던 ‘폼생폼사’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폼(외양으로 구현하는 자존심)에 살고 폼에 죽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잘나가는’ 사람은 자동차나 휴대전화는 아직 새것인 데도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곧 바꾼다. ‘차 한 대 뽑는 것’이 무슨 냉면 한 그릇 말아먹는 정도다.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번쩍번쩍 닦은 검은 타운카를 타지 않으면 어디 가서 명함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망상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는 세 부류가 있다. 한국에서 성공한 사람들, 미국의 일부 흑인들, 그리고 일본의 야쿠자들이다.


한국인의 혈통망상은 유구한 전통이 잘 지켜지고 있다. 신라에 진골·성골이 있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에는 대학교수와 고시 출신자들이 있다. 박사 학위와 고시 합격이라는 일종의 면허증을 가진 이들은 단순히 지식집약적 직업군을 구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에서 특수 신분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일류대학을 나오고 해외의 일류대학에서 박사를 한 뒤 한국에서 교수 직에 있는 이들은 단순한 학자나 선생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혈통적으로 빼어난 자들이 향유해야 하는 가치들을 망라하고 축약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류대학의 교수는 생활도 윤택하고 부인은 요조숙녀이며 정부에 중요한 역할을 행사하고 사회의 존경을 받는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사회의 웬만한 사람들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 정치가들과 술을 마시고 기업가들과 골프를 치며 대통령선거 철이면 지식과 지혜와 전략을 양조장의 술처럼 퍼준다.


그런데 대학교수 중에는 무늬만 엘리트가 많아 순도가 떨어지는 반면 훨씬 순도가 높아 진정으로 뚜쟁이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사시와 행시에 붙은 사람들이다. 대학교수들이 한국의 가치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해설가들이라면, 고시에 붙은 사람들은 가치를 창출하고 움직이는 선수들이다.


이들의 월급쟁이 공복으로서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커리어의 끝은 창대하다. 서로 시기하고 미워해도 그룹의 기득권을 부릅뜬 눈과 움켜쥔 주먹으로 지켜내는 이들이 공직에서 물러날 즈음이면 진정한 가치들이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정계와 재계에서 이들은 별 같이 빛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진정 축복받은 나라이다. 이 축복에는 인류가 모시는 중요한 초월자들인 예수 그리스도·성모 마리아·석가모니·공자·도가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모두 임해 있다. 유일하게 뒤처진 것이 무하마드였다. 또한 많은 신령이 한국인의 몸을 안식처로 선택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종교망상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많은 한국인이 초월자들에게 선택받았다고 믿으며, 그 중에는 자신의 몸에 초월자가 들어있거나 적어도 신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종교망상대국 한국이 연출해 내는 풍경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해가 진 후 웬만한 도시를 둘러보면 여기저기 붉은 색 네온으로 빛나는 십자가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 위한 이들 교회는 낮에 보면 거대한 광장의 건축물에서 시작하여 피아노학원의 위층, 찜질방의 아래층, 쓰러지는 판잣집 등 도처에 늘어서 있다.


불교 사찰도 활동이 왕성하기는 마찬가지다. 인생의 윤회라는 추상적 사안에서 시작해 자녀의 입시, 임신, 조상의 천도굿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찰은 현대 한국인들에게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는 포털 같아 보인다.



이러한 망상국가에 사는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훨씬 잘 대처한다. 미래가 불안한 사람은 목사·승려·신부는 물론 점쟁이·무당·박수 등 다양한 지혜 제공자로부터 조언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24시간 이혼 상담’ 변호사가 있다면 한국에는 연중무휴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성직자와 점쟁이가 있다. 이들과 운명을 상담하는 것은 이제 국민적 관행이 되어 정치가·기업가·지식인·상인·주부·대학생 등 모든 프로필의 한국인이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커다란 망상이 연애망상이다. 누구나 연애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타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편집증이다. 요즘 말로 한국인들은 왕자병과 공주병에 걸려 있다.


많은 한국인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추하게 본다는 생각에 시달렸었다.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외국에서 사랑받는 존재, 주목받는 브랜드라는 생각으로 바뀐 듯하다. 이러한 긍정적인 자기인식은 좋은 것이지만, 한국인에게는 지금 점차 망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언론에 비치는 한국인은 천당과 지옥, 천사와 악마의 경지를 왔다 갔다 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어제는 일본에 간 한국 관광객들이 조용한 온천장에서 떠들거나 물건을 가지고 간다고 전하더니, 오늘은 이승엽이라는 선수가 일본야구를 암흑에서 구해내 일본인들이 온통 ‘승짱’ 중계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위성미라는 소녀골퍼는 타이거 우즈라는 흑인에 염증을 느끼는 전 세계인에게 신선하고 짜릿한 충격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한류와 한국 여자골퍼들의 약진


이러한 생각들이 집약되는 것이 한류다. 외국인들이 최근 한국의 대중문화에 매료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유독 한국의 대중문화만 예찬하거나 다른 문화에 비해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오래 생활한 일본 지상파 방송국의 한 간부는 한류라고 불리는 한국의 대중문화는 다양한 외국문화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문화생활 속에서 이제야 하나의 외국문화로 ‘시민권’을 획득한 것이라고 정리한다. 다만 한·일 간의 갈등관계와 대조해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는 것, IT시대의 여러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타이밍이 좋았다는 것 등이 한류를 두드러지게 보이게 한다는 의견이다.


세계 속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으로 여기는 또 하나의 사례가 한국 여자골퍼들의 약진이다. 최근 미국 여자골프대회에서 상위에 입상하는 한국인이 너무 많아 클럽하우스에서 김치를 팔아야겠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실정과 정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현상은 한국여성들이 특히 골프에 적합한 체격이나 특성을 갖추고 있다기보다 부모의 의향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 농촌의 아들들이 법대에 많이 지원해 결국 고시 합격자가 많이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다. 자식의 출세는 가족의 신분 향상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이를 미화하거나 과찬하는 것은 오직 한국의 의식수준이 높지 않음을 강변하는 것이 될 수 있다.


8. 닫혀 가는 문들

- 망상적 대응으로 이미지 추락 가속화… 국제 ‘왕따’ 우려해야


이러한 다양한 망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을 이웃 나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추악한 한국인(ugly Korean)’의 모습을 불식하자는 움직임이 외무부를 중심으로 정부 차원에서 있었다는 소식이다. 정부에 실로 다양한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은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과거의 보도에는 국가이미지발전위원회라는 말이 있기도 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해외 총영사들의 모임에서는 추한 한국인을 줄이기 위한 성토와 권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정책을 만들어 과연 한국인의 교양 수준과 시민문화를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조용히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학계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의 학계가 개방적이라는 것은 대부분 인정한다. 미국의 대학원은 우수한 학생이라면 인종을 포함한 모든 개인적 조건을 불문하고 선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면 외국인임에도 교수로 채용한다. 영어가 불완전해도 한국의 많은 인재가 지금도 미국 학계에서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인재들을 위한 미국 학계의 문은 차례로 닫혀 가고 있다. 그 원인은 많은 공과 비용을 들여 임명한 한국인들이 한국에 교수 자리가 나면 뒤를 생각하지 않고 떠나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미국인 교수들은 한국의 학자들의 꿈은 연구를 통해 자기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좋은 대학에 교수로 금의환향하는 것이며, 미국에서의 학위와 심지어 교수 자리도 그 방편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도 닫혀 가는 커다란 문이다. 역사문제를 포함해 일본과 어떠한 갈등이 있더라도 일본의 기술·지식·노하우에 한국이 의존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현실이다. 지금도 많은 기업이나 단체가 급하면 일본을 찾는다.


왜 한국 외교는 정서외교·기분외교인가?


한국에 오래 체류한 일본 종합상사의 한 간부는 한국 기업들은 ‘벤치마킹’을 좋아하는데, 회사에서 벤치마킹 지시가 있으면 으레 일본에 와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고 꼬집는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에서 자료를 가져간다는 사실이 아니라, 일본 기업이 협력해 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한국인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잘못한 것을 생각하면 일본은 무엇에도 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국인의 ‘응석구조’라고 보는 것이다.


거창한 수식어들과 달리 한·일 간에 협조와 교류가 가장 떨어지는 것이 금융부분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일본 금융계의 한국 금융계에 대한 서운함이라는 심리가 큰 요인이다. 과거 일본은 서방국가들이 주축을 이루는 각종 금융회의에 참가한 아시아의 유일한 나라였다.


그러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서양인들의 금융회의에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로 참가하는 멤버가 됐다. 이때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참가를 환영하며, 특히 서양인들이 자리를 채우는 회의장에서 같은 동양인으로서 호흡을 맞추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본에 반대하거나 일본의 입장을 약하게 하는 태도를 취했다는 고백이다. 이때 일본금융인들이 느낀 한국 금융계에 대한 허탈과 불신은 지금도 완전히 불식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국익에 결부되는 많은 장면에서 한국의 엘리트들이 합리적 계산과 판단보다 한국인으로서, 더 정확히 말하면 유관순 누나의 후손으로서 불필요하게 감정을 개입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일본의 정계·관계·재계에서는 한국의 일본외교를 ‘정서외교’ 또는 ‘기분외교’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일본경제신문>의 스즈오키 기자는 한국의 기분외교를 매우 걱정한다. 비슷한 내용이라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는 분신자살로 반대하고 유럽과의 FTA는 그런 것이 있었나 하는 정도로 넘어가는 한국인의 대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한국의 정서외교·기분외교에 장단을 맞출 수가 없어 ‘당분간 한·일 외교는 개점휴업’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망상이 엘리트들의 무책임한 말장난에 실릴 때는 엄청난 국익의 손해를 초래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 통치국들이 영토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과정에서 한국은 독도를 찾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때 육당 최남선이라는 역사학자가 외무당국에 ‘파랑도라는 물에 잠길까 말까 하는 암초가 있으니 독도와 함께 이것도 한국땅’이라고 연합군에 주장하라고 충고했다. 둘을 요구하면 하나는 건질 수 있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중국에는 한국이 없다?


이 주장을 검토한 연합군 사령부는 ‘파랑도가 한국 영토’라는 주장을 정부 의견으로 제시할 수 있는 한국인의 양식에 큰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로써 결국 연합군 사령부는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하는 영토에서 독도마저 제외하고 만다.


현재 한국인의 마음은 일본을 떠나 중국을 향하고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중국 엘리트들의 생각이 한국이 원하는 만큼 한·중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수뇌부에 한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중국의 어느 싱크탱크의 연구원은 한마디로 정답을 내놓았다. “미국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성립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가장 중심으로 여기며, 그 연장선 위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중국인과 한국인만이 세 자의 한자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곧잘 말한다. 즉, 중국과 한국은 문화적 DNA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에 대한 중국인의 온도는 그리 뜨겁지 않다.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중국의 지식인들이 보는 신문의 사설과 평론이다. 국제경제를 연구하는 한 중국인 교수는 한국에 관한 기사는 중국 신문의 사설이나 평론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금융을 잘 아는 그는 한국이 아시아의 금융 허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마치 지방의 한 재계 소식을 듣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상하이(上海)에서 한국 무역계를 대표하는 조직의 책임을 맡고 있는 P씨는 지금까지 5,000년의 한·중 관계사에서 한국이 지금처럼 대접받고 좋은 위상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식들이 성장할 시점에 한국이 현재 위상을 중국에서 유지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고백한다. 앞으로 고속도로가 전국에 깔리고 진정으로 현대자본주의 국가로서 새로운 국가 건설이 완성되는 십 수년 후의 중국에 ‘한국은 없다’가 될지 모른다는 염려다.


이러한 염려가 기우가 아님을 알게 하는 장면을 하나 목격했다.


“조선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우수한 공동체입니다. 이 조선족의 집단적 자존심에 최초로 상처를 낸 사람들이 바로 한국사람들입니다.”


옌볜(延邊)에서 태어나 조선족 사회에서 존경받는 학자로 현재 상하이의 푸단대학 교수로 있는 J박사가 어렵게 토한 말이었다. 망상의 가장 무서운 면은 자신이 진실로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환각이거나 환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는 것이 환상은 아닌가? 한국인들은 바르고 정의롭기 때문에 절제라거나 금도라는 것은 필요 없다는 환상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닌가? 62돌 광복의 날을 앞두고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빛내자”는 노랫말 대신 이러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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