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민초

대한민국은 이런 사람이 있어 희망이 있다!

지성유인식 2020. 4. 2. 02:30

 

 

 

그는 추신수(텍사스 레인져스)이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엘리 화이트(25)는 2018년 오클랜드-탬파베이-텍사스 삼각 트레이드 당시 오클랜드에서 텍사스로 트레이드된(주릭슨 프로파는 오클랜드행) 선수다. 2019년, 2020년 2년 연속 메이저리그 초청 선수 신분으로 스프링캠프를 소화했던 그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메이저리그 캠프가 중단되는 바람에 아내와 함께 고향인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갔다.

 

엘리 화이트를 인터뷰하게 된 건 그가 한국 취재진에게 전하고 싶은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야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실과 싸우고 있는 마이너리거의 삶, 그리고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한 베테랑 메이저리거의 스토리다.

 

아직 ‘엘리 화이트’라는 선수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 팬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

 

“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이라는 도시에서 자랐다. 남자들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4형제 중 막내다. 다른 미국 아이들처럼 형제들 모두 스포츠를 즐기며 성장했는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스포츠가 야구였다. 10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고, 중·고등학교를 거쳐 클렘슨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마이너리그 시스템에서 야구를 배웠다. 2018년 시즌 마치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돼 지난해 트리플A에서 뛰었다. 이렇게 설명하고 보니 내 야구 인생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야구 선수를 직업으로 생각했던 건 언제부터였나.

 

“고교 3학년 때부터였다. 당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던 터라 프로팀 스카우트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신시네티 레즈 팀이 26라운드에 나를 지명했는데 좀 더 야구를 배운 다음 프로에 진출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결국에는 2016년 11라운드 전체 322번으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지명을 받았다.

 

“그 날이 드래프트 셋째 날이었다. 좀 더 앞선 라운드에 지명 받고 싶은 마음에 드래프트 둘째 날부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셋째 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지명 소식을 듣는 순간 얼마나 안심이 되든지. 전화 받고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루키리그부터 시작한 마이너리그 생활은 어떠했나.

 

“사람들은 프로 유니폼을 입는 순간 엄청난 돈을 번다고 생각하지만 마이너리그 선수들 생활은 호화스러움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드래프트되기 전에 야구했던 클렘슨대학교가 더 좋은 시설을 갖춘 상태였다. 훈련장부터 클럽하우스까지 매우 훌륭한 환경이었다. 마이너리그는 오히려 대학과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클럽하우스가 너무 작아 선수들이 하나의 라커를 반으로 나눠 사용했고, 트레이닝 룸에는 장비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생계 유지를 하기에는 주급이 너무 적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훈련과 경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터라 부업을 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마이너리그에서 배운 것 한 가지를 꼽는다면 이 세상에는 야구 잘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이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야구하면서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고, 그들과의 경쟁 덕분에 좀 더 빠르게 레벨 업 할 수 있었다고 본다.”

 

2018년 시즌 마치고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텍사스로의 트레이드가 당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당시 칸쿤에서 아내와 신혼여행을 보내는 중에 트레이드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웃음). 오클랜드의 마이너리그 시스템과 작별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곳에서 선수 엘리 화이트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구단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내 가능성을 보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트레이드가 내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생활하다 보면 절로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는 걸 꿈꿀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자신이 투자한 시간만큼 돈을 벌지 못한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시간이 없어 일정한 수입을 얻기 힘들다. 오프시즌 때는 레슨을 할 수도 있지만 정규시즌 때는 그런 시간도 만들 수 없다. 그런 열악한 환경을 딛고 일어서야 그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 나 또한 메이저리그를 꿈꾸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은 후 높은 연봉의 대우를 받고 싶다. 그걸 목표로 하기 때문에 희생과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 초청선수 신분으로 훈련했다. 당신의 눈에 비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는 어떠한 곳인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훈련 환경은 차원이 다르다. 시설도 좋고 무엇보다 음식이 맛있다(웃음). 또한 추신수와 같은 베테랑 선수들과 매일 함께 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그들로부터 야구와 관련해 배우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훈련할 때는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 훈련 태도, 배팅케이지에서의 모습 등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집중 관찰한다.”

 

텍사스 레인저스 외야에는 추신수, 대니 산타나, 조이 갈로 등 고정된 자리를 갖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없는 한 빅리그로의 콜업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

 

“어느 레벨에서 야구하든 내가 야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해 텍사스로 트레이드 된 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초청됐을 때 TV로 보던 선수들과 함께 야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내가 그들 옆에 서 있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다 시범경기에 출전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지난해의 경험 때문인지 올해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 생활을 이어갔다. 자신감도 생기면서 말이다. 아직까지는 배울 게 많다. 특히 베테랑 선수인 추신수와 엘비스 앤드루스한테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다. 열심히 노력해서 언젠가는 그들처럼 멋진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렇게 잘 진행되던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가 코로나19로 중단됐다. 매우 복잡한 심정이었을 텐데.

 

“야구 선수라는 직업이 원래 예측할 수 없는 직업이다. 부상을 당하면 커리어가 어떤 변화를 이룰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팬데믹 때문에 야구를 못 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해봤다.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가 시작되기 전 오프시즌 동안 강도 높은 개인 훈련을 소화했었고, 연습한 부분이 시범경기를 통해 나타나는 걸 느끼며 살짝 흥분한 적도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캠프가 중단된 것이다.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엄청난 실망감이 뒤따랐다. 그러나 세상은 최악만이 존재하지 않더라. 야구를 못하는 대신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가족의 소중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예상치 못한 사람이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래서 내가 이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캠프가 중단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우리 팀의 호세 트레비노(포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당시 40인 로스터에 오르지 않았고, 초청선수 신분이라 선수 노조는 나와 같은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보호해주지도 않는다. 로스터에 오른 선수들은 노조의 도움으로 주급이 나오지만 나는 초청선수라 돈을 받을 수 없었다. 결혼해서 아내도 있고, 야구를 못하니 월급도 안 나오고, 정말 모든 것들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가면 부모님 집에 들어가 살아야 할 것 같았고, 훈련은 계속해야 하는데 돈이 안 나오니 아르바이트라도 빨리 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내용을 호세에게 하소연했는데 우연히 내 이야기를 추신수가 듣게 된 모양이다. 그는 나를 조용히 불러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건넸다. “네가 돈 걱정하지 않고 야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라고.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추신수는 혹시라도 내가 기분 나빠 할까봐 걱정된다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솔직히 그때는 도움의 형태보다는 내가 존경하는 선수가 나를 돕겠다고 말해주는 게 엄청난 위로로 다가왔다.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그의 조언을 듣는 게 행복했다.”

 

추신수 선수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나.

 

“그는 나를 포함해 마이너리그에 있는 190명의 선수들에게 1인당 1000달러씩 개인적으로 기부하겠다고 나섰고, 특히 나한테는 그 돈 외에도 매주 자신한테 지급되는 밀머니(meal money, 1100달러)를 야구가 중단되는 동안 내게 모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이 경제적인 면에서 도움을 줄 테니 야구와 가족에게 집중하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경험이었다. 돈을 많이 버는 메이저리그 선수라고 해도 모두 추신수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캠프 때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위해 식사 대접을 한다. 클럽하우스에서 코치들, 물리치료사, 트레이너, 맛사지사, 매니저들의 복지를 위해 가장 먼저 앞장 서는 선수다. 그들과 밖에서 따로 식사하고 어울리고 생일 선물을 챙기는 모습에 상당히 놀란 적이 있었다. 그가 쌓아온 야구 커리어도 대단하지만 인간적으로 배울 점이 많은 선수다.”

 

그래서 그 밀머니가 실제 당신의 통장으로 전달된 건가.

 

“그렇다. 추신수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 전혀 의심하지는 않았다. 내 통장으로 그의 밀머니가 지급됐고, 이걸 본 아내가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팀의 리더이자 베테랑인 추신수가 어린 선수들을 진심으로 챙기는 마음이 느껴졌고, 그한테 관심 받고 보호받는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그는 우리를 이렇게까지 챙길 필요가 없는 베테랑 선수다. 그래서 더 고마움을 느낀다.”

 

화이트는 추신수가 걸어간 길을 뒤따르고 싶어 했다. 루키리그부터 마이너리그의 모든 과정을 거쳐 빅리그에 올랐고, 빅리그에서도 빼어난 성적을 토대로 거액의 FA 계약을 맺은 뒤 한 팀의 리더로 자리매김한 추신수의 모습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추신수의 행동은 메이저리거로 성공해 많은 돈을 벌고 싶었던 엘리 화이트에게 새로운 목표를 갖게 만들었다.

 

“내가 야구 선수로 성공한다면 추신수처럼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돕는데 앞장 설 것이다. 추신수가 나를 돕는다고 말했을 때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나도 다른 마이너리그 선수에게 전하고 싶다. 나보다 어려운 형편에 놓인 선수들을 위해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엘리 화이트라는 선수가 필드 위나 필드 밖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선수로 기억되길 바란다.”

 

엘리 화이트는 첫 번째 밀머니를 받고 추신수에게 보낸 문자를 기자한테도 보내주면서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추, ‘고맙다’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보낸 건 돈 외에 마음이 담긴 거라 우리 가족들한테 더 뜻 깊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당신의 도움을 받은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몫까지 포함해서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보인 마음,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엘리 화이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추신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추신수는 처음에 자세한 설명을 꺼리다 엘리 화이트가 기자와 인터뷰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엘리 화이트를 보며 2003년 아내와 마이너리그에서 고생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40인 로스터에 들어가지 못하는 선수한테는 밀머니도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그 생활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되고도 남았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은 마이너리그 선수들한테 가장 고통스런 시간들 아닌가. 구단에 부탁해서 나한테 지급되는 밀머니를 엘리 화이트한테 보내달라고 했다. 첫 밀머니가 지급된 날, 내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더라. 그 문자를 받고 나도 감동했다. 엘리 화이트는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다. 올시즌 마치고 내가 텍사스에 남을지 떠날지 알 수 없지만 만약 내가 없다면 그가 빅리그로 콜업돼 실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 선수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어 내가 더 기뻤다. 그가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좀 더 야구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5월 말까지 190명의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매주 400달러씩 한 달에 1600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여기에 추신수가 190명의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1000달러씩 모두 19만 달러(2억3000만 원)를 보태기로 한 것도 엘리 화이트를 통해 알려졌다. 추신수는 레인저스 존 대니얼스 단장에게 열흘 전 이미 이와 같은 사실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21년 전 미국에 올 때 나는 빈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야구를 통해 많은 걸 얻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자산이나 다름없다. 그들이 지금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이겨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

 

추신수는 한국의 코로나19 성금으로도 2억 원을 기부했다.

 

<미국 플로리다=이영미 기자, 통역 조아라>