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빗대어 말하면서, 지하실과 2층으로 된 좋은 집의 주인이면서 불행하게도 그 건물의 지하실에서 지내기를 더 좋아하는 존재라고 비꼰다. '뿐만 아니라 만일 누군가가 텅 비어 있는 더 좋은 층에서 살라고 제안하면 화를 낼만큼 지하실을 좋아한다. 사람은 그 자신의 집(땅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우화는 물론 인간이 정신적인 세계를 지향하도록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에 탐닉하는 것을 즐긴다는 비판을 하기 위해 씌어졌다. 인간이 자신에게 부여된 본래의 고귀한 가치를 망각한 채 비참하게 살고 있음을 밝고 넓은 1층과 2층을 마다하고 건물의 지하실에 거주하는 집 주인에 비유한 것이다.
누리지 못하면 갖고 있지 못함과 같아
그의 우화 가운데 집을 소재로 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오두막에 사는 사상가에 대한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건물과 같은 사상 체계를 세우려고 하는 사상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터무니없이 우스꽝스럽다고 하면서 키에르케고르는 그 실상을 소개한다. '이 사상가는 커다랗고 높은 아치 형의 천장으로 된, 으리으리한 궁전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 궁전 옆의 헛간과 같은 개 집, 아니면 기껏해야 짐꾼이 사는 오두막집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사상가에게 그 같은 사실을 환기시키려 한다면, 그는 당연히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사상가의 그럴듯한 사상 체계와 비참한 실존적 삶 사이의 현격한 거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이야기 역시 앞에 소개한 이야기와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물론 강조점에 차이는 있다. 앞의 이야기에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부각되어 있고, 두번째 이야기에는 지식인의 기만이 두드러져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부여되어 있는 존재의 값이나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를 누리지 못하고 스스로 비참해져 있다는 점에서 같다.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리지 못하면 가지고 있지 못함과 다르지 않다. 부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즐기지 못하면 부여되어 있지 않음과 다르지 않다. 유대 율법에는 희년이 되면 노예를 해방하는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자유인으로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자유를 누릴 줄 몰라 스스로 노예됨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북 전쟁 후 미국에서도 그런 일이 더러 있었다고 들었다. 자유를 부여받았지만 자유를 쓰지 않는 이들은 노예와 다르지 않다.
다른 우화를 하나 떠올린다. 누구의 것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내용이 이렇다. 어떤 고귀한 신분의 남자가 여러 개의 방이 있는 넓은 집을 짓는다. 방이 열 개쯤 있는 넓은 집. 그리고 집이 완성된 후 그는 시간을 나눠서 한 방에서 한 시간씩 잠을 잔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한 시간에 한번씩 깨어 나야 한다. 그 바람에 하룻밤도 편하게 잠을 자지 못한다. 이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고 있는가. 열 개의 방을 누리기 위해 그는 한 시간에 한번씩 잠에서 깨어나야 했고, 그렇게 하느라 잠을 누리지 못했다.
집은 살고 지내고 누리는 것일 뿐
중요한 것은 '열 개의 방'이 아니라 '한 개의 잠'이다. 으리으리한 저택이나 몇 층짜리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어울리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지내는' 일이다. 거기서 지내지 않는다면 소유가 무의미하고, 누리지 않는다면 고상한 것이 헛것이다.
여러 채의 집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돈이 남아나서 해외로 부동산을 사러 나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비싸고 넓은 집에서 귀족처럼 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너무 비뚤어져 있다. 집은 살고 지내고 누리는 것일 뿐, 치부의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열 개의 방을 옮겨 다니며 자기 위해 잠을 설치거나 2층이나 밝은 데는 싫다며 지하실이나 움막, 그 어둠과 감각의 세계에 웅크리고 있지 않은지 걱정된다.
'음악회에서 봤을 때 참 괜찮다 했더니 우리 아파트에 사는구나.' 하는 식으로 집을 기호품처럼 선전하는 광고가 그다지 어색하게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집은 기호품이 아닐뿐 아니라 그 집 안에 채워져 있는 내용물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값비싼 재료와 그럴듯한 장식품으로 치장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문화와 정신의 깊이에서 나오는 향기가 없다면 움막이나 지하실과 다를 게 무엇인가. 집은 대리석과 벽돌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문화로 짓는 것이다.
글쓴이 / 이승우
· 소설가 /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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