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훈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학문적 교류

지성유인식 2007. 1. 4. 09:49
 

2006년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태어난 지 220년이자 서거한 지 15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였다. 김정희에 관한 전시회와 학술대회와 유난히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김정희의 『완당전집(阮堂全集)』에는 그가 정약용(1762~1836)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가 있다. 이 편지는 1820년대 전반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약용의 질문에 김정희가 답변하는 내용이다. 김정희가 답변한 것은 세 가지였다. 상례에서 변질(弁 )의 제도는 『의례』와 『예기』의 기록을 합쳐서 보아야 한다고 했고, 주나라의 육향(六鄕)이 왕성 안에 있었다는 정약용의 주장은 의심스럽다고 했으며, 졸곡의 제도에 대해서는 정현(鄭玄)의 견해가 옳다고 보았다.


학문적 토론대를 찾아 24년 후배에게도 의견을 구해 이 문제가 나온 것은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완성한 『상례사전(喪禮四箋)』과 『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이었다. 정약용은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인근에 살던 신작과 김매순에게 이 책들을 보여주었다. 1816년에 형 정약전이 사망한 이후 학문을 토론할만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던 정약용은 당대의 뛰어난 학자인 두 사람에게 자기 책을 소개하고 소감을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상의 문제에 이견을 제기하자 정약용은 이를 다시 김정희에게 질문했다.


김정희의 답변은 정약용에게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정약용의 견해를 비판한 신작이나 김매순과 같은 입장을 보였을 뿐더러 정현의 주석을 비판하는 정약용에 맞서 정현의 학설은 의미가 있다고 옹호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정희는 정약용이 선배 학자들의 학설을 지나치게 비판하고 자신의 독창적 견해를 내세우는 것이 너무 심하다고 지적했다.


정현의 주석에 의심나는 곳이 많기는 하지만 모두 사설(師說)이 있고 가법(家法)이 있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정현을 공박할 때에는 약간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떨치고 일어나 공격하는데 힘을 다 써버렸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들이 공격한 내용은 사설도 없고 가법도 아닙니다. 왕숙(王肅) 같은 무리가 정현을 힐난한 것은 자신의 독특함을 자랑한 것이지, 경(經)의 뜻이 날로 사라지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현을 공격한 왕숙의 학설이 별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정약용이 독자적으로 주장하는 학설도 경서에 나타난 성현의 본지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할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애초에 24살이나 연하인 김정희에게 질문을 한 정약용도 대단하지만, 그런 선배의 질문을 이런 식으로 받은 후배의 답변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그러면 정약용은 김정희의 답변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정약용 저술에 나오는 표현이 과격하다고 지적한 학자에는 김매순과 홍석주도 있었다. 정약용은 이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저술이나 소장본들을 살펴 볼 기회가 있었고 이를 계기로 자기 저술의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었다. 과격한 표현만이 문제가 아니라 논거로 제시한 자료에도 오류가 많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이 최초로 밝혔다고 자부한 학설 중에는 이미 백여 년 전 청나라 학자가 언급한 것도 있었다. 이후 정약용은 자신의 저술을 수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류와 소통을 통해 학문을 발전시키다


정인보는 1933년에 『완당전집』의 서문을 작성하면서, 김정희의 학문은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에서 유래한다고 흔히 말하지만 부친 김노경의 식견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정조의 우문정치(右文政治)를 만나 신작, 정약용, 이덕무, 박제가 같은 경학자들의 학문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는데, 김정희의 학문은 이런 사우(師友)들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 많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약용과 김정희는 교류를 통해 각자의 학문을 발전시켰다고 하겠다.


지난해에는 인문학의 위기를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렇지만 인문학에 속하는 학문  간이나 인문학과 여타 학문 사이의 교류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자는 움직임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2007년 새해에는 ‘교류’와 ‘소통’이라는 단어를 많이 듣게 되기를 기대한다. 교류와 소통을 통해 발전하는 것은 학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 김 문 식(단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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