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호에 대한 우리의 의견

檀君世紀序

지성유인식 2001. 11. 1. 00:02
위국(爲國)의 도가 사기(士氣)보다 먼저인 것이 없고, 사학(史學)보다 급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사학이 불명하면 사기가 부진하고 사기가 부진하면 국본(國本)이 흔들리고 정법이 갈라진다. 대개 사학의 법은 깎을 수 있는 것은 깎고, 보탤 수 있는 것은 보태어 인물을 형량(衡量)하고 시상(時像)을 논진(論診)하니 만세의 표준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 민족이 살아온 것은 참으로 오래되었다. 창세(創世)의 조서(條序)가 또한 정증(訂證)을 더하여, 나라와 역사로 병존하고, 사람과 정사로 구거(俱擧)하니 모두가 나보다 우선하는 것이요 소중한 것이다.

오호라 정사는 그릇이요, 사람은 도니, 어찌 그릇이 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있으며, 나라는 형상이요, 역사는 혼이니, 어찌 형상이 혼을 잃고 보존될 수가 있겠는가.

도와 기를 같이 닦는 것이 우리며 또한 형상과 혼이 같이 이그러진 것이 우리다. 고로 천하 만사가 나를 아는 것이 먼저인데 나를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인가.

무릇 삼신일체(三神一體)의 도는 대원일(大圓一)의 뜻에 있으니 조화의 신은 내려와서 우리의 성(性)이 되고, 교화의 신은 내려와서 우리의 명(命)이 되고, 치화의 신은 내려와서 우리의 정(精)이 되니, 고로 오직 사람이 만물의 가운데서 가장 귀하고 가장 높은 것이다.

무릇 성은 신의 뿌리이다. 신은 성에 근본하나 성은 신이 아니요, 기(氣)가 형형불매(炯炯不昧)한 것이 진성(眞性)이다.

이러하므로 신은 기에서 떠날 수가 없고, 기는 신에서 떠날 수가 없으니 우리 몸의 신과 기가 합한 후에 우리 몸의 성과 명을 볼 수가 있는 것이요, 성은 명에서 떠날 수가 없으며, 명도 성에서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니 우리 몸의 성과 명이 합한 후에 우리 몸이 신의 성에서 비롯하지 않음과 기의 명에서 비롯하지 않음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고로 그 성의 영각(靈覺)이 천신(天神)과 더불어 그 근원을 같이하고, 그 명의 현생이 산천과 더불어 그 기를 같이하고, 그 정의 영속이 창생과 더불어 그 업을 같이 한다.

곧 하나를 잡아 셋을 포함하고, 셋이 모여 하나가 되는 것이 이것이다.

고로 정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진아(眞我)라고 하며, 신통만변하는 것을 가리켜 일신(一神)이라고 한다.

진아는 일신이 유거(攸居)하는 궁(宮)이다. 이 진원을 알아서 의법 수행하면 길상(吉祥)은 스스로 모이고 광명은 항상 이를 비출 것이다.

곧 삼신을 붙잡아 계율을 맹세하고 천과 인이 서로 같이 있을 때에 연분은 비로소 하나로 돌아갈 것이다.

고로 성, 명, 정의 무기(無機)는 삼신일체의 상제인 것이다.

우주 만물과 더불어 혼연동체가 되어 심기와 더불어 몸은 형적이 없고 감(感), 식(息), 촉(觸의) 무기가 장존하는 것이 환인주조(桓因主祖)인 것이다.

세계만방과 더불어 하나로 사행하여 천, 지, 인이 함께 즐기고 무위하여도 스스로 화한다.

이런고로 입교하고자 하는 자는 모름지기 먼저 자아를 세우고, 형상을 혁신하고자 하는 자는 모름지기 먼저 무형을 펼 것이니, 이것은 곧 나를 알고나서 혼자서 일도를 구하는 것이다.

오호라 슬프다.

부여는 부여의 도가 없어진 후에 한인이 부여에 들어왔고, 고려는 고려의 도가 없어진 후에 몽고인이 고려에 들어왔다.

만약 그때에 재빨리 부여에 부여의 도가 있었다면 한인은 한으로 돌아갔을 것이며, 고려에 고려의 도가 있었다면 몽고는 몽고로 돌아갔을 것이다.

오호 슬프다.

향년에 오잠(吳潛)과 류청신(柳淸臣)배의 사론(邪論)은 음흉하게도 백귀(百鬼)와 더불어 야행하고, 남생(男生)과 발기(發岐)의 역심으로 상응합세하여 위국자를 억누르니, 어찌 도와 기가 상하고 형과 혼이 전멸하는 때에 스스로 안전할 수 있겠는가.

지금 외인 간섭의 정치는 갈수록 자심하여 임금을 마음대로 양위시키고 복위시키며, 두목을 임명하여 희롱하고 멋대로 놀아나도 우리 대신들은 속수무책이니 이는 어찌된 일인가.

나라에는 사학이 없고 형은 혼을 잃은 까닭이다. 일 대신의 능력으로는 조금도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곧 거국의 사람들이 스스로 구국을 기약하고 구국에 유익한 바를 구한 후에야 구국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구국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나라에 사학이 있어야 형에 혼이 있는 것이다.

신시는 개천하여 스스로 그 법통이 있었다.
나라는 법통에 따라 세워지고 백성은 법통에 따라 일어났다.
어찌 사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인가.

-金殷洙의 桓壇古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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