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예나 지금이나 중국 문명은 우리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 중국에서 진행 중인 놀라운 변화와 발전은 우리를 긴장시킨다. 새로운 형태의 중화주의가 출현하리라는 예감을 강하게 받게 된다. 최근 방문한 북경은 활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시내에는 아프리카 40여개 나라의 정상들이 초청된 대규모의 국제회의를 경축하는 깃발들이 펄럭이고, 2008년 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느라 곳곳에 개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학자들도 옛날의 위축된 모습을 벗어 던지고, 한국의 문화와 사상을 그들의 시각으로 분석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중국의 저명한 사회과학자는 옛날의 ‘사대교린’ 정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동북아공동체의 모형으로 삼자는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정녕 중국은 무엇을 꿈꾸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현명할까? 나는 최근 다산의 ‘천’에 대한 해석을 눈여겨보면서, 외부 세계의 강력한 문화적 충격을 슬기롭게 풀어 나가는 지성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독점된 ‘하늘(天)’, 하늘에 제사지내지 못하고
홍길동전의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나는 어찌하여 일신이 적막하고, 부형이 있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심장이 터질지라.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어린 길동의 독백에 들어 있다. 이 대목에 조선 시대의 허구와 모순이 함축되어 있다. 자기들의 씨앗을 스스로 부정하는 유자들의 위선에 젊은 영혼들이 시들어 갔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욱 기막힌 일이 또 있었다. 백주 대낮에 ‘하늘’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조선에서의 ‘천’에 대한 해석이 언제나 중국 황제권과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황제권이 제도적으로 정착하고 난 후, 천명(天命)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은 사실상 황제에게만 있었다. 그것이 교사례(郊祀禮)와 같은 제천(祭天) 의식을 통하여 나타났다.
조선의 왕이나 백성은 하늘의 뜻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해석할 권능이 없었다. 하늘은 초월적 의미로 모든 인간에게 자리하고 있으나, 하늘을 본받거나(法天) 형상(象天)하여 뜻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천자라는 것이다. 즉 하늘의 중심축은 영구히 변하지 않는 항상성을 지니고 있으며, 천자만이 그것을 대행할 수 있다는 무서운 독선을 버젓이 이론화 하였다. 이것이 곧 황극(皇極) 사상이다. 정현(鄭玄)과 같은 당대의 일급 학자들이 이러한 기괴하고 패권적인 이론의 이데올로그로 동원되었고, 조선의 ‘하늘’은 그들이 처 놓은 그물망 속에서 왜곡되고 변질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천제(天祭)인 교사례(郊祀禮)의 설행 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비교적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였던 태조나 태종, 세조의 시대에는 독자적으로 천제(天祭)를 설행하고자 하였으나. 중국의 직접적인 압력과 황제권과의 마찰을 우려한 신하들의 만류로 무산되었다. 이에 세조 이후 하느님, 곧 상제(上帝)에 대한 왕의 친제는 사실상 소멸되고, 소격서와 같은 도가적 해석이나 성리학적인 이법천(理法天)으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다산의 상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하늘’에 대한 중국 중심의 정치적 해석을 걷어내고, 조선인들에게 고례에서 발견되는 영명한 종교적 천을 회복하는 새롭게 돌려주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되찾은 ‘하늘(天)’, 새롭게 민중의 영혼 속으로
다산은 우선 푸르고 푸른 자연천을 결코 ‘하느님(帝)’이라고 칭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그는 태양이나 달이 제천(祭天)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들이 영(靈)이 없는 사물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천은 천이되 자연천이 아니라, 영(靈)이 깃든 인격적인 천, 곧 상제(上帝) 천이 이 세계를 주재한다고 본다. 그는 하늘을 다시 조선 민중들의 영혼 속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다산의 상제천 해석은 정현(鄭玄)이나 왕필(王弼) 등에게서 보이는 과도한 중국 중심의 정치적 해석이나 도가적 해석을 걷어내고, 원시유가의 상제가 지닌 종교적 초월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상제 해석 과정에는 서학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다산의 신학적 상제론은 조선 사회에서 비로소 ‘천’과 상제에 관한 독자적 담론이 가능하게 한 획기적인 해석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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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순우
· 한국학대학원 교수, 장서각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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