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호에 대한 글이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기에 퍼왔습니다. 한 나라의 국호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근환씨라는 분이 쓴 글인데 우리나라 국호에 대하여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韓國이란 명칭은 大韓民國의 준말이 될 수 없는 명칭입니다.
대부분의 우리 나라 사람들은 韓國이란 명칭이 大韓民國의 준말이라고 알고 사용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韓國은 大韓民國의 준말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는 안 되는 명칭인데 식민사관에 찌들어버린 者들의 농간으로 국어사전에 준말이라고 되었기 때문입니다.
韓國이라는 명칭은 일본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기 위하여 사용한 명칭이고 3세기경 일본에 있었다가 중국 위나라에 의해서 멸망한 나라의 명칭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지』권30 위서 동이전왜인조에 "徙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乍南乍東 倒其北岸狗邪韓國七千餘里.始度一海千餘里至 對馬國”군을 떠나 왜에 이르러 물길 따라 해안을 둘러보는데 한국을 지나니 남쪽과 동쪽이 잠시 끝이고 구사한국 북 안에 도착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韓國은 왜에 있었던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1870년 명치유신을 마무리하고 우리 나라에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대원군에 의하여 거절당하였는데 이때부터 일본은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며 우리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876년 운양호사건을 빌미로 병자수호조약(丙子修護條約)이 체결되었고, 1884년 갑신정변 을 빌미로 한성조약이 체결되었으며, 1885년에는 청일전쟁 후 텐진조약이 청일간에 체결되었는데 이 조약까지는 모든 조약 문에 우리 나라를 조선(朝鮮)으로 호칭하였습니다,
그런데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갑오개혁)을 실시하게된 잠정조약(暫定條約;暫定合同條款)은 일본군대가 경복궁을 포위한 상태에서 대원군을 데려다 체결하였는데 이 조약에서 일본은 우리 나라를 조선(朝鮮)대신 처음 한국(韓國)이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호칭은 1945년 해방 될 때까지 계속하였습니다.
★잠정조약(잠정합동조관) 내용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구실로 한국(韓國)이라고 되어있는 내용을 모두 조선(朝鮮)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이 우리 나라 국호인 대한(大韓)이 생기기도 전에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철도부설 자료(1) 에 있는 잠정합동조관(暫定合同條款) 에는
1, 이번 일본정부는 조선정부의 내정개혁을 희망하고 조선정부도 또한 그것이 급무임을 깨달아 권고에 따라 힘써 시행 할 것인바 각 구절은 순서에 따라 시행할 것을 보증한다.
★그러나 1965년 세문사(世文社)에서 편찬한 해방20년 259∼261쪽에는 일본과 체결한 조약 문들이 수록되어있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1.日本政府)는 韓國政府의 內政改革을 希望하고 韓國政府는 其 急務임을 認定하여 其 勸告에 좇아 勵行할 것을 保證함 . 이라고 되어있는데 한국(韓國)을 조선(朝鮮)으로 변조한 것을 알 수 있고 후반(각 구절은 순서에 따라 시행 할 것을 보증한다)을 이중으로 번역했습니다.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본은 대한(大韓)이라는 명칭을 일체사용하지 못하게 하였고 갑오경장이후 언문(諺文)을 국어(國語)국문(國文)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조선어(朝鮮語)조선문(朝鮮文)으로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때 한국(韓國)과 한(韓)이라는 명칭사용도 금지되었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者들도 있습니다. 한국(韓國)을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준말이 라고 한 者들의 억지주장이라 할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은 일인과 친일파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통제를 받지 않고 사용한 사례가 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25년에는 조선총독부 경무 국장 마쓰야 란 자가 봉천 경찰청장과 독립군 탄압을 하기 위해【한국(韓國)인에게 거주이전을 제한하고 무기휴대와 집회와 결사를 제한하는 소위 마쓰야 협정이란 것 을 체결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회원 이었고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파 사학자 최남선(崔南先)은 한일문화동근론(同根論)을 1930년 라디오 방송원고로 알기 쉽게 풀이하였으며】
◎【1932년 이 윤 재 (李允宰) 李允宰는 창간사에서 한글의 유래에 대해 이 말이 생기기는 ∼ 주시경(周時經) 선생이 ‘한글배곧’이란 것을 세우니 이것이 「조선어강습소」란 말입니다. 그 뒤로 조선글을「한글」이라 하게 되어 ∼.
"한글’의 ‘한’은 우리의 고대민족의 이름인 환족(桓族)이나 환국(桓國)으로 부터‘삼한(三韓)’의‘한(韓)’근대의‘한국(韓國)의 한’에 그 기원을 대고 그 의미는 ‘크다(大), ’하나‘라고 말하고「한글」은「한」이란 겨레의 글 곳 조선의 글이란 말입니다. 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이 윤 재 선생은 대한(大韓)과 한국(韓國)이 아무관련이 없는 명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관련이 없는 근대의‘한국(韓國)의 한’을 거론한 것은 일본이 우리 나라를 계속 한 국(韓國)으로 호칭하는 것을 간과(看過)하지 않고 "한글"이라는 명칭을 잘 유지하기 위하여 한국(韓國)을 "한글의 기원"에 포함시킨 것으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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